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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숙현 Jul 16. 2023

18. 일월보검


 "사로국을 지킬 검을 만들고자 합니다."

 탈해가 상제에게 말했다. 상제는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에 잠겼다. 무길을 이길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뿐이었다.


 "일월보검에 대해 들어보았느냐?"

 "……."

 "해와 달이 만나는 순간에만 태어나는 칼이다. 그 어떤 강철검도 이길 수 있지."

 "하지만 해와 달은 한 하늘 아래서 만날 수가 없는 것 아닙니까?"

 "내가 해와 달을 불러오겠노라."

 상제는 친히 삼백산 정상으로 올라갔다. 상제의 손에는 용머리 모양의 비취가 들려 있었다.


 "뜨거운 해와 차가운 달이시여. 선계와 땅어머니의 세상을 나누신 그 시간처럼 여   기 삼백산에 모습을 드러내 주시옵소서."

 비취에서 환한 빛이 쏟아져 나왔다. 구름이 빠른 속도로 몰려드는가 싶더니, 온통 하늘이 검은 구름에 휩싸였다.


 "위험하옵니다."

 부채를 든 선녀가 말렸지만 상제는 듣지 않았다. 천둥 번개가 치고 선계의 땅이 흔들렸다. 동해 바다 한가운데 섬처럼 떠 있는 선계가 요동쳤다. 선인들과 선녀들이 노래를 바쳤다.

 "해와 달이 함께 오셔서 선계와 땅어머니 세상을 비춰주십시오."


 맨 처음 세상이 열리던 순간처럼 모든 것이 암흑 속에 갇힌 듯 보였다. 하지만 다음 순간 눈부신 빛이 삼백산 정상을 비췄다. 삼백산 동쪽 하늘에 해가 뜨고, 서쪽 하늘에는 하얀 달이 떴다.

 "해와 달이 오셨도다."


 선계에 하늘에 다시 풍악이 울렸다. 그 순간 대장간에서 기다리고 있던 탈해는 두 손을 모았다. 모든 정신을 손끝에 모으고 둥근 원을 그렸다. 그것은 태양이기도 하고 달이기도 했다.      


 "이것이 일월보검이구나."

 탈해는 날카롭게 벼려진 양날의 검을 들고 바라보았다. 검에 새겨진 해와 달의 기운이 느껴졌다. 탈해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검을 적셨다. 


 탈해는 다시 회색 수염을 찾아갔다.

 "저에게 검술을 가르쳐 주십시오."

 "너에게 일월보검이 있다 하나, 무길과의 싸움은 쉬운 길이 아니다. 목숨을 내놓는 것은 물론이고, 만의 하나 네가 지게 된다면 서로국 사람들이 모두 지옥불 같은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래도 하겠느냐?"

 회색 수염의 말은 탈해의 가슴에 깊은 울림이 되었다. 탈해는 대답 대신 일어나 회색 수염에게 절을 했다.

 

 "내가 시키는 대로 따를 수 있겠느냐?" 

 "무엇이든 가르쳐 주신 대로 하겠습니다."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목숨을 걸고자 합니다."


 다음 날부터 둘은 삼백산 산기슭에 자리 잡은 작은 오두막으로 들어갔다. 탈해는 매일 새벽 물지게를 지고 멀리 떨어진 우물에서 물을 길어왔다. 그리고 하루 종일 대장간에서 일을 한 뒤 저녁에는 장작을 패고 밭을 돌보았다. 저녁이 되면 다시 우물로 가서 물을 길어왔다. 밤이 되면 탈해는 피곤에 지쳐 쓰러졌다. 탈해는 언제 검술을 배울까 마음이 급했지만, 회색 수염의 말대로 기다리기로 했다.


 며칠 뒤, 탈해가 물을 기르고 있을 때, 회색 수염이 재빨리 탈해의 뒤에 따라붙으며 나무 가지를 던졌다. 탈해는 땅에 엎드려 피했고 가지는 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다음 날 대장간으로 가는 도중 탈해는 뒤에서 날아오는 나뭇가지에 뒤통수를 맞아야 했다.


 매일매일 오두막과 텃밭에서 탈해는 나뭇가지로 공격을 받아야 했다. 한 달쯤 지났을 때 탈해는 나뭇잎이 떨어지는 소리에도 회색 수염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다. 


 다음 날, 회색 수염은 탈해의 눈을 가렸다. 그리고는 탈해에게 목검을 하나 던져주었다. 

 "나의 목검을 막아보거라."

 "제가 어찌……."

 말이 끝나기도 전에 회색 수염은 목검을 마구 휘둘렀다. 회색 수염은 한쪽 팔 뿐이었지만 그의 검술은 여전했다. 


 회색 수염은 사정없이 목검을 휘둘렀다. 탈해는 맞지 않으려고 목검을 마구 휘둘렀다. 

 "소리에 집중해라! 너는 이미 검의 움직임을 알고 있다. 네 몸이 움직이는 방향에 선이 있다고 여겨라. 네 몸이 허공에 한 줄 그림을 그리는 것이지. 그 선과 네 칼이 하나가 될 때, 네 눈이 가려져 있을망정. 너는 온몸으로 상대를 느낄 수 있을 게다." 


 '정신을 집중해!'

 탈해는 자기 자신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순간 주위의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탈해는 나뭇잎이 떨어지는 소리에도 반응하던 자신의 발을 느꼈다. 회색 수염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마치 그 움직임이 한눈에 보이듯 그려졌다. 


 "아!" 

 탈해는 마음을 가라앉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는 일월보검의 주인이다. 일월보검은 그 칼을 만든 주인을 최고의 무인으로 만   들어준다. 너 자신을 믿고 검과 하나가 된다고 생각하거라."     


 드디어 땅어머니 세상으로 가는 날이 되었다. 회색 수염은 탈해에게 방패 하나를 내밀었다. 회색 수염이 가장 아끼던 물건이었다. 

 "강한 쇠는 부러진다. 이 방패를 가져가도록 하여라."


 회색 수염의 얼굴은 밝지만은 않았다. 쇠가 인간 세상에 어떤 일들을 몰고 올지 너무나도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탈해는 가슴이 벅차올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모두를 둘러보았다. 땅어머니의 세상에서 자신이 할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다시금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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