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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리우다 Jun 11. 2021

채변 봉투

   그날은 채변 봉투를 걷는 날이었다. 아침부터 변소에 가서 애껏 힘을 써 봤는데 소용이 없었다. 이게 변소에 앉아서 변소 구멍 속으로 편하게 싸는 것하고 종이를 받아놓고 채변을 준비하는 것하고는 기분부터가 다르다. 종이 위에다 변을 보는 것은 힘들었다. 

  게다가 그 전날, 나는 까맣게 잊고서 시원하게 대변을 봐버렸다. 그리고 뒷날 아침에야 채변 봉투 생각이 난 것이다. 할 수 없이 그냥 등교를 했다. 


  교실에 들어서니 공기가 퀴퀴한 것 같다. 그래서 생각을 안 하래야 안 할 수 없게 되었다. 어쩌지 못하고 마음고생만 하고 있는데 옆자리에 앉은 진순이가 아침부터 아픈 곳을 콕 찌른다.


   “너 대변 봉투 가져 완?”

   “아니, 아무리 애써도 안되어 부난, 그냥 완게. 경 안 허여도 걱정햄져.”

     (아무리 애써도 안되어서 그렇지 않아도 걱정하고 있다.)    

  그랬더니 진순이가 시원스럽게 한마디 한다. 


  “야, 너네 집 변소 있잖아 게!” (너의 변소에서 퍼 오면 되잖아의 의미)    

  진순이는 그즈음에 같이 앉게 된 친구였다. 나는 소심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안 하는 범생(?)이 라면 진순이는 모두를 잘 웃기고 요령이 많아 시원스레 일 처리를 잘하는 친구였다.   

  

  “선생님 어신 때, 집이 가까우난 혼져 갔다 오라.” 

     (선생님 안 계신 때, 집이 가까우니 얼른 갔다 와)    


  진순이의 부추김에 나도 마음이 동하여 대변 봉투를 들고 가슴이 터질 듯이 집으로 달려갔다. 집에 가자마자 변소로 가서 종이를 폈다. 긴 막대기를 들고 변소 안의 그것을 찍어 올렸다. 그리고 성냥 살을 이용해서 대변 봉투를 열고 살짝 찍은 다음 비닐을 봉했다. 마지막으로 성냥불로 비닐 윗부분을 녹여 붙였다. 다시 대변 봉투 안에 담아 넣은 다음 가장 바깥은 종이로 싸서 학교로 뛰어갔다. 


  교실로 들어가 미닫이문을 여니 심장은 벌떡벌떡 뛰고 코끝엔 대변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온 교실에 대변 냄새가 퍼져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다행히 조회 시간 전이라 선생님은 오지 않았다. 

  진순이는 성공했구나 하듯이 웃으며 나를 맞아주었다. 직원 조회가 끝났는지, 선생님이 들어오시더니 반장보고 변 봉투를 걷으라 하시며 선생님은 한 마디를 더 첨가하셨다.   

 

  “오늘 채변 봉투 안 가져온 사람은 이따 청소 후에 남아라.”  


  1970년대만 하더라도 우리들은 마루를 깐 교실에서 살았다. 청소시간이면 모두 걸레를 들고 양초 조각을 문지르며 윤기가 나도록 닦아댔다. 교실뿐 아니라 복도까지 나무 마루여서 청소시간은 오래 걸렸다. 

  그러니까 청소 후에 남는다는 것은, 그렇게 청소를 하고 나서도 집에 가지 못하고 선생님이 시키는 청소를 더 해야 하는 거였다. 나는 진순이 덕분에 청소를 모면하게 되어서 기분이 좋았다. 둘이서 히히덕거리며 집으로 향했다.    


  한두 주일이 지나서인가 선생님이 대변 검사 결과를 발표했다.     

  “다음 호명하는 사람들은 회충, 요충이다. 정이, 진순이, ......”    

  대체로 회충이 가장 많이 차지했다. 나는 두 가지나 되었다. 두 가지 이상 되는 친구들은 나 외에도 여럿이 있었지만 그래도 창피했다. 이어서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뱃속에 기생충이 많은 사람들은 조심해야 해. 이거 큰 병이 생길 수가 있고 옮길 수도 있는 거니까. 내가 주는 약을 꼭 먹고 내일 변을 볼 때는 신경 써서 몇 마리 나오는지 보고 와.”


  기생충의 종류에 따라 아이들이 먹을 약이 다른지, 선생님은 일일이 한 사람씩 불러서 약을 나눠 주셨다. 변소에서 떠 온 건데 어떤 약을 먹어야 할지 알 수 없어 고민이 되었다. 할 수 없이 동병상련인 진순이에게 물으니 한 마디를 확실하게 보탰다.    


  “야, 약인데 먹어서 나쁠 건 없주게. 기냥 다 먹어불 게” 

     (약인데 먹어서 나쁠 건 없지. 그냥 다 먹자)    


  시원한 진순이의 대답에 저녁에 약을 먹었다. 그런데, 뒤 날 아침 변소에 앉아서 볼일을 본 다음에야 또 생각났다. 아차 숫자를 세야 하는데 어떡한담. 할 수 없이 고개를 아래로 떨구고 한참을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어떤 건지 알 수가 없다. 스스로 어리석다고 책망을 하며 학교로 갔다. 역시 진순이에게 의지할 도리밖에 없다.  

  

  “진순아, 너 그거 봔?” (그거 봤니?)

  “으 무사?”(어, 왜?)

  “나 또 멍청허니 세는 거 잊어부렀져. 어떵허코?”( 멍청하게 세는 거 잊었으니 어떡할까?)


  진순이는 웃으며 그냥 허옇게 생긴 게 뭔가 있었는데 몇 마리인지는 모르겠다고 한다. 할 수 없이 우리는 회충 두 마리로 정했다. 드디어 조회 시간이 되어 선생님이 교탁에 서셨다.


  “어제 기생충 약 먹은 결과를 조사한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정이 너는?”

  “네, 회충 2마리입니다”


  마음은 찜찜하고 속이 찔리는 순간임에도 진순이 덕분에 거짓말이 술술 나왔다.

  선생님은 아무 말 없이 기록을 하셨다. 다른 친구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더 이상 물어보지 않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대단하다. 전국에서 제출하는 그 많은 학생들의 변(便)을 무슨 수로 다 검사할 수 있었을까? 아무튼 현미경으로 검사해야 알아낼 수 있는 기생충들임에도 그 많은 변(便)들은 검사 되었고 검사 결과와 약까지 학교로 배달되었다. 그리하여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약을 먹게 했고 결과를 보고해야만 했다. 게다가 학생들은 회충인지 요충인지 구분할 능력이 없음에도 그 수를 세야만 했다. 아마 선생님도 그 상황을 아셨지만 보고를 해야 했기에 아무 말 없이 기록하지 않았을까?    

 

  그 당시엔 당연하게 받아들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웃기는 이야기다.

  어쨌거나 그렇게 흔하던 기생충들은 어느 사이엔가 우리 주변에서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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