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와 서예
서예사에는 매우 중요한 이름이 하나 있다. 그의 이름은 안진경(顔眞卿,709 ~ 785)이다. 이 사내는 중국 당(唐) 나라 때의 인물이다. 명문가 출신이지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외숙들의 도움으로 성장했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을 모두 충족했던 이 남자는 과거를 통해 관직에 진출했다. 그의 첫 업무는 황실 서고를 관리하는 일이었다. 미관말직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는 그의 학문이 출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나이 불혹에 이르렀을 때 나라에 큰 변고가 생겼다. 안사의 난(755 ~ 763)이라 불리는 장장 8년에 걸친 이 거대한 변란은 당(唐)이라는 거대한 제국을 걷잡을 수 없는 혼란으로 끌고 들어갔다.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키며 한 시대를 완전히 끝장내버린 이 시간을 우리는 당 현종과 양귀비, 이백과 두보로 이미 알고 있다.
안진경은 이 변란에 한가운데에 있었다. 그는 안녹산의 군사들이 도성으로 밀고 들어오는 길목을 막고 서서 결사항전했다. 그의 조카와 사촌형을 포함한 일족들의 희생을 제물 삼아 황제가 도망갈 시간을 벌었다. 그리고 그는 평생 처음 마음 그대로 나라에 충성했으며, 조카와 사촌형의 제문을 쓰며 유예했던 자신의 삶과 죽음도 역시 나라에 바쳤다. 그는 충절과 강직의 상징으로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되었다.
그의 많은 것이 안사의 난을 기점으로 바뀌었는데, 서書도 그랬다. 안사의 난 이전의 그의 서는 약간의 개성은 가미되었으나, 당나라 시대의 전통을 충실히 잇고 있는 것이었으며, 아카데믹한 성격이 강해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입문 후 그의 글씨를 베끼며 기초를 다진다.
이 글씨는 <다보탑비>인데, 그의 나이 44세 때인 752년에 썼던 작품이다. 안사의 난이 일어나기 3년 전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의 글씨가 추하고 괴이하다고 말했는데, 우아하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리고 그 평가는 안사의 난 이후에 썼던 작품을 주로 지칭하는 것이다.
<안근례비>는 안진경이 죽기 6년 전에 쓴 글씨로 그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글씨이다. 잠두연미(蠶頭燕尾)**라고 불리는 그의 서풍상의 시각적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다보탑비>의 힘과 에너지는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글자 요소요소에 자신만의 특징이 표현되어 있다. 우아함을 기준 삼는 사람들은 그의 글씨를 추괴(醜怪:추하고 괴이하다)하다라고 평가하지만, 또 어떤 이들은 안진경의 글씨가 그의 의(義)로움과 영웅적인 기상을 닮았다고 높이 평가한다. 그래서 그의 글씨는 충절과 강한 기상을 표현해야 하는 많은 곳에 사용되는데, 그의 글씨를 나는 21세기 야구 유니폼에서 봤다.
8년 연속 170이닝 투구, 최연소 2000이닝, 최연소 150승, 타이거즈 소속 최다 탈삼진(1703K), 타이거즈 소속 최다승(151승) 등이 지금 그가 세운 기록이고, 이 기록들은 자신에 의해 매일매일 경신되고 있다. 기아타이거즈의 에이스로서 국가대표로도 오랫동안 꾸준히 마운드를 지키며 선동렬 18번, 이종범 7번 이후, 타이거즈 세 번째 영구결번이 될 것이 매우 확실시되는 선수다. 2017년 한국시리즈 2차전 1:0 승리를 완봉으로 견인한 양현종 선수의 의지와 열정, 그리고 오랜 시간을 마운드에서 수많은 타자와 싸우며 기아타이거즈에 승리를 안겨온 책임감은 대투수라는 칭호와 함께 그를 표현한 글씨로 안진경의 글씨는 무척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디자이너가 그 모든 배경을 알고서 대투수 기념 유니폼의 서체를 안진경의 것으로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혼자서 흐뭇한 기분이 든다.
*중국 당나라 때 관리를 선발하던 기준을 말한다.
무릇 사람을 가리는 방법은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신(身)이니, 풍채가 건장한 것을 말한다. 둘째는 언(言)이니, 언사가 분명하고 바른 것을 말한다. 셋째는 서(書)이니, 필치가 힘이 있고 아름다운 것을 말한다. 넷째는 판(判)이니, 글의 이치가 뛰어난 것을 말한다. 이 네 가지를 다 갖추고 있으면 뽑을 만하다. 凡擇人之法有四. 一曰身, 言體貌豊偉. 二曰言, 言言辭辯正. 三曰書, 言楷法遒美, 四曰判, 言文理優長. 四事皆可取.(다음백과사전 설명 인용)
** 글자의 형태가 누에의 머리와 제비와 꼬리를 닮았다는 의미로 안진경의 독특한 서풍을 표현하는 용어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