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바리우다 Mar 20. 2021

리어카 밀기

꼴찌 탈곡

 건널목에서 리어카를 끌고 가는 할아버지를 만났다. 재활용 쓰레기가 잔뜩 산을 이루고 있었다. 키 작고 마른 몸매의 할아버지가 끌기에는 버거운 것 같았다. 나는 원피스를 입고 있었지만, 거침없이 리어카 뒤를 밀었다. 할아버지는 미는 나를 한 번 돌아다 봤을 뿐 다시 끌기 시작했다. 예전 일이 생각나서 고개를 숙인 채 혼자 빙그레 웃었다.    


  나는 리어카에 친근감이 있다. 아주 어렸을 적엔 리어카를 탔었고 그 다음엔 밀었고 그리고 끌었다. 그중 가장 익숙한 것이 밀기이다. 리어카하면 생각나는 것이 탈곡할 때였다.

  우리는 보리를 베고 나면 밭에서 저녁을 먹었다. 저녁 이래야 보리밥에 된장국, 김치가 전부였지만. 탈곡이 이루어질 때가 언제 일지 몰라서 밭에서 먹는 것이었다. 그러나 낮에 벤 보리에 이슬이 덮일 때까지도 탈곡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언니들은 하늘을 보고 유행가를 부르다가 수다를 떨었다. 그러다 지쳤는지 셋째 언니가 한마디 했다.

  “올해도 작은아버지는 꼴찌로 탈곡해 줄 건가?”

  나는 고개를 빼고 길가를 내려다보았다. 

  ‘왜 이리 안 오시나?’ 


  우리는 작은아버지를 기다리는 거였다. 아버지가 일본에 계셔서 우리를 도와줄 남정네가 없는 걸 뻔히 알면서도, 다른 탈곡기와의 경쟁에서 이기려고 작은아버지는 꼴찌로 우리 밭에 왔다. 

  “어무니, 내년에는 좀 빨리 해달랜 헙서게. 우리도 학교에 가삽네께”

    (어머니, 내년에는 좀 더 빨리 탈곡해달라고 하세요. 학교 가는데 지장있어요.)

  셋째 언니가 불평을 했으나 정작 어머니는 작은아버지께 내색을 못 하셨다. 


  해가 지고 어스름한 빛도 다 꺼져서 밤이 올 즈음, 타타타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불빛을 매단 경운기가 달려왔다. 마음도 따라서 밝아졌다. 드디어 탈곡이 시작되는 것이다. 쌓아 놓은 보리 짚단이 있는 곳에서, 탈곡기가 왱왱거리며 돌아가고, 한쪽으로는 보리 낟알이 다른 쪽으로는 검불이 쏟아졌다. 


  그러다 얼마 오래지 않아, 동생은 졸기 시작했다. 나도 동생을 돌보다 함께 졸았다. 우리는 딱딱한 가빠 속으로 기어들어가 함께 잠들었다. 어머니가 우리를 흔들어 깨웠다. 꽤 늦은 밤, 집에 가야 할 시간이 된 거였다. 졸린 맘에 그냥 계속 자고 싶었건만 일어나려 하니 죽을 맛이었다. 정신이 들어 쳐다보니 탈곡은 이미 끝나고 작은아버지의 경운기는 탈곡기와 더불어 사라지고 없었다. 탈곡기를 실은 옆에 곡식들을 실어 날라 주면 얼마나 좋았을까? 


  드디어 그날의 하이라이트, 마지막 노동이 기다리고 있었다. 언니들은 어머니와 안간힘을 쓰며 탈곡한 보리 마대들을 리어카에 실었다. 보름달이라도 뜨면 참 좋았으련만! 어둠 속에서 리어카를 움직여야 했다. 둘째 언니와 셋째 언니가 번갈아 가며 끌었다. 둘째 언니가 끌면 셋째 언니와 어머니는 뒤에서 밀었다.

  “아고, 이거 어디 걸린 모양이여. 호꼼 이서 보라”

  (아이고, 이거 어디에 걸린 모양이네. 잠깐 있어 봐라)


  둘째 언니가 끌다가 어디 부딪쳤는지 리어카를 움직이지 못했다. 어머니와 언니들이 다시 방향을 바꿨는지, 갈지자로 횡보하면서 리어카가 간신히 넘어갔다. 당시 길은 포장도로가 아니었기에 돌부리에 걸렸나 보았다. 

  나는 남동생 손을 붙잡고 그 뒤를 걸어갔다. 탈곡한 곡식을 싣는 것만으로도 리어카가 꽉 찼기 때문이었다. 동생은 졸린 지 몸을 자꾸 내게로 부딪쳤다. 그때마다 나는 동생의 어깨를 흔들었다. 손을 맞잡고 흔들거리며 동생과 걷는 길은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이 지루했다. 그렇게 밤늦게 도착하면 우리들은 씻지도 않고 지쳐서 곯아떨어졌다. 


  중학교에 가기 전부터 리어카를 미는 것은 내 차지가 되었다. 겨울철 바닷물에 가서 배추를 절여야 했는데 그럴 때 우리는 배추를 리어카에 싣고 신작로를 신나게 달렸다. 배추를 절인 후 싣고 돌아 나올 때, 언니들에게 내가 끌어본다고 했다. 소금물에 저려져서 제법 무거웠다. 

“언니, 이거 잘도 무거운 게”


  내가 투정했더니 셋째 언니는 보리 탈곡했을 때의 이야기를 툭 던졌다. 나와 동생이 잠잘 동안에 늦게까지 리어카로 곡식을 날랐던 이야기를. 나르고 나서 언니들은 쪽잠을 자고 새벽 일찍이 버스를 타서 시내에 있는 고등학교로 가야 했다. 언니의 한 마디가 귀를 울렸다. 


 “아침에 학교 가젠 교복으로 바꿔 입을 때 보면, 배가 항상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더라”

  언니들은 리어카로 곡식을 실어나르면서, 리어카 손잡이를 배에다 대고 힘을 줘야만 했기 때문에 멍들었던 것이다. 나는 아차 싶었다. 그때 처음으로 처지를 바꾸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 옛날의 고생 덕분인지 나는 독립심, 생활능력 이런 게 강하다는 소릴 듣는다. 그걸 보면 작은아버지가 행했던 골찌 탈곡이 나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세상에 온전히 나쁜 일만은 없나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경사진 보행자 안전지대를 지났다. 조금 더 가니, 리어카 할아버지와 나는 갈 곳이 달라졌다. 나는 말 없이 손을 떼고 내가 갈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작가의 이전글 감귤 따던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