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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리우다 Sep 11. 2021

너도 수의 만들라 게


  월정사에서 상원사로 가는 길은 오래 걸렸다. 차로도 20분 넘게 덜컹대며 간 것 같다. 남편이 말한 대로 전나무들이 쭉쭉 뻗어 올라간 모습이 참 감탄스럽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전나무 숲길이 한참 되는 것 같다. 가는 길마다 선재길이라는 안내가 붙어있다. 


  남편은 이 담에 산에 오르기 힘든 나이가 되면 와서 걷자고 한다. 그러고 보니 노년의 부부가 보인다. 할머니가 할아버지 팔짱을 끼고, 우산을 지팡이 삼아 걷고 있다. 다리가 다소 불편한 듯 보이지만 천천히 내딛는 두 분 모습이 참 좋아 보인다. 그 모습을 보다, 갑자기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함께 산을 오르고 걸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밀려왔다. 만일 남편 없이 혼자 남게 된다면? 에이, 아직 그런 생각을 하기엔 일러. 고개를 흔들었다.


  21년 8월 10일, 우리가 상원사로 간 목적은 오대산 등산이었다. 오전 10시 30분경 우리는  상원사에서 1.2km를 떨어진 적멸보궁에 도착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있다는 적멸보궁엔 부처상이 따로 없고 황금색 빈 방석만 있다. 적멸보궁 둘레를 도는데 그 뒤에 사리탑인지 오래된 작은 탑이 하나 있었다. 성지라고 하는 걸 보면 부처님의 진신사리는 이 작은 탑 아래 어딘가에 묻혀 있으리라.


  부처님은 번뇌가 없기에 사리가 있는 그곳도 이름하여 적멸보궁이란다. 나는 언제쯤 쓸데없는 잡념에서 벗어날까? 부처님은 죽음에서 자유로우셨겠지? 나도 죽음을 두려움 없이 받아들이고 싶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다. 집은...... 아이들은......내 안에선 이런저런 잡생각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적멸보궁을 떠나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나무 계단이 끝나더니 불규칙한 돌들이 늘어선 돌계단이 나타났다. 계단을 오르며 보니 하늘이 회색빛으로 변해가는 게 비가 내릴 듯하다. 다행히 스치는 사람이 많지 않아 마스크를 안 쓰고 걸을 수 있어서 좋았다. 


  800m쯤 올랐을까, 지쳐서 천도복숭아를 꺼내 먹었다. 탤런트 김용건씨가 73세의 나이에도 아이를 만들었다며 우리도 셋째를 만들자고 남편이 너스레를 떨었다. 하하 웃다가 일어나서 걷는데 남편이 길을 내드려 라고 한다. 보니 젊은 스님이 빠른 걸음으로 올라와서는 우리를 앞질러 걸어갔다. 매일 수양 삼아 이 산을 오르내리나 싶게 척척 걷더니 눈앞에서 사라졌다. 저 젊은 스님은 인간 세에 연연할 필요가 없는데 무엇을 수련하고 있을까? 어쩌면 꼿꼿한 걸음 마냥 정진하기에, 마음이 평정되어 있을지도 몰라. 이런저런 상념을 더하며 산을 올랐다.


  적멸보궁에서 정상인 비로봉까지는 1.5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약간 가파를 뿐 그리 멀게 느껴지진 않았다. 12시 30분쯤 비로봉에서 빵과 커피로 허기를 달래고 하산을 서둘렀다.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울렸기 때문이다. 빵을 먹을 땐 스틱을 멀리 떨어뜨려 놓기도 했다. 한 30분쯤 내려왔을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상원사까지는 2km쯤 더 가야 한다. 마음이 바빠 걸음을 서두르려고 해도 돌길이라 쉽지 않다. 그나마 모자가 있어서 비 맞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소낙비가 거세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근처 나무 아래로 피신해 들어갔다. 주목 잎사귀인데도 비가 덜 떨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참 있어도 비가 그치지 않는다. 할 수 없이 다시 걷기 시작했다. 비가 거세지고 천둥소리도 커진다. 하늘이 쪼개지는 듯 벼락이 우렁차다. 아이고 무섭다. 벼락 맞아 죽지나 않을까? 걱정되었다. 스틱을 버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 그냥 빗물을 철퍼덕거리며 도망치듯 발을 내딛었다. 마음은 뛰어가고 싶은데 돌계단이 들쭉날쭉이라 뛸 수가 없다. 드디어 모자에서 물이 쉴새 없이 떨어지고 등까지 다 젖을 즈음 등산 안내소가 보였다. 안내소의 작은 처마에 기대어 비를 피했다.  

   

  “하늘이 맑았다. 흐렸다 하다가 좀 지나면 비가 멎어”     


  남편의 안심시키는 소리다. 벼락이 안 치니 그나마 다행이다. 하늘이 맑아졌다 흐려졌다 한다. 비가 줄어들었다 늘어났다 하니 잠시 더 기다리기로 했다. 빗소리가 약해질 즈음 다시 걸었는데 걷다 보니 남편 말대로 비가 멎었다. 적멸보궁을 지나 상원사에 도착할 무렵엔 물에 젖었던 옷이 더러 말라 있었다. 


  주차장에서 남편은 고개만 넘으면 주문진 시장에서 회를 살 수가 있다고 한다. 우리는 차를 몰아 고개를 넘어가기로 하였다. 달리는 차에서 멍때리고 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셋째 언니가 화가 난 듯 언성을 높이며 말한다. 


  “글쎄, 둘째 언니가 나더러 영정 사진 찍었냐? 고 전화 왔더라. 나는 그런 얘길 제일 싫어하는데......”

  ‘아, 셋째 언니도 아직 죽음을 생각하기 싫어하는구나. 옛날 어른들은 늙으면 죽어야지 했는데 나이가 얼마쯤 되면 그렇게 바뀔까? 벼락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떨었던 게 얼마 전이었는데......’

  그런 생각을 할 즈음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사라가 전화해서냐? 게난 가이 막 화나서냐?” 


  둘째 언니가 다짜고짜로 묻는다. 아마 큰 언니한테서 그런 전화를 왜 했냐? 고 가벼운 타박을 받았나 보다. 둘째 언니는 자신은 벌써 수의를 만들었다면서 내게도 한마디 했다.    


  “너도 수의 만들라 게.” 

  나는 웃으며 예 하고 끊었다.     


  그날 벼락이 떨어졌던 그 시간에 정말로 벼락 맞은 사람이 있었다. 벼락은 대관령 목장에 있던 40대 남성을 덮쳤다. 내게로 왔을 수도 있었건만 아직 운명은 비껴가나 보다. 어쩌면 영정 사진을 찍어두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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