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한 학생이 찾아와 2학년 교과심화동아리 지도 교사를 부탁 했다.
‘인류 보편적 가치가 담긴 매력 있는 고전 독서를 통해, 타 문화에 대한 경험은 물론 자신에 대한 인식과 성찰 그리고 세계를 통찰하는 안목을 갖게 하는 효용은 차치하고라도 학생들이 불확실한 미래,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그들의 정신적 버팀목이 될 무한한 에너지는 책속에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들의 부탁을 쾌히 승낙했다.
학생들은 세상을 알차게 만들 인재의 자질을 함양하는데 목표를 두고 매월 4주 금요일 야자 시간 공용1실에 모여 자신들이 선정한 도서를 읽고 생각을 교환하고 자유롭게 책을 만들 것에 합의 하였고, 자발적 의사로 모인 인문반 12명 자연반 5명을 태운 배는 출항했다.
‘독만권서. 행만리로(讀萬卷書, 行萬里路)’란 말이 있다.
독서와 경험은 삶의 중요한 밑천이다. 인성 교육의 중요성과 글쓰기를 경험하는 시간으로 운영하자.
욕심없이 고전의 배를 타고 기분 좋게 부담 없이 1년간 항해하는 것이다. 편안하게 인문학의 정신인 솔직함으로 무장하고....
봄이 가고 녹음이 짙어질 즈음, 학생들의 마음이 다소 흐트러지는 듯했으나 동아리팀장을 비롯한 동아리부원들은 서로를 위로하며 잘 버텨내었다.
하지만 자연계열 학생 서 너 명은 2학기 들어 학업의 부담으로 급기야 중도에 하차 해 버렸다. 의대를 진학하려니 독서 하는게 시간적으로 마음에 걸린다는 것이고, 그 조급함은 수학 쪽으로 흘러 갔다.
조금 아쉬웠지만 자신들의 선택이고 학부모의 입김이 있어서일 것일게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에도 휩쓸리지 않고 외롭게 끝까지 동행한 이과반 0군의 열정엔 박수를 보낸다.
무더운 여름이 지날 때, 학생들은 책읽기에 흥미를 더해 갔고, 처음보다 훨씬 수월해졌다는 고백을 해 왔다. 자유롭게 읽고 스스로 쓰고, 소통하는 분위기에서 담소하는 모습이 흐뭇했다.
이들의 시간과 땀이 고스란히 반영된 이 책에 실린 내용이 오류나 논리적 구조가 다소 엉성해도 원형 그대로 두었다. 왜냐 하면 머잖은 미래에 이 책을 펼쳤을 때, 한층 성숙해 있을 자신을 느낄 여지를 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작업을 총괄한 동아리 팀장과 편집 및 교정에 힘쓴 여러 친구들의 수고가 있었다. 입시 중이지만 도서를 선정하여 읽고 또 일일이 이름을 열거할 순 없지만, 학습 부담 속에서도 원고를 제출한 동아리 친구들의 열정은 머잖아 인생의 값진 밑거름이 되어
거목으로 자라 나리라.
1권의 알찬활동집의 발행이 또 다른 씨를 잉태하여 아름드리나무로 뻗어 나갈 멋진 날을 꿈꾸면서 열매를 얻기 위한 노력을 한 샛별들의 밝은 앞날을 응원한다.
일 년의 시간이 흘렀다. 고전 동아리를 하던 친구들은 한의대를 비롯해서 여러 군데 수시에 합격을 하였다. 면접시 고교에서 고전을 읽었다는 사실에 놀란 면접관의 이야기를 실
한의대에 합격했다. 먼저 수학 쪽으로 가서 고전 독서를 도중 하차한 친구는 수능 최저 등급을 맞추지 못했다.
안타깝다. 희비가 엇갈리는 길목이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을 내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