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겨울
첫눈 내리는 날
너는 흰 강아지를 품에 안고
20 리 눈길을 걸어 왔었다.
얼은 눈길 통과하며
젖은 신발 속 시린 발가락은
열 네 해 사는 동안
가장 힘든 날이었을지도 모른다.
겨울바람 견디는
앙상한 나무처럼
너의 두 손은 떨고 있었고
찬바람에 물들어버린
앵두같은 한 귓밥은
시린 동백꽃처럼 붉었었다.
뛰는 가슴 속
빛나는 보석은
수줍어 고이 구겨 넣고
떨리는 목소리로
숙제를 물으러 왔다고
거짓말 하던
그날의 너는
아마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금빛 사춘기였었다.
난
네 마음 모르는 듯
무지의 단칼 휘둘러
눈내린 먼길 들먹이며
섣부런 효용을 방패삼아
너의 노래를 멋없이 처단하던
젖내나는 병아리 선생였었다.
지금 쯤
그날의 너는
지천명도 훨씬 쉽게 넘어
어느 가정의 든든한 아버지로
현명한 아내의 남편으로
어느 조직의 다정한 수뇌로
소외된 자를 배려하는
멋진 나목이 되어
마을을 지키고 있겠지.
오늘도
나에게 너는
여전히
하얀눈 맞으며
일요일 교문을 걸어 들어오던
그 순수하고 아름다운
홍안의 소년으로
영원히 남아 있다.
잔설이 녹는 오늘
문득
옛날의 너가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