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 『대승기신론 소〮 별기』를 읽다.
아름다운 우리 이야기
『대승기신론』을 저작한 마명(100-160?)은 워낙 고대인물이기도 하고 문헌에서도 좀처럼 찾기가 어렵다.
원효를 찾다가 우연히 알게 된 인물이며 우리에게 낯선 인물이다.
『마명보살 전』에 드러난 마명은 모든 논객을 대응할 만한 고행자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신라시대 고승대덕인 원효는 이 책에 자신의 사유세계를 반영한 <대승기신론 ㆍ소 별기>를 창작하였다.
'고행자'란 감각적 쾌락에서 벗어나 온전히 수행에만 전념하는 수행자를 이른다.
<<대승기신론>>은 여덟 가지 인연에 따라 논을 짓는 이유를 언급하고 있다.
원효의 사유세계 중에서 인연의 전체 모습으로 고통을 탈피하여 완전한 즐거움의 단계로 진입하는 입의 분을 주목할 수 있다.
그는 마음이 오염된 반연을 따른 세간법과 청정한 인연에 따를 출세간법으로 구분하였다.
" 숭고함이 곧 비속이고, 비속이 곧 숭고함."이라는 깊은 깨달음이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당나라 유학에 오르던 도중에 있었던 해골바가지의 깨달음과 다름이 아니며 그의 불심은 아주 파격적인 방법으로 나타냈다.
불성을 가진 마음 중생심이 대승의 믿음을 일으키며 부처가 될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여래장이라고 생각한 것이 다.
요석공주는 당대 최고 권력가의 중심에 있었던 최고 최선의 신분을 가진 여성이다. 다른 여염 아낙네와의 사랑이 아닌 것이다. 특히, 요석공주와의 사랑은 수행자로서의 파계이며 실수이다.
원효의 도당행에서 “마음 바깥에 법이 없다”라는 말로 파계를 하여 자신의 길을 개척하여 요석공주와의 사랑으로 설총을 낳았지만 이 역시 한 인간의 본능의 집착에 기인한 것과 무엇이 다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일반인의 관점에서는 그렇다.
원효는 계율을 지키는 것과 파계를 하는 것은 두 가지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며 또 다른 것이 아니라고 여겼고, 불법이 따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라고 보았다.
일반 중생이 자기 내면에 부처가 될 수 있는 바탕이 있음을 인지하고 마음의 진여 (마음의 본체)가 있음을 믿어 마음을 일으켜 수양하는 것이 대승기신론의 본질이 아닐까.
그에게 불교의 형식적이고 귀족적인 성격에 반기를 든 인물처럼 평가되고 있는 것은 무리가 있다.
나의 배움이 짧고 미력하여 깊은 내용을 언급할 수는 없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인류 지성의 알갱이가 집약된 고전을 즐기는 삶은 광석을 캐는 광부처럼 힘들지만 그 결과는 내면에 침잠하여 서서히 빛을 발한다고 본다.
물질적 자산이 증가하는 만큼 정신적 자산이 소멸해 가는 현대의 우리들에게 안식을 주는 한 줄의 고전을 읽는 묘미는 남다른 맛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