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인간은 지킬 것이 있을 때 더 강해지는 것일까? 아니면 약해지는 걸까? 우리는 소중한 것을 지킬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해질 수 있을까? 지킬 것이 없는 삶은 정말 약점이 없는 걸까?
살인을 업으로 삼은 조각(爪角)은 오랫동안 생태계 최강자였다. 그녀는 목표한 데로 죽이고 죽여서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최초의 류가 죽은 후로 그녀는 그렇게 홀로 가장 강했다.
그런 그녀가 오랜 동료의 목숨을 뺏은 그날,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강 선생과 그의 딸이 그녀의 삶에서 중요해진 것은 일종의 운명의 등가교환이었을까?
그러나 이 킬러의 서사 안에서 내게 가장 의미 있었던 것은 그녀에게 이유 없는 적대감을 드러내며 위협하는 투우가 한 대사였다. ‘나를 기억 못 하면 어떻게 해’……이런 내용이었던가? 왜 말하지 않았냐는 조각의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조각이 마침내 투우를 기억해 냈을 때, 인생의 아이러니를 느꼈다. 조각은 류를 잊지 못하고, 그를 떠올리게 하는 강 선생에게 많은 의미를 부여했지만, 정작 자신이 한 약속을 잊지 않고 소중한 것은 그 약속 하나뿐이라 평생 기억할 수밖에 없어 그녀의 흔적을 쫓아온 투우는 완전히 잊고 있었다.
투우의 불우한 가정, 불안정한 애착,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토양으로 키워낸 그 사랑을 조각은 역시나 그의 죽음을 통해서 깨달았을 뿐이다. 류가 죽었을 때처럼.
투우는 자신은 잃을 것이 없어서 질 수 없다고 했지만, 그는 자신의 몸과 정신을 완전히 잠식해 버려 육체적인 생명보다 더 우위에 둔 사랑을 가진 자였고,
조각은 자신의 사랑을 한 번도 온전히 인정해보지 않은 방관자였기에 오히려 더 엄밀한 의미에서 지킬 것을 가져본 적이 없는 여전한 최강자로 남을 수 있었다.
지킬 것이 없는 방관자는 강하다. 아무도 유효한 포인트까지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강자로 살아남아 고독을 벗 삼아 살아가는 삶이 온전한지는 모르겠다.
조각을 추구한 투우는 F이고, 류가 남긴 의지를 추구한 조각은 T일 것 같다. 나또한 T로서 65세 여성, 조각이 여전히 정의로움을, 이상을 추구하는 모습은 T와 F의 구분과 무관하게 지극히 강하고 완벽하게 아름다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