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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퍼슨 난제

니체의 힌트

by 오순영


미국 러시모어 산 정상 화강암에는 조지 워싱턴, 링컨, 루스벨트와 함께 토머스 제퍼슨 얼굴이 거대하게 새겨져 있다. 제퍼슨은 미국 3대 대통령이고, 독립선언서를 작성한 사람 중 하나다. 선언서의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으며, 창조주로부터 생명, 자유, 행복의 추구를 포함하는 양도 불가능한 권리를 부여받았다."는 구절은 미국뿐 아니라 세계 민주주의와 인권의식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나폴레옹이 아이티 노예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원정군을 보냈다가 참패를 당해 프랑스령 루이지애나 땅을 미국에 매각하였는데 제퍼슨은 이 땅을 사들여 현재의 미국 영토를 확정하는데 이바지하였다. 그러나 그는 살아있는 동안 600명의 흑인 노예를 거느렸으며 아내가 죽자 흑인 노예와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며 6명의 자녀를 두었다. 생전에 단 두 명의 노예만 해방시켰고 사후에 유언으로 5명을 해방시켰는데 모두 자신의 아내와 자식이었다. 흑인 아내는 전처의 이복동생이었다고 하니 가족사가 복잡하고 문란함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제퍼슨을 위인의 명단에서 지우고 러시모어 산의 얼굴을 부숴버려야 할까? 어디까지 제퍼슨을 존중해야 할까? 참으로 난제인데, 이러한 난제를 일컬어 제퍼슨 난제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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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계몽주의 철학자 장자크 루소는 『에밀』이라는 책을 썼는데 이 책은 교육학의 고전이다. 시계처럼 규칙적으로 생활했던 칸트가 생애 단 두 번 산책 나가는 시간을 어긴 적이 있는데 한 번은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었던 때와, 루소의 『에밀』을 읽었던 때였다고 한다. 루소의 『에밀』은 그 정도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책이었다. 가톨릭 교리에 위배되어 금서로 지정되었고, 파리와 제네바에서는 압수되어 불태워졌으며, 교황청은 체포령을 내려 루소는 도피 생활을 해야 했다. 인간은 모두 선하게 태어났으나 사회에 의해 타락한다는 성선설을 주장한 대목, 모든 종교가 선을 추구하는 한 동등한 가치를 지니므로 자신이 성장한 가정과 사회의 종교를 따르는 것은 옳다고 한 대목은 각각 가톨릭의 원죄설과 신은 유일하다는 신성불가침한 교리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었다. 루소는 고아나 다름없이 자랐다. 여러 직업을 전전하였고 제대로 교육을 받아 본 적도 스승도 없었다. 그는 사색과 독학 그리고 방랑생활에서 얻은 경험만으로 사상계의 리더에 올랐으며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마을 점쟁이』라는 오페라를 작곡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여러 귀족 부인과 바람을 피웠고 하숙집 딸인 23세 여성과 결혼하여 5명의 아이를 낳았지만 한 명도 키우지 않고 태어나자마자 이름도 짓지 않은 채 모두 고아원에 버렸다. 그는 『에밀』에서 모유 수유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아이를 직접 엄마가 키우지 않고 유모가 키우는 세태를 비판하였다. “진정한 유모가 어머니이듯이, 진정한 교사는 아버지”라면서 “가난도 일도 체면도 자식을 키우고 직접 교육시키는 일에서 아버지의 의무를 면제시켜 줄 수 없다.” 하였다. 그러나 그는 정확히 자신이 쓴 것과 반대로 행동하였다. 그가 천륜을 저버린 악인이고 거짓말쟁이 이기 때문에 그의 책들은 전부 읽을 가치가 없으며 불태워 없애야 할 쓰레기에 불과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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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명언을 남긴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사생활은 지극히 부르주아적이었으나 사상적으로는 마오이즘을 추종하는 사회주의자로 캐비아 좌파로 불린다. 피카소는 2만 여점의 다작을 남긴 예술가로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을 하였지만 공산주의자였다. 6.25 동란에서 미군이 한국인을 학살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사르트르와 같이 그도 물질적 향락을 누렸으며 특히 ‘성은 예술의 원동력’이라며 많은 여성들과 염문을 피웠다. 《시티 라이트》, 《모던 타임스》,《위대한 독재자》 등 무성영화의 걸작을 남긴 찰리 채플린은 세 번이나 10대 미성년자와 결혼을 하였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보헤미안 랩소디를 부른 퀸의 리드싱어 프레디 머큐리는 동성애자에 마약 중독자였다. 그는 43세의 젊은 나이에 에이즈의 합병증인 폐렴으로 요절하였다. 그러나 그가 남긴 노래는 여전히 인기가 있으며 많은 사람이 따라 부르고 듣는다.


위인 중에는 이처럼 제퍼슨 난제를 가진 인물들이 많다. 그들이 저지른 잘못, 실수, 악행만을 생각한다면 위인은 아무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위인들이 남긴 유산 덕으로 우리는 보다 인간답게 살고 있는데 그들을 부정한다면 배은망덕하다 할 것이다. 니체의 『선악의 저편』을 보면 제퍼슨 난제에 힌트가 될 글들이 있다. 난제를 푸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요약하여 옮겨 본다.


첫째, 니체는 도덕을 '주인 도덕'과 '노예 도덕'을 구분하였다. 위대한 인물은 자신만의 가치관과 도덕을 스스로 창조하고 부과하는 '주인 도덕'의 전형이다. 이들의 행동은 일반 대중의 '노예 도덕' 기준에서는 '악'으로 보일 수 있지만, 주인으로서 본질적인 힘과 창조성을 표현하는 그들만의 방식일 수 있다.

둘째, 위인의 위대한 업적은 힘에의 의지와 자기 극복의 결과물이다. 위인의 잘못이나 결함도 위대한 업적을 가능케 한 거칠고 필연적인 힘의 과정일 수 있다.

셋째, 절대적이면서 보편적인 진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관점’에 따라 달라지므로 위대한 인물의 잘못을 획일적 도덕의 잣대로 보기보다는 그들의 행위가 궁극적으로 '삶을 긍정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데'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보아야 한다.


한국의 발전을 이끈 위인들의 잘못만을 부각한다면 위인을 닮고 본받고자 하는 후손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현재 나라를 위해 애를 쓰고 있지만 잘못을 저질러 여론의 뭇매를 맞고 매장당한다면 그가 미래의 우리에게 베풀 혜택을 우리가 서둘러 막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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