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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세한노을 Jul 09. 2023

온화했던 교토의 첫 인상

일본(1). 찾던 에어비앤비가 아니래요.



간사이공항에 내려 미리 예약한 하루카 열차 티켓을 뽑으려는데, 예매자 대기 줄을 기다리는데도 한 시간이 걸렸다. 이 정도로 사람이 많은데 4년 전 파워 블로거의 후기 때와 똑같이 티켓부스가 그 자리 그대로 5개만 유지되고 있다는 게 참 ‘오해하던 일본’답다고 생각했다. 오전 비행기를 예매할 때부터 휴식을 위한 것치고 꽤나 부지런한 여행인데?라고 자만했는데. 교토 숙소 근처에 도착하니 이미 저녁시간이 훌쩍 지났다. 하루 종일 먹은 거라곤 열차 티켓을 기다리며 욱여넣은 로손의 말차 모찌롤과 복숭아 워터가 전부. 저녁이라기엔 늦었지만 빨리 짐을 풀고 어디든 들어가서 하이볼을 들이키기 전까진 머릿속이 ‘나 휴가!’임을 인지하지 못할 것 같았다.


에어비앤비 호스트는 메시지로 셀프체크인 과정을 남겨놓았고, 우체통으로 보일만한 열쇠함 번호와 키에 새겨진 이름을 알려줬다. 번잡한 곳을 피하겠다고 교토 중에서도 외곽에 숙소를 잡아 주변은 모두 가정집이었고 저녁 늦은 시간에 친구와 캐리어를 돌돌 끌며 큰 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미안하기도 한 골목이었다. 그렇구나 여기가 맞구나. 잘 왔는데, 아무리 찾아도 열쇠함은 커녕 개 집같은 작은 공간 하나도 없었다. 구글맵을 켜서 서너번을 확인하고 영어로 바꿔 주소를 재검색하고. 위도 경도를 찍어보기까지 했는데 호스트의 열쇠함은 없었다.


3층 어떤 방에 불이 켜진 것도 같았다. 사람이 살고 있긴 한가, 호스트인가? 다른 집인가. 그렇다고 노숙을 할 수는 없으니 친구랑 가위바위보를 하고 벨을 눌렀다. 생각해보니 이겼다고 도망갈 것도 아닌데 가위바위보는 왜 했는지… 안에서 밝은 목소리로 무슨 말을 하셨는데 일본어는 중학교때 진작 포기해서 알아들을 수가 없었지만, 말투로 유추해 봤을 때 무슨일이세요? 면 평타친거고. 기대감을 갖자면 너희가 오늘 오기로 한 게스트니? 의미이길 간절히 바랐다. 무례하지만 영어로 상황을 설명했더니 'Oh wait a second' 라고 하더니 나올 준비를 했다. 그렇게 우릴 반긴 인상은 참 온화한 사람이었다. 역시 여기 맞네!라고 생각했는데. 미안하지만 여기가 아니래. 야 여기 아니래..


아니라는 집주인 붙잡고 그럼 어디로 가냐고 하는 것도 참 이상한데, 어쩔 수 없이 예약한 주소를 보여드렸다. 그분도 의아해 했다. 근처에 새로 생긴 숙소가 있다고 들었는데 저쪽이 아닐까 혹시 늦었으니까 거기라도 가보라고, 다시한 번 미안하다면서 친절히 알려줬다. 그 곳이 맞았다. 건물 안에 열쇠함이 있었고 호스트의 이름이 새겨져있었다. 기쁠 새도 없이 배고픔에 지쳐 짐을 풀고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처음 마신 하이볼은 정말. 쓰기만 했다. 산토리 위스키에 그냥 찬 물을 탔나봐!

열두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숙소로 들어오는데 아까 벨을 눌러댄 그 집이 자꾸 눈에 아른거렸다. 되게 친절하네. 늦은 시간에 한참을 떠들다 무턱대고 나와달라는 외국인 두 명에게 호스트로 착각할 인상을 줄 만큼의 친절함. 여기 아니라니까?가 아니라 미안하지만, 걱정되지만-으로 이어졌던 대화. 덕분에 온화했던 교토의 첫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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