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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리우다 Mar 26. 2021

100세 외숙모와의 하룻밤

   “나와 동갑나기 남정네가 이시민 같이 살아시민 조켜.”

      (나와 동갑내기 남자가 있으면 같이 살고 싶구나.)

  지난겨울, 친구의 도움을 받아 찾아갔을 때 외숙모가 헤어지기를 아쉬워하며 던지신 말씀이셨다. 말씀 만이 아니라 문밖까지 나와 배웅하는 손짓이 가지 말라고 붙잡는 듯하였다. 그 잔상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외숙모와의 하룻밤을 계획했다.  

  

  외숙모는 유리창 앞으로 얼굴을 돌린 채 가만히 밖을 쳐다보며 야자수 나무를 응시하고 계셨다. 눈만 들면 마주치기 쉬운 곳에 그 나무가 있던 것이다. 내가 유리창 쪽으로 다가가 외숙모님하고 불렀지만, 역시나 외숙모는 선뜻 누구인지를 알아보지 못했다. 외숙모는 올 1월에 100세를 넘으셨다. 지난번 왔다 간 조카 정이라고 몇 번이나 말해야 했다.


  “아이고 또 어떵허연 완댜?” (어떻게 또 왔니?) 

  “추운디 이래 오라부져 돋돋허게 이래 오라부져.” (추운데 이리 와라. 따뜻하게 이리 오너라)

  외숙모는 엉거주춤 일어서서 보일러를 돌리며 침대로 우리를 부르셨다. 농협공판장에 들러서 산 도넛과 찐빵과 구운 달걀 그리고 딸기를 저녁으로 먹었다. 


  외숙모는 침대에 기대고 우리는 그 아래에 앉은 채로 옛날얘기가 시작되었다. 우리가 외삼촌을 ‘오라방(오빠)’이라고 불렀던 일이며 술을 고팡(창고)에 숨겨뒀더니 외삼촌이 술통 하나를 다 비울 때까지 창고에 앉아 있었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외숙모댁의 귤을 서리하던 날이 떠올랐다. 아무도 몰래 큰 귤 하나를 따서 가지고 나가다가 외숙모와 딱 맞닥뜨렸다. 그 귤은 작은 내 옷이 감추기엔 불룩하게 튀어나왔었다. 나는 무안해서 인사만 했었다.


  “그때 외숙모님은 인사만 받고 야단도 안 칩디다. 기억남수과?” (기억나십니까?)

  “아니 기억 안 남져. 겅헌 일 이서샤?” (그런 일 있었니?)

  외숙모는 몰랐다는 듯하시더니 예전에 어머니와 물질하던 얘기로 옮아갔다. 

  “니 어무니가 지금까지 살았어야 하는디, 나만 질기게 살아졈져..”

     (너희 어머니가 지금까지 살았어야 하는 데 나만 오래 사는구나)


  그러더니 또다시 동갑내기 남자와 같이 살고 싶다고 하셨다. 나는 깜짝 놀랐다. 외삼촌은 내가 어렸을 적, 그러니까 외숙모가 쉰 살도 되기 전에 돌아가셨다. 술을 좋아하셨던 외삼촌은 결국 간이 나빠 돌아가셨는데 외숙모는 꿋꿋하게 자녀들을 키우시며 전혀 쓸쓸한 내색 없이 잘 살아오신 분이셨다. 그런 분이 어린 조카 앞에서 담담하게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이다.


  100세가 넘으셨는데도 허리만 살짝 굽을 뿐 외숙모는 정정하시다. 두 발로 잘 걸어 다니고 미역국도 끓일 만큼 건강하시다. 그렇게 집안에서 홀로 생활하심에 별 불편은 없어 보였다. 젊은 시절에 물질이며 농사일을 오래 해서 육체적 건강이 다져진 결과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 치매기가 있으신 듯, 약을 먹고 계셨다.


  얘기를 끝내고 모두 씻고 나니 아홉 시가 되어갔다. 언니가 기도할 시간이었다. 언니와 내가 묵주를 꺼내는데 외숙모는 벌써 기도를 시작하셨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불펜을 주지 마옵시고”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시고’를 ‘불편을 주지 말게’로 바꾼 듯하다.)

  갑자기 불펜이라는 소리에 내 귀가 쫑긋하였다. 언니와 기도를 하는데 외숙모님의 암송 기도는 다시 또 돌아 ‘불펜을’ 하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킥킥 웃음이 나왔다. 

  “나 기도가 틀렴샤?” (내 기도가 틀린 거니?) 


  외숙모는 기도를 하다말고 물었다. 나는 속으로 기도문이 어쨌든지 간에 외숙모가 절절히 바라는 게 있으리라 생각되어서 딴생각에 그랬다고 죄송하다고 얼버무렸다. 우리는 외숙모 침대 밑에 잠자리를 깔았다. 언니는 잠자리에 들자마자 코를 골기 시작했다. 

  내 옆에서 콧소리를 내며 자는 언니도 외숙모처럼 늙어갈 수가 있을까? 나는 어떨까? 내가 외숙모처럼 오래 살게 된다면 어떤 기분으로 하루를 살 수 있을까? 이러저러한 생각에 쉽사리 잠들 수 없었다.


  외숙모는 이제 점점 죽음이 다가오는 시점에 서 있다고 느끼시는 듯했다. ‘이젠 내 차례인데’ 하는 생각을 하시며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두려움과 혼자라는 고독감을 절절히 느끼시는 것 같았다. 나란히 함께 누워있다가 같은 시각에 똑같이 죽음의 강을 건넌다면 얼마나 좋을까? 낯선 길을 함께 찾아 나서는 동무처럼 말이다.   

  

  뒷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외숙모는 조용히 뿌연 유리창을 닦고 있었다. 우리를 배려해서 보일러를 세게 틀었기에, 유리창이 온통 증기로 뒤덮인 것이었다. 게다가 내 핸드폰에는 알람이 네 시 반에 울렸다고 나타나 있었다. 아뿔싸, 내가 새벽 비행기를 타느라고 그 전날 맞춰두었던 것을 풀지 않고 둔 탓이다. 짐작컨데 외숙모는 밤새 잠들기 힘들었던 듯했다. 


  “죄송허우다. 시계가 밤 중에 울려시컨게 마씨”

   (죄송합니다. 시계가 밤 중에 울렸겠네요.)

  내 말에 외숙모는 그냥 밤샐 때도 있고 낮에 자기도 하니 괜찮다고 하신다. 언제나 그렇듯 넉넉한 마음이 전해져왔다. 일어나 유부초밥을 만들고 떡국을 끓였다. 셋이서 맛있게 먹고 설거지를 하는데 요양보호사가 왔다. 외숙모가 한의원에 가실 시간이 된 거였다. 


  시골이라 고향에는 찬 바람만 마을을 휘젓고 있다. 예전에 거대한 그늘을 드리웠던 폭낭(팽나무)은 베어 없어져 버리고 그 자리에는 작은 주차장이 들어서 있다. 옴팡진 길 주변의 나무들도 사라져버렸다. 밖거리(딸린 집)도 밀어 없어져서 넓게 트인 빈 뜰만이 쓸쓸하다. 그 대신 뜰 너머엔 낯선 야자수 한 그루가 하늘 높이 솟아올라 있다.


 젊은 시절에는 잘생긴 얼굴에다 힘이 좋았던 외숙모가 주름진 얼굴과 허약해진 모습으로 내 앞에 섰다. 나는 오늘 떠날 거라며 외숙모와 포옹을 하고 손을 잡고서 동네 어귀까지 배웅해드렸다. 외숙모는 한쪽 팔은 요양보호사에 의지하면서도, 있는 힘껏 당신 발로 걸어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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