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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세한노을 Jul 30. 2023

대나무숲, 40분짜리 장어덮밥

일본(2). 웨이팅은 없지만 기다려야죠.


6월 중순의 교토는 지독하게 더웠다. 올여름 더위의 시작을 일본에서 겪다니. 숙소에서 나와 지하철을 타러 잠시 걷는 동안 이미 이마엔 땀이 맺혔고 핸드폰은 뜨거웠다. 역에 내려 미니스톱에 들어가 녹차를 샀다. 갈증이 해소될만한 시원함과 쌉쌀함이었다. 도게츠교를 건너는데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 아래 뛰어노는 아이들은 즐거워 보이기만 했다. 점점 거리는 복작복작해졌다. 주로 보이는 건 말차아이스크림과 모찌롤, 당고, 생과일주스, 그리고 목적을 알 수 없는 소금에 절인 오이꼬치. 절인 오이를 소시지 먹듯 들고 먹는 사람들을 보고, 난 오이싫어 인간은 아니지만 저걸 길에서 저렇게 먹는다고? 저게 간식이라고? 시도할 염두는 안 나더라.


아라시야마 대나무숲에 도착했다.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청량함 가득한 대나무숲을 걷는데 끝은 안 보였지만 그게 싫지 않았다. 34도의 날씨였는데 체감온도는 그만큼이 아니었는지, 아니면 약간의 시원한 바람과 청량한 소리 덕분이었는지 더 걸을 힘은 있었다. 여전히 존재하는 인력거에 탄 신난 사람들과, 친구랑 ‘저건 아무리 생각해도 좀 그렇지 않아?’를 되뇌인 것 치고는 지나치게 밝게 인력거를 끌며 달리는 사람을 보고. 음 그런가보다, 그런가보다-했다. 숙소 가는 길에 휴족시간이나 잔뜩 사야지.


대략 찾아둔 몇 군데의 식당 중 대부분은 웨이팅이 지나치게 길었고, 이 날씨에 웨이팅까지 하기엔 막상 그 메뉴들이 끌리지 않아서 조용해 보이는 장어덮밥집에 들어갔다. 우리 앞에 한 팀 있었고 이 정도 쯤이야. 당당히 입구에 앉았다. 안에 분명 빈자리가 있는데 20분을 기다려도 우리를 안내해 주지 않았다. 주인분께 여쭤봤더니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는 대답뿐이었다. 자리를 안내받고도 주문하기까지 10분을 기다렸다. 빨리빨리에 익숙한 한국이었으면 한소리 나왔을 시스템인데, 어찌 나와 친구만 낯설어 보였다. 이곳의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았다. 미리 식사하던 사람들의 거의 나가고 반쯤 비었을 때 주문을 받았다. 너무 온화한 미소로.


이 곳의 언어일까, 일본의 문화일까, 식당 주인의 성격일까 머릿속을 굴려봤지만 어찌 분위기라는 것이. 이 기다림의 준비가 된 사람만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곳이라면 나도 그래야지, 배는 고파도 조급하지 않기로 했다. 아사이 생맥주를 먼저 시켜 그 자리에서 다 마셔버렸지만..기다리다보니 문득 내가 이 식당에 ‘머물고 있구나’ 생각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들을 짧은 시간 점찍듯 소비해버리지 않았나. 패스트푸드의 효율과도 같은 조급함으로 일상을 살아간다. 밥을 먹든 영화를 보든 커피를 마시든, 과정보단 목표 달성에 초점을 맞추듯 장소를 이동하고 사람을 마주하고, 많은 것들을 소진해버리곤 했다.


10분 뒤 메뉴가 나왔다. 결론적으로 장어덮밥이 끝내주게 맛있진 않았다. 그저 그랬다. 그래도 입구에 붙어있던 포스터, 메뉴판 번역에 고스란히 적힌 오타, 여럿 접힌 물티슈, 생맥주 기계 옆에 자리잡고 있던 고양이 인형, 떠난 사람들의 자리 창가 너머로 보이는 저쪽까지 마당에 돌이 깔려있었구나- 하던 끄덕임. 이 정도를 기억하는 교토의 식사라면 근사했다고 생각해.


맥주는 이미 사라진, '그' 덮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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