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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리우다 Jun 26. 2021

인생의 물허벅

   물허벅의 둥그런 어깨가 빛에 반사되어 구덕 속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물허벅을 진 언니들이 부러웠다. 나도 언니들이 번갈아 가며 물허벅을 지듯 그렇게 지고 싶었다. 그게 그렇게 재미있게 보였다.

  어머니의 물허벅은 항아리처럼 옹기로 된 것이었다. 그것은 너무 커서 나는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자 어머니는 내게도 회색빛 양철로 된 물허벅을 사주셨다. 어머니 것보다 작고 귀여운, 내 어깨에 맞춤 맞는 크기였다. 나는 빈 물허벅을 지고 어머니를 따라 신나게 샘물로 갔다.


  동네 샘물은 바닷가에 솟아나는 지하수였는데, 가뭄 때를 제외하고는 물이 펑펑 솟아올라 사방을 시멘트로 에워싸서 깊었다. 바다 쪽에 인접한 샘물 통은 그 위에 나무집을 만들어 얹어 식수로 썼고, 마을 쪽 샘물 통은 빨래터이자 목욕하는 곳이었다.   


  내가 처음 마주한 샘물은 차고도 깊었다. 물통 안의 샘물은 아득하게 푸른 빛을 내면서 나를 빨아들일 듯하였다. 어머니가 물을 퍼담아 올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내가 물허벅을 질 순간이 다가왔다. 아뿔싸, 가득 채운 물허벅을 등에 지니, 맨 처음 기대했던 마음은 싹 사라져 버리고, 무거운 짐 덩이가 어깨를 짓눌렀다. 물허벅을 사달라고 조르고 졸랐던 게 참으로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물허벅의 주둥이를 막았어도 걷는 걸음마다 출렁이는 물은 느껴지고 실수로 흔들거리다 조금씩 쏟아지면서 어깨 주변으로 물이 떨어졌다. 그때마다 머리카락이 쭈뼛거렸고 언제 집에 도착하나 발걸음만 세었다.

  그러나 그날부터 좋든 싫든 내가 물허벅을 지고 나르는 일은 잦아졌다. 샘물을 길러 가면 다양한 여자들이 보였다. 보통은 나보다 나이 많은 아줌마나 언니들이었지만 내 또래도 있었다. 


  샘물에는 물허벅을 부릴 수 있는 곳이 있었다. 샘물에 도착하면 일단 우리는 물허벅을 어깨에서 내려 그곳에다 얹고 물통으로 모여든다. 그리고나서 각자 자기 두레박을 들고 물을 떠야 하는데 두레박이 겹치지 않게 샘물통 한쪽에다 조심스럽게 두레박을 내려놓고 물을 퍼야 했다.


  두레박은 샘물이 마를 때를 대비해서 긴 끈을 매달았다. 끈은 나일론으로 되어 있어서 질겼으나 어쩌다 끈이 풀리거나 놓쳐서 두레박을 빠뜨리기도 했다. 어떨 때는 재수가 좋으면 누군가가 깊은 곳으로 두레박이 가라앉기 전에 자신의 두레박을 이용해서 건져 주기도 하였다. 그것은 마치 요술 같았다.


  보통 두레박은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한다. 나일론 끈이 길어서 그런지 천천히 가라앉는 두레박을 볼 때면 나는 머리를 늘어뜨린 여자가 서서히 가라앉는 것처럼 두렵게 느껴졌다. 샘물 바닥에는 가라앉은 두레박이 한두 개가 보였는데, 그런 게 보일 때마다 아찔한 현기증을 느끼기도 했다.


  여름이면 일단 두레박 물을 퍼서 자기 발바닥으로 부었다. 그러면 차가운 물이 고무신 안으로 들어가면서 머리까지 시원해졌다. 겨울에 물을 길러 가는 것은 고역이었는데 생각보다 심하지 않았는지 그에 대한 별다른 기억은 없다.


  샘물에서 만났던 사람 중 가장 특이했던 사람은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걷는 아주머니였다. 등짐을 져도 쏟아지는 마당에 그 아주머니는 주저함이 없이 머리에 물을 이고 다녔다. 육지 여자였다. 제주도 토박이 중에 머리에 이고 짐을 나를 수 있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 만나던 날 나는 신기해서 아주머니가 멀리 사라질 때까지 뒤돌아서서 쳐다보았다.


  그리고 얼마 후인가 중학교 근처의 동네 공터에서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을 보았다. 술 취한 아저씨 둘레를 에워싸고 있었다. 아저씨는 취기가 오른 채로 먹돌 바위를 들었다 놨다 하는 것이었다. 원래 먹돌 바위는 여간 무거운 게 아니어서 웬만한 사람은 흔들 수나 있지 들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아저씨는 술 취한 김에 힘 자랑을 하고 있었다.     


  “너네는 영헐 수 있나? 이건 나나 허주 아무나 못 허여”

  (너네는 이럴 수 있냐? 이건 나나 하지 아무나 못 한다.)

   

  아저씨의 주사가 시작되었다. 뭐라고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아저씨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어디선가 슬그머니 부인이 나타났다. 물동이를 머리에 이었던 그 여자였다. 그 아주머니는 조심스럽게 집에 들어가도록 남편을 달래었다. 그러나 아저씨가 한번 큰 소리로 성질을 부리자 여자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 버렸다. 나는 아줌마가 매 맞으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그 당시에는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라는 말이 자주 회자 되던 때다. 남편을 잘못 만나면 여자의 운명도 조금씩 가라앉는 것 같던 그 시절은 이혼이란 게 수치로 떠오르던 때였다. 교육을 받지 못해서인지 남편에게 당당히 주장하지도 못하던 때였다. 


  어느 날은 친구들과 자전거를 배운다고 길거리에 타고 나갔다가 ‘무슨 여자가 자전거를 타냐?’며 훈계하던 아줌마의 말을 고개 숙여 듣고 섰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말이란 참 무섭다. 그때는 그런 얘기가 정답인 것처럼 여겨졌었다. 물허벅을 등에 지듯이 지척지척 힘들게 걷는 삶이 여자의 삶이라는 생각을 얼핏 했던 것 같다. 그러다 갑자기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듯 흔들거릴 때, 물이 쏟아질 양이면 정신이 번쩍 나는 것처럼 삶의 현실도 그렇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인생의 물허벅을 지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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