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히스클리프

by 비바리우다

“야, 너는 돼지 목매달고 있냐? ”


체력장을 하던 날, 매달리기를 측정하던 미술 선생 얼굴이 벌게지더니 버럭 화를 내었다. 그 말에 무안해진 나는 얼른 철봉에서 내려왔다. 웬만한 선생 같았으면 못 본 척한다든가, 아니면 ‘그만 내려와라’라고 점잖게 말할 터인데, 그는 달랐다.


‘뭐야? 내가 돼지란 말인가? 돼지여도 그렇지 어떻게 그렇게 내뱉을 수 있나?’


그렇지 않아도 1년 전보다 10kg이나 더 살이 찐 상태였다. 마침내 교복이 꽉 끼었고, 움직이는 데도 숨이 찼다. 그렇게 불어난 체중 때문에 팔 힘이 빠지려 하자, 얼른 턱을 철봉에 댄 것이었는데 그렇게 정곡을 찌르다니! 너무 화가 나 울고 싶은 걸 꾹 참느라 입술을 깨물었다.

여고 시절, 미술 선생은 자기는 재능 있는 화가가 될 수 있는데, 돈 때문에 학교에 붙들려있어 늘 기분이 나쁜 사람이었다. 그는 교사라는 직업을 하찮게 여겼으며 그와 관련된 자조적인 말을 자주 내뱉었다.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도 제자라고 귀여워하기는커녕, 뒹굴어 다니는 똥개마냥 한심하게 여겼다. 그는 검은 뿔태 안경을 쓰고 학생을 혼내 킬 때는 삐딱하게 고개를 돌리고서 째려보면서 말을 이죽거렸다.

“뭐 잘났다고 떠들어?” “해봤자지...” “꼴~값 떨고 있네!”


당사자가 내가 아니어도 그런 말이 들리면, 나 또한 주눅이 들고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튼 그는 폭풍의 언덕에 나오는 히스클리프처럼 신경질적이고 독특했으며 그러다 보니 여고생 중에 그를 좋아하는 학생은 하나도 없었다.


여고로 진학하고서 처음 맞았던 미술 시간이 떠오른다. 시골에서 중학교를 다녔던 나로서는 미술 준비를 하지 않았어도 어떻게든 수업 시간을 잘 때우곤 했다. 준비를 못한 친구들도 많았고 전공이 아니어선지, 선생님은 너그러웠으며 연필 만으로도 한 시간이 즐겁게 흘러가곤 했다. 게다가 나는 또래 중에서 그림을 곧잘 그린다는 평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여고의 경우는 달랐다. 준비가 안 된 친구는 나 외에 한 명밖에 없어서 나는 무척 당황스러웠다. 마침, 짝꿍이 착한 친구여서 자기의 물품을 빌려주었다. 그나마 미술 선생이 수업에 들어오기 전이어서 사달이 나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큰일 날뻔했다.


그날 선생님은 우리에게 구성을 보여주셨다. 육면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것이었는데 다 그리고 나면 그라데이션으로 색깔을 입혀가며 전체적으로 조화롭게 표현해야 하는 그림이었다.


‘저 많은 정육면체를 뭣에다 쓰려고 그리라는 것일까? 그냥 중학교 때처럼 적당히 풍경이나 그리라고 하지,

왜 이렇게 재미없는 걸 하라는 거야?’라고 생각하면서도 어찌어찌 그렸다.


그러나 시간 내에 구성물을 다 그리지 못했다. 당시 나는 그 학교로 혼자 진학했기에 뭐든 긴장하고 지레 겁을 먹었다. 종이 울리자, 하얗게 질려서 고개를 돌아보았더니, 나뿐 아니라 다른 급우들도 마찬가지였다. 겨우 한숨 돌렸다. 그러자 선생님은 집에 가서 다 그려 오라고 하셨다.


한동안 미술 시간에 우리는 온통 구성만 했다. 수업이 끝나고도 시간이 모자라서 미술이 늘 숙제로 남았다. 그 때문에 모두 치를 떨었다. 그 정도가 얼마나 심했는지 1970년대인 그 옛날이었는데도 몇몇 엄마들이 학교에 전화까지 넣을 정도였다. 그러나 구성 그리기를 완성할 때까지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새벽 두 시까지 육면체를 그리고 부분마다 명암을 달리하는 숙제를 성실히 하였다.

구성을 다 끝내던 날, 미술 히스클리프는 내 그림을 걷어가셨다. 걷어간 작품들은 축제에 출품된다는 것이었다. 드디어 나는 그에게 인정받은 것 같아 되게 기분이 좋았다. 속으로 나는 ‘히스테릭하면 어떻냐? 성실히 한 것을 인정해 주고 저렇게 뽑아줄 줄 아는 사람이면 됐지.’라고 마음을 먹었었다.


그런데 막상 학교 축제가 시작되어 전시회장을 찾았을 때, 내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샅샅이 뒤져보았다. 그러다 구성 작품들이 줄줄이 걸려있는 것 중에 내 그림이 분명한데, 미술부였던 친구의 이름으로 내 것이 걸려있었다. 실망과 더불어 큰 스크래치가 내 가슴을 쓸고 지나갔다. 시골 학교에서 나는 공부든, 그림이든, 글쓰기든 인정을 받았었다. 그러나 아무도 모르는 도시로 올라와. 어떻게든 인정을 받고 싶었고, 전시회가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좌절되었으니, 어린 마음에 그 상처가 어떠했으랴......


그다음 해 그는 드디어 화가의 길을 제대로 가기 위해 서울로 떠났다. 그러나 그가 유명한 화가가 되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늘 세상에 불만이 많던 그의 늙은 모습은 어땠을까? 여전히 히스클리프로 남았을까? 아니면 모난 부분이 깎여나가 KFC 할아버지 같은 모습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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