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정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본성을 성악설의 측면에서 정확하게 이해하고 싶어 <<순자>>를 폈다.
맹자의 성선설과 대비한 순자의 성악설로만 단편적으로 알고 있었기에 좀 자세히 알고 싶어서이다.
전국시대 말기에 생존했던 순자는 직하 학궁(요즘 대학 통장)을 역임한 석학이다.
순자는 자신이 연마한 학문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한걸음 더 나아가 그당시 제자백가에 대해 비판하고 당시 혼란한 세태에 대한 원인 규명과 해결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려 노력했을뿐 아니라 그것을 집대성한 대학자이다.
그의 사상의 향기는 32편으로 구성된 『순자』에 농축되어 독서의 즐거움과 감화를 준다.
<권학>에서는 학문의 중요성과 청출어람을 피력하고, 죽은 후에야 학문이 종식된다는 배움의 중요성을 간파했다.
<수신>에서는 지행합일의 실행과 성찰의 중요성을, <비십이자>에서는 제자백가 학문의 모호한 시비의 기준에 대해 비판하였다.
<천륜>편에서는 단순한 자연물로 하늘을 인식하고, 운행 이치를 파악하여 불구지천을 설명하고 천인지분의 역할을 구분하여 그 역할에 따르는 조화의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예론>에서는 선을 판단하는 척도가 예이며 사람이 궁극으로 추구해야 하는 도리의 정점으로 정리했다.
<악론>에서는 음악의 사회적 기능을 중시하여 예는 사람의 외면적 태도를 음악은 내면의 성정을 다스려야 함을 역설한다.
“하늘은 사람들이 추위를 싫어한다고 해서 겨울을 없애지 않고 땅은 사람들이 먼 것을 싫어한다고 해서 넓음을 없애지 않는다.”는 것처럼 하늘은 별들의 순환과 사계의 변화무쌍은 저절로 되는 것이다.
순자는 무한한 인간의 욕망 대해 유한한 본성과 감정 그리고 욕구 중에서 인간의 방종하는 욕구를 악으로 규정하였다. 아마도 방종의 욕구의 측면에서 성악설을 주장했다고 보는 게 아닐까 한다.
인간은 자신의 욕구가 일어날 때 예를 통하여 그것을 제어하는 노력을 해야 하며, 마음으로 예를 인식하고 체득하여 실천해야만 비로소 선해진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즉, "융례중법"을 강조 했고, 동시에 예를 행하기 위해 법과 힘을 중시한 점도 주목된다. 순자의 예는 인간의 기본적인 도리이다.
또한 지도자의 자질로는 애민할 것과 인재의 공정한 등용과 인재의 적절한 배치 그리고 공명하고 정대한 것을 지니는 것이 옳다고 보았다.
타당한 주장이다. 지도자는 남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예를 지도층의 귀족적인 신분 질서를 유지하는 규범으로 인식한 부분은 백성의 관점이 아닌 견지에서 한 고찰이라는 점에서는 약간 안타까운 느낌도 든다.
순자의 시사점은 무엇일까?
옛날 문헌을 보면 정치는 하고 싶다고 하는 게 아니라 싶은 사람은 먼저 자질을 갖춘 이후에 정치를 하였다.
지금 한국 사회는 어떤가? 생각해 본다.
자질이 부족한 사람들이 그 조직이나 사회를 쥐락펴락 하고 자신의 욕망을 위해 질주한다.
도덕성은 아예 거추장스러운 것인양 여긴다. 갖은 불법으로 사유재산을 단기간에 늘리고 이를 기저로 권력과 부를 잡아 행세하려는 욕망의 불새들이라고나 할까.
게다가 수치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상황들이 전개 되는 요즘 현실 하고는 접근 자체가 다르다.
곡학아세라는 말이 실감 난다.
심지어 단 한줄 고전조차 읽지 않은 지도자들이 정치를 한답시고 정치의 구심이 되어 사회를 혼란하게 하고 있다.
점수 높게 받는 공부만 훈련한 채 진정한 공부의 의미는 모르는 것 같다. 또 부정축적한 돈으로
멋지게 요리하여 직위도 명예도 거머지려고 한다.
그러면서 그것을 사수하려 방법은 진화되고 괴물이 되어간다. 괴물이 되니 부끄러움은 아예 찾아볼수가 없다. 아니 부끄러움 자체가 없다.
그 뿐 아니라 서구 문화가 우위라는 우리 사회의 무서운 편견은 동양 고전에 대한 무지로 연결되어
인간의 도리와 예를 다하는 것이 구시대의 산물인 양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에게 악순환 하여 미래조차 어둡게 만들고 있다.
우리의 전통 선비정신은 사라진 것인가?
전통이란 단어가 케케묵은 것으로 치부되어 버린 것은
뿌리없는 민족임을 자인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우려는 기우인가?
우리 전통의 정신문화에 대한 인식은 곧 정신문화의 단절이란 생각이 든다.
정신문화의 단절과 소멸은 곧 우리 사회의 후진성이 아닐까 ? 이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돈만 추구하고 권좌에 앉은 것을 기회삼아 부끄러운 짓을 자행하는 자는 역사속에서 명멸해 간 것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사리사욕하는 지도자들로 몸살 앓는 국민이 된 작금의 현실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