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과 전쟁
인류 문명사를 조망해 보면 전쟁과 전염병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전염병이 있는 곳에 전쟁이, 전쟁이 있는 곳에 전염병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역사서에는 전쟁만 있고, 전염병은 상당 부분 빠져 있다. 전염병은 인간이 간여할 수 없는 생물학적 자연재해, 다시 말해 비역사적이고 비사회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인간사가 중심인 역사서에는 처음부처 끼일 자격이 없다고 여겨졌던 탓이다. 그 때문에 코로나 팬데믹이 세계를 휩쓸었어도 그레이트 리셋, 사람 간에는 언택트 CCTV와 SNS 간에는 멀티택드, 뉴노멀, 바이오패스에 대한 예견만 있을 뿐 전쟁을 예견하는 사람도, 대비하는 사람도 없었다.
『전염병과 사회』(Epidemics and Society)의 저자인 예일대 프랭크 스노든 교수는 전염병을 단지 생물학적 재해로 보기보다는 ‘역사적·사회적 현상’으로 볼 것을 강력히 권고한다. 그는 “전염병이 소수 전문가들만 관심을 둔 비의적인 하위 주제가 아니라 역사적 변화와 발전이라는 ‘큰 그림’의 주요한 일부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전염병은 국가 위기와 전쟁, 혁명, 인구 변화와 같은 사회적 현상과 동급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라고 하였다.
고대부터 현재까지 전염병의 직격탄을 맞았던 국가와 시대에는 그럴만한 취약성을 갖고 있었다. 아테네 역병, 안토니우스 역병, 유스티니아누스 역병, 흑사병, 스페인 독감, 그리고 隋(수)·唐(당)의 고구려 침략,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스페인의 남미 침략 전쟁에 발생했던 전염병은 물론이고 코로나 19도 일어날 만한 고유한 취약성을 갖고 있었다.
그 고유한 취약성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거대 패권의 힘겨루기, 왕조의 최전성기에 벌어지는 인구 집중과 시민의 방종 타락, 정복자의 오판과 탐욕, 타민족 타 종교에 대한 증오와 멸시 등이며 이것이 터지기 직전의 풍선처럼 팽배해 있을 때 전염병이 창궐하여 많은 인명을 살상하였던 것이다.
2400년 전 발생한 아테네 역병은 해양 세력인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민주세력 델로스동맹과 대륙세력이자 군사력기반의 전제국가 스파르타를 영주로 하는 펠로폰네소스 동맹과의 충돌 중에 발생하였다. 위대한 아테네의 지도자이자 명장인 패리클래스가 역병으로 사망하였고,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펠레포네소스 전쟁사를 저술하였으며 소크라테스와 소포클래스가 전염병이 휘몰아치는 중에도 위대한 철학과 희곡을 남겼다.
2400년 전의 아테네 역병은 2400 후에 발생한 코로나 19와 상당히 닮아 있다. 우리는 전쟁이 왜 발생하는지, 전염병이 왜 발생하는지 궁극적인 답을 알 수는 없다. 다만 전염병과 전쟁은 인류의 숙명이고 역사는 끝없이 반복된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코로나19는 미중패권전쟁, 보호무역, 각자도생으로 규정되는 새로운 사조 등장 중에 발생하였고, 우크라이나 전쟁, 하마스의 가자지구 전쟁으로 확산되었다. 전쟁은 이전부터 전쟁이 벌어졌던 곳, 국경을 맞대고 있으나 이념과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곳에서 발생한다. 한반도도 그중에 하나다. 우리는 안타깝게도 전쟁도, 전염병도 막을 수 없다. 그러나 팬데믹의 혼란과 불안, 대중의 불행과 공포를 이용하여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고 권력을 장악한 세력이 전쟁의 불씨가 되었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짐작할 수밖에 없다.
비록 전쟁이 닥치더라도, 2400년 전 아테네 시민이 전쟁과 전염병 속에서도 문화를 꽃피웠던 것처럼, 공포로 이성을 잃지 말고, 서로를 믿고 도우며, 인간으로서 품위를 지키며 위기를 극복하였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