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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리우다 Oct 01. 2021

틈사벌구

-틈만 나면 사기치고 입만 벌리면 구라깐다-

  언제부터인가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징조는 꼬리뼈가 아픈 것에서 시작되었다. 꼬리뼈가 아프니 앉는 게 불편했다. 운전은 특히 쥐약이었다. 더 심해지기 전에 정형외과를 찾았다. 도수치료를 권해주었다. 

  차트를 본 물리치료사가 내 몸을 만지기 시작했다. 근데 꼬리뼈는 어떻게 만진담? 민감한 부분에 닿을 수 있는데. 이런 생각을 하는데 그가 다리를 ㄱ자로 꺽어 올려 양쪽 엉덩이 들어간 부분을 열심히 주물렀다. 그러나 허리부터 엉덩이까지 주무른 게 끝이었다. 정작 꼬리뼈가 있는 곳으론 손이 가지 않았다. 어떻게 손이 닿을까 했던 걱정은 소용없는 거였다. 아픈 부분을 주물러주지 않으니 좋아지는 건지 알 도리가 없었다. 그게 불만이었다. 


  그러던 찰나 남편이 친구 자랑을 했다. 그는 외과 의사였다. 일본에 가서 도수치료법까지 직접 배웠다고 한다. ‘의사가 도수치료까지 하면 정확하게 아픈 부분까지 커버해줄 것 아냐?’ 하는 생각이 들자 나는 남편을 졸라 그의 친구인 외과 의사에게 갔다. 그런데 그의 도수치료법은 정형외과의 물리치료사보다 세심하지 않았다. 게다가 두 번째 가던 날 친구인 의사는 항문 속에 있는 꼬리뼈를 들어 올려 주사를 놓았다. 그게 무척 창피해서 그다음부터는 가기를 포기해버렸다. 주사가 효과가 있는 건지 아픈 것이 조금 수그러든 것도 같았다. 그렇게 지내기를 몇 개월째였다.


  안양 시장에서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평소에는 들르지도 않았을 길을 버스를 탄다고 복잡한 시장을 지나다 한산한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운명의 장난이었나? 필요치 않으면 주변을 둘러보는 성미가 아닌데 우연히 샛별 상회 <발 교정>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성경 구절과 발 교정에 대한 자잘한 정보가 보였다. 몇 년 전에 홍선생이 발 교정으로 허리까지 좋아졌다고 말했었는데, 그것 아닐까?


  나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50대 후반의 통통하고 부리부리한 눈을 가진 여자가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손님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손님이 나가고 나자 나는 주인에게 발 교정을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물었다. 그녀는 일단 발 검사를 먼저 해준다며 양말을 벗겼다. 내 발의 족적을 본뜬 그녀가 당당하게 말했다.    

  

  “이거 봐요. 머리가 삼각형이네. 이거 안 좋아요. 이렇게 동그래야 하는데”


그녀는 엄지발가락을 머리라고 하면서 표시된 머리와 가슴 부분을 점으로 찍어서 자로 부욱 그어 선을 잇더니 내 뇌와 심장이 안 좋다고 했다. 갑자기 나는 어쩌다 한두 번쯤 머리가 아픈 것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심장이 뜨끔 할 때도 있지 않았었나? 괜시리 마음이 쪼그라들었다.


  그녀는 내게 운동화 한 켤레를 내밀면서 신고서 일단 한 시간 동안 걸어보라고 했다. 그녀가 주는 운동화 속에는 연회색의 단단한 깔창같이 것이 있었다. 이름하여 G피트다.

‘에라 밑져야 본전이다.’ 시원시원하게 구는 그녀의 태도에 나도 모르게 신발을 신었다. 예전에 들었던 동료의 얘기 때문에라도 나는 시도해볼 참이었다. 


   그녀 말대로 G피트가 들어있는 운동화를 신고 시장통으로 나갔다. 복잡한 시장을 걸으려니 불편해서, 골목을 빠져나와 무조건 큰길 쪽으로 갔더니 공원이 있었다. 공원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거기에는 인공 잔디가 깔린 조그마한 트랙이 있어서 나는 천천히 트랙 가장자리를 돌았다. G피트 때문에 걷기가 거북했다. 이게 정말 효과가 있을까? 의구심이 들자, 나는 홍선생에게 전화를 했다.


  “나는 아직도 신어요. 그런데 하루 4시간은 신어야 효과를 볼 수 있는데......”


 홍선생은 집에서도 실내화 속에다 넣어서 신는다고 한다. 그렇게 신을 수 있을까? 걸으면서 고민이 되었다. 걷다 보니 왼쪽 무릎이 오히려 아픈 것도 같다. 


  공원 트랙을 돌고 돌고 또 돌고 어느덧 한 시간가량 되었다. 나는 다시 그 가게로 갔다. 안에는 아주머니 두 분이 주인의 얘기를 열심히 듣고 있었다. 


  “이것만 먹으면 연골 닳은 것도 좋아져요.” 


그녀는 병 안에 있는 뭔가를 권하고 있었다. 말하는 품새가 틈사벌구(틈만 나면 사기 치고 입만 벌리면 구라깐다) 같다. 그런데도 거부감이 느껴지지는 않는 걸 보면 장사 수완이 대단하다. 두 아주머니는 G피트뿐 아니라 병에 든 약초(?)까지 샀는데 그중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데려왔나 보았다. 다른 아주머니가 먼저 나가고 나자 주인은 같이 온 사람에게 5만원을 주었다.     


  “이거 신으니까 괜찮던 무릎이 오히려 아픈 거 같아요.”

  내가 불편하다는 신호를 보내자마자 그녀는 말을 가로챘다.


  “뼈 교정을 해봤어요? 해본 사람은 다 아는데......”


  발 교정이 되기 시작하면 첨엔 아플 수도 있다고 하면서 G피트의 크기를 조정해주었다. 나는 그녀가 시키는 대로 30분을 다시 걷고 가게로 돌아갔다. 그녀는 또 발을 본뜨더니 아까보다는 좀 좋아졌다고 너스레를 떤다. 평발인 사람이 암에 걸렸는데 교정하고 나서 평발뿐 아니라 아픈데도 다 나았다면서 전후 사진을 비교해서 보여주었다. 그게 믿기지는 않았으나 6개월 동안 써보고 아픈 데 효험이 없으면 환불 가능하다는 얘기며 미국 제품이라는 보증서까지 내밀었다.      


  “이거 정말 6개월 써보고 잘 안되면 환불 해주는 거죠?”

  나는 거듭 확인한 다음 36만원 짜리 물건을 덥석 사고 말았다.      


  G피트를 신은 지 6개월이 지났다. 꼬리뼈가 좋아졌는지는 모르겠고 어느 날 다시 무릎이 아파 왔다. 나는 다시 그녀에게로 갔다. 마침 그녀는 혼자 있었다. 다시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다는 말에 그녀는 내가 처음 갔을 때 찍었던 족적을 찾아내더니, 그동안 왜 매주 와서 족적을 찍고 건강을 체크하지 않았냐? 고 나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하루 1시간 이상 G피트를 신고 걷는 것은 기본이고 매주 가서 족적을 찍는 것과 매일 밤 양말 속에 G피트를 넣어서 자는 것이 환불의 조건이라는 것이다. 정말 틈사벌구다. 처음엔 두루뭉술하게 권하고 넘어갔던 것이 반드시 지켜야 할 조건이 되었다.


  누가 신던 G피트를 환불해주겠냐?며 그래도 자기는 우리나라에서 총 판매를 담당한 사장이니까 조건대로 했는데도 6개월 후에 나아지지 않으면 환불해주겠다고 한다. 가게를 되돌아 나오면서, 매주마다 버스를 타고 시장 후미진 골목을 찾아가 출근 도장을 찍을 생각을 하니, 이미 나는 글러먹었구나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매일 밤 잘 때마다 양말에 집어넣는 것도 어렵고 시장통에 출근하기는 더더욱 어려워 환불은 단념했다.   

  

  G피트를 신은 지 1년이 되어간다. 허리가 좋아지진 않았지만, 더 나빠지지도 않았다. 이제는 하루 1시간이 넘는 산책길을 걸을 때마다 G피트를 신으면서 더 이상 꼬리뼈가 아프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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