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따윈 필요없어, 여름 愛なんていらねえよ、夏(2002)
히로스에 료코와 와타베 아츠로 주연의 <사랑따위 필요없어, 여름>은 한국에서도 여러 번 리메이크되었을 만큼 매력적인 드라마다. 방영 당시에는 시청률이 그다지 높지 않았지만 후에 매니아 팬덤이 생겼던 작품이기도 하다.
와타베 아츠로가 연기한 레이지는 여자를 유혹하고 돈을 갈취하는 남자다. 여자를 유혹하다 잘못되어 감옥에 갔다가 출소했지만 무시무시한 사채업자에게 쫓기게 된다. 어떻게든 돈을 갚아야 했던 그는 자신의 특기를 살려 눈먼 상속녀에게 어렸을 때 헤어졌던 오빠로 접근한다. 그 상속녀가 히로스에 료코가 연기한 아코이다.
고립되어 살아가며 희망도 사라져 가는 아코는 살고자 하는 욕망으로 가득한 레이지에게는 쉬운 사냥감이었다. 하지만, 어렸을 때 버려져 길거리를 전전하다가 호스트가 된 레이지와 어렸을 때 떠나버린 엄마와 오빠, 그리고 자신을 외면하는 아버지를 원망하지만 그리워하는 아코, 그 둘은 그것이 어떤 허기인지 알 수 없는 사람과는 나눌 수 없는 그런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아코가 죽어야만 살 수 있는 레이지는 그녀를 더 고립시켜 절망에 밀어 넣기로 했던 계획을 실행하는 데에 점점 의지를 잃어갔다.
아코는 실제로도 죽어가고 있었다. 뇌종양이 점점 더 커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발작하고 정신을 잃었을 때, 레이지는 자신이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간신히 깨어난 그녀를 바라보며 레이지가 말한다. “신은 잔인하구나” 이 대사 속에는 버려진 존재로 혼자 길거리에서 살아남은 레이지가 잊고 있었던 신을 불러서라도 절망 너머의 희망을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담담했던 것은 아코였다. 그녀는 “신은 다만 없을 뿐.”이라고 답한다. 레이지를 위로하는 말임과 동시에 살고 싶은 자신에게 하는 다짐이었다. 살고 싶어 하지 않겠다. 왜냐면 살 수 없으니깐, 자꾸만 살고 싶어 지면 더 고통스러울 뿐이니까…. 그 해 여름 이 대사를 들었을 때,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다가오는 죽음 앞에, 처음으로 찾아온 사랑 앞에 누구보다 살고 싶었을 그녀는 자신의 삶과 마음을 신에게 의탁하기를 거부하고 차라리 절망을 끌어안을 용기를 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 후로 시간이 많이 흘렸지만, 아코와 레이지가 대화를 나눴던 그 병실 장면이 때때로 생각난다. 서로를 사랑하지만, 각각의 결정은 달랐던 그들, 그것이 어쩌면 사랑의, 인생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너무도 사랑하지만, 너무도 이해하지만, 같은 생각일 필요는 없다는 것, 나의 결정으로 사랑한다는 것, 상대방이 이해 못 한다고 해도, 어쩌면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렇게 나의 사랑을 상대방에 전하는 것, 그렇게 삶이나 사랑은 외롭고 슬픈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