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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리우다 Jul 02. 2021

솔섭 긁던 날

  대공원 뒤 야산을 올랐다. 솔잎(솔섭)이 잔뜩 깔려있었다. 아무도 줍지 않는 솔잎이 나는 참 아깝다. 아궁이에 불 지피며 고구마를 구워 먹으면 정말 향기도 좋고 맛있을 텐데. 예전이라면 남아나지 않았을 솔잎이다. 돈 만큼이나 귀중한 거였으니까.    


  그날도 나는 조용히 갈쿠리를 들고 친구 젬마와 함께 솔섭을 긁으러 나섰다. 젬마는 나보다 한 살 위인 6학년이었는데 동급생에 비해 키도 컸고 달리기도 잘했다. 나는 또래에 비해 작고 약했다. 운동신경도 빠른 편이 못되었다. 다만 젬마의 엄마가 우리 엄마를 만만히 구는 게 속상해서 같이 땔감을 주우러 갈 때도 어떻게든 젬마를 이기려고 했다.


  젬마와 나는 걸어서 이곳저곳을 헤집어 다니다 집에서 한참 떨어진 야산에서 붉은 솔잎이 잔뜩 널려있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 둘은 기쁨에 겨워 웃으며 손뼉을 마주쳤다.


  “젬마야, 너는 저쪽에서 긁어오라. 난 이쪽에서 그쪽으로 긁어 가커메”    


  나의 제안으로 각자 양쪽 끝에서 솔섭을 긁어 서로 만나는 지점에서 끝내기로 하였다. 나는 어떻게 하든 지 젬마보다 많이 긁으려고 부지런히 손을 놀렸다. 갈쿠리로 긁어서 한쪽에 모아놓고 재빨리 다른 쪽으로 달려가 솔섭을 긁어모으기를 반복해서 바둑돌로 땅따먹기를 하듯 내가 차지할 지역을 선점했다. 그렇게 모아진 솔섭들을 날라다가 나중에야 한쪽으로 옮겨서 크게 쌓았다. 


  가시덤불 사이에도 솔섭들은 벌겋게 내려앉아 있었다. 그런 것들은 갈쿠리로 긁어지지 않아 맨손으로 끄집어냈다. 가시덩굴에 긁혀서 피가 송글송글 맺혔다. 그렇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렇게 만들어 놓은 솔섭 더미들을 모두 모으면서 커다란 눈 덩어리처럼 둥글게 쌓았다. 그런 다음 그것을 호미로 잘 다독여 네모나게 만들었다. 그리고 끈으로 묶은 후 균형을 맞추어 등짐을 졌다. 어머니를 따라 다니며 보고 배운 지 2년째라 나도 솔섭 등짐을 만드는 것엔 이미 익숙해 있었다.


  솔섭은 귀한 땔감이었다. 땔감으로 쓰니까 솔잎이 아니라 솔섭이라 한다. 보리를 타작하고 난 보리짚도 땔감 나무라고 보리낭이라고 부른다. 겨울이 되면 시골 사람들은 집 뒤에 솔섭을 차곡차곡 쌓아서 커다란 봉분을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늦가을이면 땔감을 하러 산으로 들로 나가곤 하였다. 


  애써 노력한 보람이 있는지 젬마보다 내 솔섭 더미가 더 커 보였다. 나는 적이 만족해서 그만하고 가자고 젬마를 꼬득였다. 야트막한 야산의 솔섭은 어차피 다 긁은 참이었다. 젬마는 성격이 유순해서 내 말을 잘 들었다. 우리는 솔섭을 동여매어 등에 지고 집으로 향했다. 솔섭이 내 등을 찌르는 것도, 2km 정도 되는 먼 거리도 힘든 줄을 몰랐다.  집 가까이 다다랐을 때, 나는 큰 소리로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 오래 걸어부난 힘든 게 마씨. 이 솔섭 좀 받아줍써”

   (어머니, 오래 걸어서 힘들어요. 이 솔잎 더미 좀 받아주세요.)    


 고래고래 고함치는 소리에 어머니가 집 밖으로 걸어 나왔다. 내가 예상했던 대로 어머니가 올래에 서서 우리 둘을 쳐다보았다. 젬마는 인사를 하고서 자기 집을 향하여 걸어갔고 나는 자랑스레 다시 등짐을 보여주었다. 어머니는 빙그레 웃으시며 솔섭을 받으셨다.    

 

  “역시 우리 정이가 젬마보다 일 잘허염싱게. 그 작은 키에도 요망져 이~”

   (역시 우리 정이가 젬마보다 일 잘하는구나. 그 작은 키에도 야무지네)    


  어머니는 뜰에 있는 보리 짚더미 옆에다 내 솔섭을 가져다 놓으시며 칭찬을 하셨다. 그 한마디 말을 듣기 위하여 나는 얼마나 내달렸던가? 어깨가 으쓱 올라갔다.     


  나는 내가 해온 솔섭을 어머니 것과 분리해서 쌓아 놓았었다. 게다가 어머니가 긁어 온 솔섭이 다 떨어질 때까지 내가 만들어 놓은 솔섭 봉분은 불을 때지도 못하게 했다. 이미 쌓여있는 내 솔섭 봉분 위에다 막 해온 솔섭 더미를 풀어 두께를 맞추어 더 높이 쌓았다. 점점 더 커지는 솔섭 더미가 내 마음을 흐뭇하게 했다.   


  솔섭 쌓는 일을 끝내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아뿔싸 낯선 남자 손님이 큰 언니와 함께 앉아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큰 언니가 예전에 맞선을 봤다던 남자였다. 그날이 약혼식이었는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어머니 칭찬을 들으려고 아무 말 없이 솔섭을 긁으러 친구와 떠났던 것이다. 


  그 당시 시골에서는 약혼식이래야 양 가가 상견레 겸 만나서 조촐히 밥을 먹고 헤어지는 것이 전부였던 것 같다. 내가 도착한 시간에는 이미 다 끝났는지, 다른 사람들은 안 보이고 큰 언니와 함께 예비 형부만 보였다. 


  예비 형부는 나를 보고 빙그레 웃었다. 나는 고함을 쳤던 게 부끄러웠다. 얼른 고개 숙여 인사하고 부엌으로 갔다. 평소와는 달리 흰 쌀밥이 있었다. 흰색이 고와서 곤밥이라 부르던 쌀밥이다. 


  한 그릇 가득한 곤밥을 먹으려고 숟가락을 쥐는데, 내 손등에는 가시에 긁힌 자국이 핏빛으로 주욱 주욱 도드라져 보였다. ‘젬마보다 더 많이 솔섭을 긁었잖아. 잘했지 뭐’. 나는 솔섭을 긁어서 생긴 훈장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보다 솔섭을 더 많이 긁는 어머니를 생각해야지.’ 그런 생각도 한 것 같다. 그러나 동시에 한 번도 솔섭을 긁지 않는 넷째 언니 생각이 났다. 내가 김치에 보리밥만 먹을 때에도 참기름에 달걀을 비빈 밥을 먹던 남동생도 떠올랐다. 가슴 어디선가 허한 바람이 훑고 지나갔다. 그래도 쌀밥은 맛있었다.     


  찬물을 마시고 나는 마당으로 나갔다. 어두워지는 저녁에 보리낭 눌(더미)이 더 크게 다가왔다. 나는 그 옆에 있는 내 솔섭 더미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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