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 왜 어제 일조차도 희미해지는 잘 모르겠지만, 과학적인 설명은 차치하고라도, 살면서 굳이 굳이 기억해야 할 만큼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은 별로 없다는 무의식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기억은 아주 오래오래 오래갈 뿐만 아니라, 생각지도 못한 때에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소환된다.
예전에 길을 가다가 어떤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그는 남자로 나이는 20~30대쯤 되어 보였다. 검은 백팩을 메고 있었고 머리는 짧은 편이고 검었지만 땀에 젖어 있었다. 노란색 줄무늬 상의를 입고 있었고 바지는 어두웠는데 정확한 색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내가 이토록 그 사람을 자세히 기억하는 것은 그가 굳이 보행로를 두고 마주 오는 차를 보면서 차도를 걸었기 때문은 아니다. 헤드셋을 쓰고 있었기 때문도 아니고, 손뼉을 치며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었기 때문도 아니다.
그토록 선명하게 떠올리는 것은,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걷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변이 너무 시끄럽고 제법거리가 있어서 무슨 노래인지는 제대로 듣지는 못했지만 그는 주변에 무수한 시선은 무시한 체 혼자만에 세상에서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를 보면서 뭐라 생각했을지 알고 있었지만 적어도 나는 부러웠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느라 해가 진 인적 드문 산책길에서 가만가만히 하는 일을 이름 모를 그는 백주대낮에 차도를 걸아가면서 사람들의 시선과 수군거림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몰입하는 그 모습이 해소되지 못한 욕망과 함께 그렇게 장기기억으로 전환되었다.
얼마 전에 무선이어폰 한쪽을 분실했다. 고민 끝에 다시 에어팟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스펙은 자세히 보지는 않았고, 다만 음질이 좋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선택했다. 확실히 음질이 좋았다. 다만 문제는 혼자서 나직이 음악을 따라 부르면 에어팟이 저절로 재생되는 음악의 음량을 줄인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마치 마이크를 뺏어가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나는 그런 기능이 있는 줄도 몰랐건만 이젠 그 소심한 산책도 어려운 지경에 봉착했다. 에어팟에 불만은 없지만 에어팟의 감시를 피해 더 작게 노래를 따라 부르다 보면 은근한 좌절감이 느껴지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다. 기술에 기술이
더해지는 것을 발전이라고 하지만, 그 사이에서 잃어버리는
것도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그 사람은
여전히
어딘가에서
그렇게
혼자 노래를
부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