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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이미 Mar 18. 2024

바나나맨

최근 며칠 김치 냉장고 위에 올려놓은 바나나 한 손!

체중 증가로 외면했더니 속앓이를  했는지 거뭇거뭇 하게 외양이  변하고 있다.


사람은 참 간사한 면이 있다더니 나도 예외는 아닌 것인가? 아니면 시간이 모든 것을 변하게 하는  당연한 순리인  것인가?


나의 기억 속의 바나나 !

하찮게 방치하면 안 되는 것인데 풍요로움 속에서 외면한 채 시들어 허물어지기 시작 하고ᆢ


언제였던가? 바나나를  처음 맛본 것이ᆢ

1978 년 여름 주초고사를 준비하려 일요일  학교에 나가서 공부할 때이다.


 집은 방이 3 칸이었으나 토큰을 써서라도 집을 나와야 집중이 되었다.

 일요일 아무도 나오지  않은 교실에서  혼자 공부를 하고 있으면  집중이 잘 되어 묘한 성취의 쾌감이 있었다.

그래서 난 휴일에도 교실의  붙박이였다. 세계사 단답형 문제 50 개를 다 맞추고 국사도 달달 외워 버릴 정도로


시험 대비에 집중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교실을 확인하는 듯이 문을 열었다.  나는 일어나 인사를 하였다. 그날 당직이던  정치경제과목 선생님이 다가와 나를 격려해 주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집이 멀었던 나는 책가방을 챙겨 나와서  버스정류소에서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에 저녁 당직을 위해 저녁을 드시고  오시던  선생님은 나를 보더니  


"깐 기다려! " 하셨다.


그리고 선생님은 저쪽의  길가 로터리를 지나 반대편 상점으로 들어가시는 것이었다.   그 가게에서 주인 할머니가 파시던 바나나를 사 오시는 것이었다.

 그러는 사이 집으로 가는 버스는 한대  떠나 버렸다.

다음 버스 올 때까지 기다리려면 ㆍㆍㆍㆍㆍ

선생님은 그집에서  사온 바나나가 담긴  종이 봉투를 나에게 내밀었다.

  얼덜결에  신문지로 만든 봉투에 담긴 바나나 한 손을 받아야 할지 어쩔지 순간 갈등이 되었다.


 왜냐 하면. 우리 아버지는 남에게 물건을 받거나 심지어 남이 주는 용돈이라도 받아오는 날이면
벌을 주시는매우  청렴한 분이어서 순간  아버지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나의 오른팔을 당겨서 신문지 봉투를 쥐어 주셨다.

 그리고
"공부할 때 영양분  챙겨 먹어 가면서 해야 한다"라고 
하시며 건네주셔서 나는 부끄러워하며 어쩔 수 없이 그 바나나를 받았다.


그리고 그것을 소중히 아기 다루듯이  받아 귀가했다.

그날 저녁  동생들에게 자랑하며 꺼내 보니 우리 가족 수를 아신 것처럼 바나나는 8개였다.


 '아버지 몰래 우리끼리 같이 먹은 바나나!'

동네에서 남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잘 살았던  우리 집은  아버지가 다른 사람 보증을 서는 친절을 베푼 이후로 집의 가구에 노란 종이 닦지가 붙여졌다.

가정 형편이 사정없이 추락 이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어릴 때  좋은 것 먹던 기억 외에  정말 오랜만에 처음으로 동생들과 함께 바나나를 먹었다.
그때 먹은 바나나 맛은  유난히 달콤하고 부드러웠다.

바나나! 지금은 마트에 가면  손만 내밀면 지천으로 널려 있고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지만, 그 당시는 수입 규제가 있던 때라  쉽게 구할 수도  없었다. 설령  사려고 하면 번거롭게 수입품을 파는데,  일명 깡통 시장 (미군부대서 나오는 미제 물건이나 배를 통해 살짝 들어온 밀수 외국 물건 파는 시장)에 가야 살 수 있는 귀한 먹을 거리었으니까 말이다.

그날  이후  나에게  바나나는 과일 중에서  특별한 의미의 과일이 되어버렸고.  감사의  상징이 되어  마음 속에 자리 잡았다. 


  어려운 시기 나에게 베푼 그 분의 바나나는 내가 그분을 흠모하면서  학창 시절  아무도 모르게 가슴 속에 품은 첫사랑으로 전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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