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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이미 Sep 06. 2024

영화 아가씨를 다시 보다

  <아가씨>는 2016년도 박찬욱 감독 작품이다. 작품의 전개는 저택에 감금된 상속녀를 대상으로 사기 치러 계획적으로 입주한 하녀가 그 상속녀와 동성애에 빠지고 두 여성은 남자들의 계략에 대항하여 지옥의 공간을 탈출하고 작품의 부정적 인물이 파국을 맞는 스토리이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여주인공인 상속녀 히데코를 이모부 코우즈키는  재산을 가로챌 계략으로 그녀와 혼인하고 이 후 그녀를 유폐한다.


 ‘음란서적낭독회’를 만들어 히데코에게 음란행위를 신체적으로 묘사하게 하는 등 남성의 성적 유희물로 전락시킨다.

 히데코는 정신적인 고통과 성적 희롱을 당하는 피폐한 삶을 영위한다.


후지와라 백작은 히데코와 정략 결혼을 시도하고 히테코의 마음을 얻기 위해 백작은 숙희에게 예물과 히데코의 옷을 선물하고 숙희를 이용한다.


 젖 먹이는 처녀가 되고 싶은 욕망을 지닌 숙희는 이를 수락하나 시간이 흐르면서  히데코에 대한 측은지심이 생긴다.


  히데코로 변신한 숙희를 후지와라 백작은 히데코와 공모하여 숙희의 신분을 뒤바꾸어 정신병원으로 보낸다.  결국 후지와라 백작은 히데코의 이모부에게 손이 잘려 죽는 최후를 맞게 되고 숙희가 정신병원을 탈출할 때 불이 나고 그곳을 빠져 나온 숙희는 머리를 자르고 남자로 변장한다.


히데코와 숙희는 집을 떠나기 전 음란서적을 다 불태우고, 결국 외국으로 도피할 계획을 세운다.

숙희는 후지와라 백작의 여권을 이용하여 히데코와 함께 중국행 배에 탑승한다.


 

남편의 변태적 요구로 나무에 목매달아 자살을 한 이모, 목을 매려 시도하는 히데코는 풍요 축제에 드러난 희생물로 볼 수 있다.


 이 작품에는 ‘강제 결혼’ 모티프 ‘귀향자’ 모티프가 작용하고 있다. 안드로메다를 구한 페르세우스이야기처럼, 헤라클라스사 강물의 신 아켈로오스를 공격하여 데아아레이라를 구해 내듯이 영웅(숙희)이 강제결혼의 대상자를 구출해 내는 것은 변방에서 중심으로 진입해 온다.


변방의 영웅은 물리적 힘이 약하여 계략을 주로 사용한다. 페르세우스와 그라이아이처럼 히데코의 후견인으로, 후지백작으로 온세상을 속이는 것은 이에 속한다.

축제극은 토지의 생산성을 북돋기 위해 여성들에게 음행, 음언을 수수하는 변태 욕구가 등장하여 여성을 희생화 한다. 이모가 죽은 나무가 꽃이 되는 것이나 풍어제에서 사람을 짚으로 형상화하여 바치는 것은 오딧세우스 아버지 과수원이 풍요로워지고 회춘하는 것이다.

축제에서는 대청소 모티프가 있다. 숙희가 불을 내는 것은 정화의 기능으로 간파된다. 왕이 죽은 다음의 계승은 숙희를 통해 드러나고 여성에서 남성으로 변장은 성전환, ‘반대와의 결합’이다.


 아르고흐 영웅들의 젖먹이는 남자처럼, 젖나는 처녀처럼 도둑에서 하녀, 아가씨 남자로 변신한 숙희의 신분 상승을 통해 캐릭터는 영웅화되어 있다.  


 높은 신분이  사람이 이기는 일리아스의  일부 스토리처럼, 우리 나라 속언에도 "남의 옷을  입는다"는 것은 그 사람과 같은 사람이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처럼  숙희가 아가씨 즉  남의 옷을 입는다는 것은  곧 그 사람이 된다는 것을 복선처럼 드러내어 작품의 묘미를 맛깔나게 하고 있는 듯하다.


고난을 이겨낸 영화속 인물은 선상의 보름달을 배경으로 두 여인의 결합으로 상징되어 끝을 맺는다.

생각이나 관점에 따라 시사점이 많은 작품이라 생각된다.


주인공 김민희의 도덕성은 제쳐두고서도 시간 흐른 언젠가 다시 꺼내어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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