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유전자주의와 공산주의
유전자가 생명현상의 기본 물질, ‘나’를 ‘나’로 만드는 본질, 질병의 유무, 성격 형성, 더 나아가 운명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현대인이라면 어느 정도 수긍할 것이다. 때문에 현대인은 유전자 분석으로 까마득한 조상까지 찾고, 친자 확인을 하며, 범행현장에 떨어진 머리카락 한 홀, 타액, 혹은 미세한 혈흔에서 DNA를 분석하여 진범을 찾아내고, 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찾아 치료를 하며, 유전자 분석을 통해 자녀에게 가장 적합한 직업이 무엇인지 미리 알아보고, GMO식품, 복제 동물 혹은 멸종된 동물의 복원에 더 이상 놀라지 않으며, 코로나 판데믹 때는 인류 최초의 mRNA로 백신을 거부감 없이 맞게 되었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라는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어 팔렸고, 유전자는 미래의 열쇠, 운명의 지도, 행복한 미래를 위한 기초라는 말들이 관용구처럼 널리 퍼지게 되었다.
유전자가 세상을 지배하거나, 적어도 세상과 개인의 운명에 크게 관여한다는 유전자주의가 오늘날 현대인의 사고와 생활, 그리고 사회에 깊숙이 스며들어있지만 19세기말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유전자주의는 마치 공산주의가 불현듯 출현한 것처럼 19세기말에 불현듯 출현하였다.
유전자주의와 공산주의는 상당히 닮아 있다. 유전자주의는 고독한 수도사 멘델(1822~1884)로부터 시작되어 나중에 인종주의, 우생학으로 변질되어 유대인, 부랑아, 범죄자, 정신병자, 장애자의 학살로 이어졌다. 인류의 진화를 위해서 열등한 인간의 도태를 유도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우생학은 1900년대 중반까지 대중적인 지지를 받아 열등 인간의 강제 불임수술이 세계 곳곳에서 공공연하게 자행되었다.
공산주의는 독일에서 태어났으나 박해를 피해 런던에 망명한 마르크스(1818~1883)가 죽을 때까지 지독한 가난에 시달리며 만들어낸 사상이다. 마르크스는 반평생을 자본주의 종주국 영국의 런던 소호거리에서 살았다. 그가 근근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지만 사상적 적성국가 미국의 신문 뉴욕 데일리 트리뷴지에 유럽 상황의 기사를 송고하면서 받는 몇 푼의 돈 덕택이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마저도 끊겨 절친 엥겔스의 재정적 도움으로 살았다. 가난하여 외투 한 벌로 살았고 수염과 머리를 깍지 않아 괴인으로 불렸으며 자식들이 변변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사망하여 후손이 없다. 멘델이 수도원 정원에서 끈질기게 완두를 재배하는 동안 마르크스는 런던의 허름한 집과 도서관을 오가며 끈질기게 사상을 재배하였다. 멘델은 유전학을 낳았고, 마르크스는 공산주의를 낳았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런던에서는 빛을 발하지 못하였다. 마치 미사일처럼 런던에서 동쪽으로 날아가 유럽을 넘어 러시아에 떨어져 빛을 발하며 폭발하였다.
레닌이 볼셰비키 혁명을 일으켜 러시아 왕정을 무너뜨리고 인류역사상 최초의 공산국가 소련을 탄생시켰으며, 그 과정에서 귀족과 지주를 학살하였고 자유와 자본을 강탈하였다. 그의 사상은 계속 동진하여 중국을 공산화시키고, 한반도를 남북으로 갈라놓았다.
인종주의, 우생학은 태어날 때부터 다르기 때문에 인류의 진화를 위해 열등한 인종을 없애야 한다는 것이 모토였다면, 공산주의는 태어날 때부터 같기 때문에 평등을 위해 귀족, 인텔리, 부르주아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 모토였다. 히틀러와 스탈린이 완성한 전체주의는 똑같지만, 히틀러의 전체주의는 인종주의와 우생학이, 스탈린의 전체주의는 공산주의가 밑바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