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바리우다 May 28. 2021

굿과 점

  저녁 이슬이 내린 후였다. 주변은 어두워졌는데 어디선가 댕댕댕댕 하고 꽹과리를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살던 면 소재지 중간에 있는 구눈세 동산(마을 이름)에서 나는 소리였다. 초가집 앞마당에 횃불이 타고 있었고 멍석 가운데에는 한 사람이 쓰러질 듯 앉아있었다. 

  그 사람 주위로 색색의 옷을 입고 모자를 쓴 무당이, 무당 칼을 들고서 댕댕거리는 소리에 맞추어 버선 발끝으로 춤을 추고 있었다. 마당에는 돼지머리에 하얀 곤밥, 사과, 떡 같은 먹음직한 음식들이 층층이 상에 널려 있었다.

  나는 에워싼 사람들 틈에 끼여 구경을 하였다. 전기가 없을 때라 시커멓게 어두운 밤이었다. 무당의 붉고 푸른 옷이 휘돌아가고 그가 잡은 칼날이 불빛에 반짝여서 내 마음이 묘하게 뒤흔들렸다. 무당은 뭐라 중얼거리며 미친 듯이 겅중대다가 작두에 올라탔다.


  집에 와보니 굿 구경을 한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언니들은 왜 굿을 하게 되었는지 알게 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집 아저씨가 밤 깊은 시각에 이웃 마을에서 산길을 넘어오는데 앞에 웬 불빛이 자길 비추고 있어서 불빛을 따라갔더란다. 그는 무엇에 홀린 듯 움직였다. 밤 깊도록 헤매는 줄로 모르고 가다가 멈추어서 보니, 가시덤불 안의 무덤이라는 오싹한 얘기였다. 아저씨는 혼비백산해서 집을 찾을 수 없었고 뒷날 사람들에게 발견되면서 그때부터 앓아누웠다고 했다. 그래서 큰 무당을 불러다 굿을 한 거였다. 사실을 확인할 순 없지만, 어렸을 적에 들은 얘기라 잊혀지지 않았다.


  내가 살던 신창리는 바닷가 동네라 작은 굿도 무척 많았다. 고기잡이를 떠난 사람의 무사 귀환을 빌며 간단히 바닷가 바위 위에다 음식을 차려놓고 비는 것이다. 굿을 끝내고 나면, 길이 30cm 정도의 보릿짚으로 만든 조그만 배에다 흰 쌀밥과 빨간 사과 등을 담아 바다에 띄웠다. 어떨 때는 서너개의 보릿배가 물결에 따라 흔들거렸다. 나는 배에 있던 귀신이 내게로 옮을까 두려워 얼른 도망치곤 했다. 


  어른이 되면서 두려움은 서서히 사라져갔다. 사물이 뚜렷하게 보이면서 어렸을 적에 환상적으로 느꼈던 것들도 함께 사라지고 없어졌다. 그런 탓인지 나는 굿은커녕 점을 본다는 것에 대해서도 우습게 생각하고 있었다. 스스로 헤쳐나갈 일을 엉뚱하게 다른 데에 의존한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그러던 내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닥쳤다. 대학을 간 아이가 공부는커녕 매일 컴퓨터 게임에 빠져 사는 것이었다. 1년이 넘도록 매사 의욕 상실에 컴퓨터 게임만 되풀이하는 것을 보니, 더이상 참아낼 수 없었다. 친구에게 하소연을 했다.     


  “그럴 때는 사주팔자를 한번 보면 마음이 편해질 수 있어”

  친구는 내게 권하면서 얘기가 나온 김에 같이 가자고 했다. 무심코 친구 따라나섰다.


  철학관에는 내 나이만한 중년 남성이 사주팔자를 보고 있었다. 그는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時)를 물었다. 대충 기억나는 시간을 대었다. 그러자 그는 내 아이의 성격에 대해서 그럴싸하게 얘기했다. 그 말을 들으니 왠지 신임이 갔다. 맞장구를 치는 내게 사주 아저씨는 이제 방황도 끝날 때가 왔다면서 희망을 섞인 말로 끝을 맺었다. 그의 말이 왠지 위로가 되었다. 방황의 끝이라니, 나에겐 이보다 더 반가운 소리는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이 맘이 힘들 때면 사주나 점을 보나보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반수를 하고자 하는데 잘 될까요?”

  나는 구체적으로 궁금한 점을 물었다. 


  “안돼요. 안돼!”

  사주 아저씨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잘라 말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하기사 벌써 7월인데다, 애가 저렇게 정신이 빠져있는데, 성공하겠어?’


  그래도 아이가 원했던 거라 다시 말을 꺼냈다.

  “얘가 원하는데 시켜보는 게 낫지 않나요?”

  “에이 점수가 잘 나오지 않아, 지금 다니던 학교 그냥 다니게 해요.”

  “F학점도 많아요”

  “여름이 지나고 나면 정신차려요. 무사히 졸업할 수 있어”  


  집으로 돌아올 무렵 아이의 난 시(時)가 궁금해졌다. 앨범을 뒤져서 보니, 무려 세 시간이나 차이가 나는 거였다. 이걸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명함을 받아왔던 터라 사주 집에 전화를 걸었다. 아저씨는 별 차이 없다며 믿으라고 했다. 그래 성격을 비슷하게 맞춘 걸 보면, 예언도 맞겠지. 


  아이가 반수 공부를 시작했다. 차마 말릴 수 없었기에 원하는 거나 들어주자는 맘이었지만 내 속은 영 내키지 않았다. 

  ‘내년에 복학할 데가 있으니까......’

  그렇게 스스로를 위안했다. 그럼에도 아이가 중간중간 슬럼프에 빠져서 공부를 않고 헤맬 때마다 나는 사주 아저씨의 예언이 생각나 맘이 타들어 갔다. 


  그로부터 5개월이 흘렀다. 아이는 자신이 원하던 대로 나보란 듯이 수능 점수를 잘 받았다. 그 결과 원하던 대학에 들어갔던 것이다. 사주 아저씨의 예언은 보기 좋게 엇나갔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사주풀이에 기대봤지만 지금 드는 생각은 이것이다. 정말 사주팔자가 있기나 한 것일까?

작가의 이전글 금 발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