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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리우다 Jun 18. 2021

보름달 빵

  빵은 동그랬다. 보름달처럼 생겨서 빵 이름이 보름달이었다. 보름달은 달걀을 넣어 구운 것처럼 겉은 옅은 갈색이고 속은 노란색이다. 게다가 가운데에 흰색 크림이 들어있는 폭신한 카스텔라였다. 느끼한 크림 때문에 한 개를 다 먹으면 속이 만족스러웠다.


  어머니는 그 카스텔라를 좋아했다. 당신은 늘 된장물을 게어서 보리밥을 말아 먹거나 고추를 된장에 찍어 먹는 것으로 점심을 끝냈기 때문이다. 논에서 일하던 어머니는 그래서 배가 고팠다. 간식을 챙겨 먹기엔 돈도 시간도 없었다. 그런 어머니께 보름달 빵은 훌륭한 간식이었다.


  어머니에게 보름달 빵을 사 온 사람은 셋째 언니였다. 언니는 수협 은행원이었다. 언니가 수협에서 하는 일 중의 하나는 동네 가게를 돌아다니며 저금할 돈을 수금하러 다니는 거였다. 언니는 어머니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랬기에 언니는 종종걸음을 치며 바쁘게 가게를 돌았다. 그러다가 마을 중간에 있는 잡화점에 들을 때쯤이면 어머니가 일하는 논이 가까웠다. 서둘러 가게에서 빵과 우유를 집어 들었다. 논으로 달음질쳐 뛰어갔다. 어머니는 예상대로 논에서 피를 뽑고 있었다. 언니는 보름달과 우유를 어머니께 내밀었다.

    

  “어머니 이거 먹엉 헙서게”  

    (이거 드시고 하세요)

  어머니는 언니를 보고 빙그레 웃었다.

   

  “니나 먹주기 머허레 또 와시니?”

    (너나 먹지 뭐하러 또 왔니?)

  “난 먹언마씸. 겅허난 혼저 먹읍서 보져”

    (난 먹었으니 얼른 드세요.)    


  어머니는 말씀은 그리하시면서도 기쁘게 빵을 받아들었다.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셋째 언니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부지런히 뛰어서 사무실로 돌아갔다.   사무실에는 언니보다 상급자인 주 대리가 있었는데 언니가 들어오면 소리부터 빽 질렀다.     


  “김양~ 뭐하다 이렇게 늦게 오는 거야. 일을 어찌하고 그 모양인 거야?”   

 

  그는 치졸한 남자였다. 평소 사무실에 있을 때도 임시직인 언니를 무시했다. 언니는 인문계 고교를 졸업했기에 부기나 주산을 몰랐다. 그것은 은행원으로 일하려면 당시에 필수적인 업무 능력이었다. 매일 저녁 사람들이 퇴근하고 나면, 언니는 낮에 일했던 모든 서류를 끄집어내어 홀로 공부를 했다. 원장을 들여다보며 대차대조표를 다시 점검했다. 수입과 지출이 맞는지 계산하고 또 계산했다. 언니의 서투른 주산 실력도 나날이 좋아졌고 회계 능력도 늘어갔다.


  어느 날 그는 언니 코앞에다 서류 더미를 내던지며 법석을 떨었다. 언니가 수금 나가기 전에 정리해서 곱게 쌓아두었던 서류였다. 정성스레 정리해두었던 서류가 언니 눈앞에 떨어져 내리니 자존심이 패대기 처진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언니는 말없이 서류를 주웠다. 그날 언니는 밤늦도록 울면서 일했다. 눈앞에서 흩어지던 서류하며 경멸하듯 쳐다보던 그의 표정과 말투는 나이가 먹어도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럼에도 언니는 달음질을 치면서라도 어머니께 보름달 빵을 사 가려고 애썼다. 자신을 질책할 주대리보다 어머니의 눈망울이 더 선명히 다가와서였다.


  정기 감사가 내려올 때가 되어 수협에는 비상이 걸렸다. 언니는 수협에 늦게까지 남아서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어머니는 언니의 보름달 빵을 기다리지 않았다. 대신 언니가 하는 일이 잘되도록 기도를 했다.

 

  서울에서 감사관이 내려왔을 때, 언니는 지점에서 질문을 받는 사람으로 차출되었다. 다행히 감사관의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을 잘했다. 매일 남아서 일한 결과였다. 감사는 잘 끝났다. 언니네 수협 지점은 표창장을 받았다. 언니는 정식 직원이 되었다. 매일 밤 늦게 남아 원장을 맞추며 일하다보니 주산이며 부기 등의 상업 과목을 잘하게 되었고 때마침 시험을 통해 실력을 인정받았던 것이다. 주 대리의 빈정거림도 사라졌다. 지점이 표창장을 받을 무렵 그는 승진을 했고 타 지점으로 발령받았기 때문이다.


  정직원이 되던 날 언니는 보름달 빵과 우유을 잔뜩 사 왔다. 엄마뿐 아니라 온 가족이 보름달 빵을 받아들었다. 그 빵처럼 우리 모두 환하게 헤벌쭉하니 웃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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