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같은 DNA, 다른 운명
어떤 유명인사가 자신의 복제인간을 만든다면 과연 그의 목소리, 외모, 성격, 수명, 운명이 유명인과 똑같을까?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면 동시에 만들어진 복제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 일란성쌍둥이들의 일생을 연구해 보면 된다. 일란성쌍둥이는 처음에는 부모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똑같다가 성장할수록 점점 달라진다. 쌍둥이 중 한 사람이 특정질환에 걸렸을 때 다른 쌍둥이가 15년 동안 같은 병에 걸릴 확률은 얼마나 되는지 연구한 결과를 보면, 알츠하이머 치매는 79%, 파킨슨병은 5%, 심근경색증은 50%였다. 유방암, 전립선암, 폐암, 대장암은 25%~40%였다. 유전적 소인이 있다고 알려진 질환조차도 유전자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았다. 최초 복제 고양이 씨씨(Cloned Cat)의 털 색깔은 태어날 때부터 달랐다. mRNA 코로나 백신이 제조상 문제없이 동일하게 만들어졌다면 부작용도 일정해야 하지만, 사망하는 사람부터 경미한 사람까지 각양각색이다. 왜 그럴까?
이렇게 “같은 DNA 다른 운명”을 사람들은 미스터리하고 신비하게 여기지만, 실은 똑같은 레시피로 요리를 하였는데 맛이 달라지는 것 같이 너무나도 당연한 현상이다. 이렇게 유전자의 변이 없이 발현이 달라지는 현상을 후성유전이라고 한다. 후성유전학은 모든 생물의 설계도인 DNA의 염기서열의 아무런 변화 없이 먹는것, 경험, 환경요인에 따라 외형, 성격, 특성이 달라지고 그것이 대를 이어 유전되는 것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후성유전의 시조는 ‘용불용설’을 주장한 프랑스 생물학자 라마르크다. 그는 1809년 출판한 『동물철학』에서 기린의 목이 긴 것은 높은 나무에 열린 과일을 따먹다 보니 점차 목이 길어졌는데 그것이 세대를 거듭하며 유전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이것을 적응진화론이라고 하는데 다윈의 자연선택과 멘델의 유전법칙이 학계에 정설로 받아들여지면서 그의 적응진화론은 인정받지 못했다. 그렇지만 라마르크 이론을 따르는 라마르크니언들이 많았는데 영국의 생물학자 콘래드 워딩턴(1906~1975)이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후성유전학(epigenetic)이라는 용어를 만든 장본인이다. 그는 라마르크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초파리에 극한 환경을 만들어 돌연변이를 유도하였다. 초파리는 한 세대가 10~12일로 짧고, 암컷은 수백 개의 알을 낳으며, 쉽게 구할 수 있고, 과일 몇 개로 충분히 키울 수 있기 때문에 유전학 실험에 있어 독보적인 위치에 있었다. 당시의 유전학 실험실은 가장 저렴하게 운영되었고, 소박했다. 실험도구는 고작 초파리가 가득 날아다니는 몇 개의 우유병, 돌연변이를 관찰할 수 있는 돋보기가 전부였으나 실험실은 과일 썩은 냄새가 진동하여 사람들은 유전학 연구자들을 괴짜 취급하였다. 워딩턴은 많은 돌연변이를 찾을 수 있었지만, 기린의 길어진 목처럼 생존에 유익한 돌연변이는 찾지 못했다. 1990년대에 수전 린드키스트(1949-2016) 연구팀과 더글러스 루덴(1961-) 연구팀은 워딩턴의 실험을 확장하여 실험하던 중 과하게 열처리한 초파리 알을 배양하여 기괴한 변이체를 만들어냈는데 유전자에는 이상이 없음을 발견하였다. 유전자의 변이 없이 후성유전만으로 돌연변이가 생길 수 있음과 이것이 무려 13대 자손까지 유전되는 것을 확인하여 라마르크의 이론을 증명하였고 후성유전학의 시대를 열었다.
후성유전의 메커니즘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 번째는 메틸화다. 게놈을 DNA 염기 코드 32억 자가 쓰인 게 한 권의 책이라고 하면 DNA메틸화는 특정 문단에 형광색 팬으로 줄을 그어 표시를 해두는 것과 같다. 우리는 책을 읽을 때 필요에 따라 표시해 둔 부분만 읽거나 건너뛰기를 하는데 유전자의 발현도 이런 식이다. 메틸화는 DNA의 염기서열을 바꾸지 않고 표시만 해놓고 단백질의 발현을 조절하는데 주로 발현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두 번째는 히스톤 단백의 변형이다. DNA는 히스톤 단백에 감겨있는데, 히스톤 단백은 실패역할을 한다. 특정 부위에서 실패가 풀리면 DNA 가닥이 느슨해지면서 전사가 쉽게 일어나 mRNA 만들어져 세포의 리보솜에서 표현형인 단백질이 만들어진다. 히스톤 단백이 DNA에 강력하게 붙어있으면 그 부분의 유전자는 작동하지 않는다. 세 번째는 비암호와 RNA다. 이것은 단백질을 만들지는 않지만, 세포 내에서 단백질 제조 공장인 리보솜을 만들거나 단백질의 원료인 아미노산의 운반하고, mRNA를 분해하여 유전자 발현을 조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