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으로 가는 길은 부사들로 뒤덮여 있다.
글 쓰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글을 잘 쓰는 것이 어떻게 하는 것인지는 잘 몰라도 그 점은 분명하게 느끼고 있다. 그래서 도움을 얻기 위해 글쓰기 이론서를 읽기도 하는데 장르에 따라, 목적에 따라, 작가의 스타일에 따라 다양한 이론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글이 없다면 어떤 조언도 적용할 수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글이란 것은 신비로워서 일단 쓰기 시작하면, 그곳엔 자신도 몰랐던 생각과 감정이 리트머스 시험지의 색깔이 변하듯 드러난다. 그렇게 정신없이 달리다 보면 양은 늘어나고 스스로에게 뿌듯해지지만, 만족감은 오래가지 않는다. 들여다보면 명료하지 않은 생각, 모호한 아이디어, 불분명한 지식, 그리고 정돈되지 않은 감정들이 거칠게 엮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거의 틀림없이 부사나 형용사가 잔뜩 껴 있다. 잡풀(수식어)이 무성한 글을 보면서, '지옥으로 가는 길은 부사들로 뒤덮여 있다'라는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우연히 알게 된 이 말이 나중에야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라는 책에서 나온 얘기라는 것을 알게 됐다.
하고 싶은 말은 많고, 감정은 고양되어 있는데, 정확한 언어를 찾지 못한 데다 욕심을 내려놓지 못할 때 부사들은 처음에는 그런 고뇌들을 해결할 유일한 대안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말, 좀, 매우, 대단히 같은 단어들이 자리 잡고 있는 문장은 메시지는 모호해지고 깊이도 순식간에 얇아진다. 그리고 문장의 주인으로 하여금 형사에게 쫓기는 잡범이 막다른 골목을 올려다보는 느낌을 들게 한다. 그래서 부사 좀 썼다고 지옥이라니, 언뜻 보면 과한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 수 있지만, 글 쓰는 사람의 고뇌와 내적 고통을 지옥이라는 단어만큼 중의적으로 표현한 언어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나는 천국을 본 적이 있다. 아주 평범한 단어로 명료한 메시지와 그 메시지의 깊이까지 담보하는 글쓰기를 본 적이 있다. 완성된 글로 본 것이 아니라, 그런 글을 쓰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봤었다. 국문학과 교수님이셨는데, 학교에서 만드는 교지의 서문 같은 글이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나에게 신입생 때 어떤 점이 좋았는지, 어떤 경험이 가장 기억에 남는지 물으시고는 대답이 시원치 않았는지, 고뇌하면서 글을 완성해 나가셨다. 나중에 그 글을 교정하면서, 그 깨끗함과 투명함에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어려운 단어나 수식을 쓰지 않고도 이런 글을 쓸 수 있지? 나중에 스티븐 킹의 그 문장을 들었을 때 지옥이라는 단어가 와 폐부 깊숙이 와닿았던 것은 그때 그 경험 때문이었다.
글을 수정할 때마다, 단어와 문장을 들어내며 아깝고 속이 쓰리다. 그러나 수식을 걷어낸 문장이 온전하지 못하다면, 그것은 선택한 언어가 홀로 서지 못하기 때문이며 그래서 문장이 도미노처럼 쓰러지는 것이라는 안다. 문장이 쓰러지면 글은 완성될 수 없고, 하고자 하는 얘기는 전달되지 않는다. 지켜야 할 것은 메시지이지, 수식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생겨나 들어내는 것을 주저주저할 때가 많다. 그때 이 글을 상기한다. 지옥으로 가든, 천국으로 가든 글쓰기는 고달프다. 그리고 자주 지옥으로 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에도 벅차다고 느낀다. 그러나 천국을 본 이상, 지옥으로 갈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