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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어떻게 보아야 할까?

(3) 본질보다 실존

by 오순영


존 로크는 본질(essence)을 ‘무언가의 실체, 그것이 그것이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본질은 모든 개체의 기초를 구성하며 그 개체가 그렇게 기능하는 ‘근본 원인’이다. 본질은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으며 외면이 아니라 내면에 깊숙이 있고 결코 인위적이지 않아 자연적이고, 무엇과 무엇을 구분할 수 있는 경계다. 사람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본질을 중요시하며 찾으려 한다. 이는 동서고금의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고 간에 같다. 어린아이가 말문이 터지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왜’인 것은 본질 추구가 인류의 특질임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본질을 이해해야만 미래에 어떤 일어나도 대비할 수 있고, 사물을 옳게 구분하여 바르게 사용할 수 있으며, 어떤 현상이 왜 일어났는지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근원적 본질 때문에 사물이 현재의 모습이 됐다는 믿음을 ‘본질주의’라고 부른다. 본질주의는 가장 보편적이고 끈질긴 심리 편향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사상이 있다. 이것이 실존주의 철학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사르트르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의 생각은 이렇다. 의자의 본질은 앉는 것에 있다. 그러나 목수가 앉을 목적으로 만든 의자가 아니더라도 앉을 수 있는 형태를 가진 것은 의자라고 할 수 있다. 사물은 그래서 앉을 수 있다는 본질이 실존에 앞선다. 그러나 인간의 본질은 결정되지 않았고 고정된 것도 아니다. 오직 인간은 현재 어떻게 살고 있느냐 즉 실존에 따라 본질이 결정되기 때문에 실존이 앞선다는 것이다.


1990년부터 2000년까지 약 10년 동안 인류는 게놈프로젝트를 진행하여 인간 유전자가 예상보다 훨씬 적은 약 2만 3천 개, 약 30억 쌍의 염기로 구성되어 있음과 그것의 서열을 알아내는 돌이킬 수 없는 과학적 혁명을 이루어 냈다. 신이 만든 생명의 책 게놈에 신의 붓으로부터 흘러나온 60억 자의 A, G, T, C 염기 코드를 인간이 해독해 낸 것이다. 25년 전, 6월 26일 미국 백악관에서는 이를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이날 인간 유전체, 즉 인간의 유전적 청사진의 초기 염기서열 분석을 완료했다고 발표하면서 이것이 질병의 예방, 진단, 치료하는 새로운 방법을 가져올 것이라고 약속했다.


현재 우리는 이전 어느 세대보다 우리 몸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되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눈부신 과학 발전으로 과거 십수 년 걸렸던 유전자 분석이 이제는 반나절 밖에 걸리지 않는다. 우리는 그것을 통해 아주 먼 조상이 어느 지역에 살던 어떤 민족이었는지 추적할 수 있고, 어느 병에 잘 걸리고 어느 병에 잘 걸리지 않을지, 알코올 중독자가 될지, 비만이 될지, 동성애자가 될지, 범죄자가 될지, 어떤 성격을 갖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 예측 가능하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예측은 어디까지나 예측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인간의 예측이란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임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DNA가 RNA가 되고 RNA가 단백질을 만드는 과정은 정교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유전자의 염기 서열을 알면 어떤 단백질이 만들어질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정교하게 단백질을 만들더라도 매번 똑같은 것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마치 도자기 장인이 도자기를 똑같이 만들어 가마에 넣고 구어도 매번 고품질 도자기가 만들어지지 않는 것과 같다. 유전자를 씨라 치고, 그것의 표현형인 단백질을 사과나무라고 치자. 사과나무가 되기 위해서 씨라는 본질이 반드시 있어야 하지만, 씨 하나만 가지고는 절대로 사과나무가 될 수 없다. 토양, 산소, 햇빛이 있어야 하며 또 충분한 시간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유전자 하나만 가지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유전자가 특정한 단백질로 발현될 때에도 유전자가 담긴 ‘인간’의 실존 상태가 영향을 미친다. 기분, 먹는 것, 시간, 환경, 경험, 지식 등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동시 수정되어 자란 복제 인간이라 할 수 있는 일란성쌍둥이도 구분이 가능할 정도로 다르다. 쌍둥이임에도 하나는 비만한데 다른 하나는 그렇지 않고, 하나는 조현병이 있는데 다른 하나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복제 양, 복제 원숭이, 복제 고양이도 그렇다. 유전자는 복제할 수 있지만, 시간, 환경, 경험의 복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모습도 다르지만 성격도 다르다.


다시 25년 전 6월의 백악관으로 돌아가 보자. 빌 클린턴은 유전자 지도의 완성을 발표하면서 덧붙여 “우리 자식의 자식들은 ‘암’이라는 말을 성단처럼 아득히 먼 존재로 여기게 될 것”이라고 했다. 유전공학을 활용하면 질병을 치료하는 수준을 넘어 수백 가지 유전병을 완전히 없앨 수 있는 날이 올지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한 세대가 지나고 있는 지금 암이 몇 광년 떨어진 성단처럼 아득히 멀어지기는커녕, 반대로 눈앞까지 성큼 다가와 유행병처럼 흔하게 되었다. 코로나 판데믹을 막겠다며 개발한 유전자 mRNA 백신은 코로나를 예방하기는커녕 부작용만 일으켜 인류는 코로나 바이러스에다 백신 부작용까지 이중, 삼중의 피해를 입게 되었다.

본질을 실존보다 더 중요시하는 사고 편향의 가장 큰 문제는 실존에 영향을 미치는 거대한 환경과 시간을 무시한다는 것에 있다. 이러한 심리 편향 때문에 폭력 유전자를 가진 사람의 폭력 죄가 더 가볍게 보이고, 폭력배가 아니더라도 두렵게 보일 수 있다. 알코올 중독, 마약 중독 등 중독 유전자를 갖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 그렇게 된 것을 자신 탓이 아니라 조상 탓으로 돌리고 치료를 포기할 수 있다. 동성애 유전자라는 개념이 확산되면 동성애자의 권리를 옹호하게 될 수 있으며 일반사람과 운명적으로 다른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중요 정책을 담당하는 고위 공직자가 이러한 본질주의를 갖고 있다면 코로나 판데믹에서 mRNA 유전자 백신 접종을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여론은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미국에서는 현재 65명당 1명꼴로 발생하고 있는 자폐아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자폐 유전자를 찾는데 10년 동안 10억 달러의 예산을 집행하였지만, 그 기간 동안 환경적 영향을 연구하는데 4천만 달러를 투입하였다. 그러나 자폐증을 유발하는 단일 유전자를 찾는 데는 실패하였고 약 100여 개의 유전자가 복합적으로 관여한다는 상식적인 사실만 알아냈는데 그것은 유전자적 예방 치료법이 없다는 것, 세금만 낭비했다는 자백이나 다름없었다. 자폐가 폭증하는 동안에도 인간의 유전자는 수만 년 전과 크게 다름이 없다는 사실은 자폐 유전자를 찾는데 막대한 세금을 낭비한 것이 본질주의적 사고 편향 때문임을 더욱 부각시킨다.

자폐와 달리 단일 유전자의 돌연변이로 100% 발현되는 질병이 있는데 헌팅턴 병, 낭포성 섬유증, 진행성 골화성 섬유이형성증 등이 그렇다. 이 질환의 유전자 돌연변이가 규명된 지 반세기가 되었지만 아직도 예방 치료법이 없다. 애석하게도 유전공학은 이러한 결정적 유전병들의 예방과 치료에 기여한 바가 없거나 있다 해도 미미하다. 그러나 이러한 질환은 유전공학이 발전하는데 크게 기여를 하였다.

유전력이 높은 유전병은 높아서 치료와 예방이 불가능하고, 유전력이 낮은 유전병은 낮아서 환경에 크게 좌우되므로 유전공학이 의학적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유전자가 현재의 나를 만드는 거부할 수 없는 힘을 가진 신비하고 두려운 존재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하는데, 그것은 마치 동양에서는 태어난 해, 월, 일, 시 즉 사주와 팔자를 믿고, 서양에서는 태어날 때의 별자리를 믿는 것 같다. 유전자가 과학으로 잘 포장되어 있기 때문에 사주팔자와 점성술보다 더 강력한 신빙성과 매력을 갖고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유전자 하나만 가지고는 아무것도 만들지 못한다. 본질은 실존의 문제를 해결하는 답이 아니다. 실존의 문제는 실존에 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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