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돌이켜 생각해 봐도 그해 봄의 시작은 최악이었다.
숱한 임시교사를 만나고 떠나보냈지만 그해 봄에 만난 그녀는 어떤 의미에선 독보적 존재였다.
관리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그 앞에서 보이는 것만 하는 최악 저질을 만났으니까.
"사람은 겉을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 " "관리자의 횡포에 휘둘리면 안 된다."
늘 본질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행동하는 성향이 강하여 소신 있게 그동안 처신해 왔는데 사람 말을 순진하게 너무 믿어 곤란을 겪은 것은 순전한 나의 잘못도 있다.
2월 초 학교는 새 학년 업무 분장으로 부산했다.
해마다 신학기 업무 분장에 난항을 겪고 있다가 그해 역시 학교장은 도움을 여러 차례 요청해 왔다.
한 학교 재직 4 년 동안 보직을 마다하고 지내기란 어렵다. 부정적으로 신뢰하기 힘들다는 평판이 나면 일이 수월할지 모르겠으나 그렇지 않고서는 참 거절하기가 힘들다.
교육현장이 열린 교육 이후부터 바뀐 교육적 분위기는 힘든 일은 다 기피하고 나이 든 사람 몫이 되는 판이라 수락하지 않으면 자신의 안일만 생각하는 이기심을 가진 사람, 봉사심 없는 인간으로 평가되는 묘한 분위기가 확산되었다.
젊은 교사들은 "육아다, 대학원이다." 하며 의견을 곧잘 내세우지만, 육아도, 대학원도 다 마친 세대는 학교의 자질구레한 허드렛일은 다 맡아 해야 것이 되어 버렸다.
젊어서는 젊다고 많이 하고 세월 흘러 바뀐 세상은 나이 많은 사람이 더 해야 하는 일명 ' 끼인 세대'
언제부터인가 핵심 알맹이는 다 갈라 먹기 하고 힘든 학생부장. 학년부장은 속칭 3D라 칭하며 공석으로 희망자가 없었다.
그래서 학교관리자도 심지어 임시 교사를 배정하기도 하면서 일 년을 버티곤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중에 그해 봄은 유난히 학교장이 유화 작전으로 나오는 것이다. 몇 번 사양하였으나 거절을 못 하는 인성이라는 파악이 끝난 것인지 능력 있는 사람들로 학년을 다 짜 줄 것이니 '제발 도와 달라.'는 요청에 학교장은 삼고초려까지 하였다.
나이들어 어려운 게 이런 것이라고나 할까? 인간적인 도움 요청이라 생각하고 고려해보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 뒷날 아침 회의에서 인선과 발표를 해 버리는 것이다.
내가 여지를 준 것인가? 모질지 못해 허락도 안 하고 있다가 낚였다는 느낌이 밀려왔지만 영악치 못한 심성을 아는 교무실의 다른 선생들은 수락해서 "고맙다. 멋있다. 다행이다. 고생이겠다 " 등 온갖 수식으로 받아 든 보직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얼떨결에 일어난 일이라 정신이 없었지만 여지를 준 나의 탓이라 수락 아닌 수락이 된셈이다.
학교장의 감언이설에 넘어 이상하게 마음과 달리 상황이 전개되어 갔다.
'강력하게 항거하지 못하고 왜 나를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러기에는 너무 경험이 쌓여버렸다고나 할까? 그러면서 '한 해 죽었다.'하고 봉사하자는 생각에 군말 않고 고교 3학년부장을 맡았다.
얼마 후 보직 자리를 메운 학교장은 화장실 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바뀐 것 같았다. 학년 부장을 투명인간 취급하며 임시 기획을 통해 고3 학년을 교사들을 감독하였다.
선생님들은 불만을 토로했다. 3학년의 모든 일은 그녀를 통해 보고되고 결정되고 가만히 보니 학교장과 그녀의 친밀도가 높았다고나 할까?
그래서 관망하기로 했다.
그녀의 학생지도는 남달랐다.
남녀학생커플 조사나 하고 방과 후에는 학생들 연애담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 짧은 시간에 언제 커플을 다 파악하였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그렇다고 학생들에게 애정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냥 가십거리였다고나 할까? 학생들의 신상을 너무 떠들고 다녀서 열 학급 담임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로 정도가 넘치는 것이었고, 특히 남학생들과의 사이는 좋지 않아 한 달새 남학생들의 불만이 쌓여 가고 있었다.
학습지도는 수업시간 교수학습 잘못 가르쳐서 잦은 민원이 들어왔다. 그래도 한해 조용히 가자는 뜻에서 부장으로서 다 방어했고 학부형은 믿고 나에게 나의 모르는 일들을 호소하기도 했다.
남학생들의 불만은 내가 불러 상담하고 해소하였다. 그들의 불만은 다 근거가 있었으며 타당하고 상당히 논리적이고 비판적이었다.
그러나 학년을 같이 하고 있는 터라 조심스러워 함구하고 있었고 난 그녀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처음 본 날 수업 시연에서 아닌 듯하여 교감에게 안 되겠다 의사 표현을 했더니 학교장이 교묘히 있던 임시 불러 나가게 하고 그녀를 대신 채용했던 것이라고 교감이 이야기를 어렵게 꺼내었다.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댄데 이런 작태를ᆢ 교감의 내신 승진 점수를 쥐고 있는 것이 교장인지라 교감은 울며 겨자 먹기로 고민하고 있었고, 눈을 깜짝이며 약간 애원하는 듯 넘어가자는 제스처였다.
그런데 최고점 받은 분이 다른 학교 채용이 되는 바람(확인은 못함)에 그녀가 복 많게 최종 채용이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학교장의 거대한 지지받음인지 몰라도 첫날부터 간이 배밖에 나온 것 같았다.
처음 직원 연수날도 지각하고 , 학생 등교 8시인데 8시 반넘어 학교장과 같이 출근하는 일상이.
늘 학교장실을 기웃거린다는 행정실 직원의 말도 내 귀에 어느새 들어오고 있었다.
난 직감적으로 '올해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과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내가 그냥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고3 수업 실력 안되어 교과 상위급 학생들 혼자 공부하는 게 낫겠다고 하소연하고
업무처리 미숙하여 모든 게 오류이고 데이터 오류로 신뢰성 바닥치고
4월이 되어도 야간자율학습 명단이 나오지 않고 기다리다 숨 넘어가겠길래 내가 엑셀 명단작성하였다.
학년이 이렇게 한 사람 잘못 기용하여 추락하는 것인지
상전을 모시고 하는 학년부장! 해 볼만하다.
4월 초였다.
교과 가르침의 바닥. 학교장 추천으로 임시 기용된 능력자라면서 무슨 능력자인지 알 수 없었다.
3년 남학생이 민원을 또 제기하였다. 수업을 너무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수한 상위권 학생들이 불만이 팽배해지고 학부모 민원도 잇달았다.
제기랄, 실력도 없고 목소리 작고 힘이 없고 담임이 수업시간 늦게 들어가는 것은 예사이고 계속 들락날락 하여 학습에 방해가 심하다는 것이었다.
수업 중에 인쇄하러 나오기가 빈번하고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아래층 교무실 교사 간에는 성인 ADHD라는 평판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실력은 어디에 노력은.
중간고사 출제 영역 10문제 중 9문제 협의하는 날, 협의가 되지 않는다.
무엇을 출제했는지 무엇을 평가하자는 것인지,
이런 사람이 어떻게 교원자격증을
출제자가 답을 모르는 것은 예사이고 부끄러움도 없다. 1학기 중간고사부터 삐거덕 거린다.
고집이 세어 교정도 하지 않는다.
혹여 오류로 재시험을 치르게 될까 봐 같이 하는 선생님은 노심초사했다. 어쩔 수 없어 부장이 취합하여 넘긴다.
서술형 채점은 더 가관이다. 기분대로 준 것인지 점수가 미친년 널뛰는 듯하여 다시 채점 기준 갖고 하고 재검토하라고 했다
그런데 감감무소식. 채점하는 데 일주일 넘게 걸렸고 다시 보니 엉망이다. 답답하여 점수 입력 제출 마감이라 다시 내가 그녀 것까지 다 채점하여
입력해야 했다.
점수 수정 도장만 2백 개 넘게 찍은 그 해를 잊을 수 없다.
상황이 이리 전개되어 혼자 감내하기 그래서 조심스레 교감에게 그간의 일을 이야기하였다.
교감은 학교장을 의식하여 학교장에 실상을 의논하였는지는 모르지만
일주일 후 나는 조심스레 다시 학교장에게 넌지시 운을 띄워 보았다.
그는 교감을 통해 보고를 받은 듯했으나 나의 이야기를 듣기 불편한 낌새를 비치었다.
학년초의 사람이 아니었다. 뭔가 변화된 학교장의 모습과 처신이 이해가 안 되었다.
학교장이 변한 것인가, 본래 그런 위인이었던가? 실망감이 차올랐다.
어느 점심시간 자연과학부장이 조심스레 그간의 일을 알려주었다.
내가 기획을 질투하여 없는 일을 만들었고 기획을 힘들게 한다고. 문제 해결은 차치하고 오히려 내가 질투하여 그런 것으로 매도하고 다닌 것을 모르고 있었다.
난 뒤통수를 얻어맞는 기분이었다.
예전과 달리 기피 3D 하나인 삼 학년 힘들다고 다 도망가고 자신의 안일만 생각하는 조직에 무슨 영광 보겠다고 이 년째 학년부장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만두자니 입시 앞둔 학생들이 눈에 밟혀서
모질지 못해 수능과 대입지원까지는 마무리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옆 교사들은 참지 말고 던져라고 했다.
그러면서 여름이 다가왔다. 1학기 기말고사 원안 출제 기간이다.
문제 출제 의도는 고사하더라도 무엇을 평가할 것인지도 모르고 질문 문항이 간결하지도 않고 읽으니 질문지 안에 답이 다 있었다. 미친?이라는 저속어가 막 나올 참이다.
1학기 중간고사의 답습이다.
그런데 문항 협의를 해도 소통이 되지 않는다.
벽 보고 말하는 듯, 문항을 고쳐야 하는 이유와 출제 의도가 뭔지 물으면
얼굴은 무표정하고 대답은 않고 생각해 본다를 반복하고 하세월이다.
그러고는 결국 우리 교과는 원안제출일을 경과 하여 재촉을 받게 된다.
이런 검증되지 않은 사람을 학교장은 예쁘다 하며 일 잘한다고 교무실에서 칭찬이 넘쳐난다고 젊은 교사들이 앞다투어 귀띰해 준다
교무실 젊은 교사들은 나보다 그녀의 영약함에 대해 더 자세히 구체적으로 알고 있었다.
일마다 오류가 발생하여 선생님들이 애를 먹고 있다는 것이고, 잘못된 것을 이야기하면 말이 통하지 않는 이해가 안 되는 저능아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는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그녀의 진면목이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3학년부장님 고생하겠다면서 다들 선생님들은 나 때문에 모두 참고 있다고 일러주며 오히려 나를 위로한다.
난 그해 가을 업무처리 무능력자의 밑바닥과 한계를 보았다.
모의고사 1교시 국어영역 시간!
문제지와 답지를 배부하고 다음 2차시 수학영역 문제지를 학급별 배부하려고 학년실에 조용히 들어갔다.
10월 마지막 모의고사 !
학교장과 그녀가 오붓하게 입을 맞추고 팔을 잡고 있다.
갑자기 들어간 나를 보고 당황한 학교장은 얼굴을 붉힌 듯하더니 아무 말없이 나가고
그녀는 백치처럼 아무런 반응 없이 앉는다.
내가 무엇을 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