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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_어둠 속에 보이는 것

by 검은 산

해가 길어지고 있지만, 그래도 어둠은 확실하게 찾아온다. 불야성인 도시에서도 겨울의 밤과 여름의 밤은 확실히 그 두께가 다르다. 겨울의 밤은 두터워서 좋고, 여름의 밤은 얇아서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일 좋은 것은 계절과 계절이 건너가는 그 짧은 찰나의 밤이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그 밤들을 걸어서 느끼는 감흥은 일 년에 며칠 아주 짧은 기간 동안만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변화는 어둠을 통과하는 동안 눈보다는 피부로 느껴진다.


어둠을 걷는 동안 분별하는 눈은 어둠 속에서 무력화되고, 감각은 예민해진다. 그 어둠 속에서 사람은 곧잘 공포와 불안을 느낀다. 느껴지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리라. 하지만 어둠 너머의 깊은 곳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은 오히려 눈이다. 어둠을 가만히 응시하노라면 낮에는 미쳐 볼 수 없었던 것들이 보인다. 그것을 형상이라고 해야 할지 형태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흔들리면서 물러가고, 다시 다가오는 고요한 움직임이 보인다. 그것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형태를 넘어선 본질에 다가간듯한 확신을 준다. 그럴 때는 오히려 어둠이 모든 것을 그렇게 명료하게 만드는 것 같다.


일렁이는 물결을 보고 있으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이렇게 우두커니 서서 그 검게 일렁이는 어둠은 보고 있는 것은 과연 누구인가?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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