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 영어 교사의 수업의 질과 방향에 대해 문제 제기한 소년은 고교 1학년 전체 학생들의 불만이 팽배한 현실을 해결하기 위한 나름의 시도였던 것이다.
난 수업을 마치고 나와 교무실 내 자리에 앉아 중앙을 보니 우리반 그 소년이 교감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발견 했다.
난 무슨 일인지 궁금했다. 그러자 곧 다음 차시 수업종이 울려서 교무실을 나왔다.
점심시간!
여전히 교무실에 있었단 말인가?
학교 홈피 담당자에게 무슨 일인지 물었다.
소년의 의도와는 달리 학교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교사가 교감에게 보고 하고 임시 해당 선생에게 알리면서 일은 커졌다. 이내 무슨 큰일이 난듯이 교무실이 동요하고 그 소년을 아무도 보호하지 않고 선생을 무고한 막된 아이로 추락하고 있었던 것이다.
학생부로 불려와서 심문 아닌 심문으로 시달리고 수업권을 박탈 당한 채 공박과 협박을 반복해 받으며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 녀석과 내가 눈이 마주쳤다.
내가 교감 자리로 가서 교감에게 면담을 요청했고 내가 책임지고 지도하겠다고 하고 그 녀석을 내 자리쪽으로 보냈다.
교감은 자신의 책상 서랍을 열고 꺼내어 나에게 그녀석이 작성한 것의 출력물을 내게 내밀었다.
A4 2 페이지 분량의 글을 읽었다.
어쩜 그렇게 물흐른 듯 잘 쓴 글일까?
단숨에 읽어간 그 간결한 글에는 어떤 흠결도 없는 문장에다 잘못된 현실을 고발하는 멋진 글이었다.
난 그녀석을 나무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지점까지
가도록한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 부끄러웠다.
교감과 나는 그녀석의 문필력을 인정하고 그 임시 교사의 실력의 문제를 학년 이나 학교 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내 자리로 돌아왔다.
당시 교감은 존경할 정도의 분별력을 지닌 분이었다.
내가 교직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 중에서 단연 손꼽을수 있는 인격을 지닌 분이어서 말이 통했다고나 할까.
담임인 내가 사실을 알게 된 것에 대해 그 녀석은 의기소침해 있었고 나의 눈치를 보며 불안해 하는듯 했다.
나는 풀죽은 그녀석의 어깨를 도닥거리며
"기죽을 필요 없고 잘 쓴 글이었다. 문과 정신이 살아 있어 좋다."고 격려 하였다.
그때 그 녀석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여교사가 희소했던 당시 인문고 교무실!
학생의 편을 들었단 뒷담도 있었지만 내가 그 녀석 편이 되어줌으로써 그 녀석은 학교를 기피하지 않았고
학교 생활에 충실하고 모범적인 학생이 되어
400등 넘던 아이가 문과 5 등으로 졸업하게 되었다.
서울 상위권 대학 경영과에 입학하고 졸업한지 이십 년이 흘렀을 즈음 결혼 주례를 부탁해 왔다.
어떻게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