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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리우다 Dec 16. 2021

이젠 공수가 바뀌나보다

- 조계사 템플 스테이를 다녀오면서 1

 큰딸과 함께 템플 스테이를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미국에 있던 큰딸은 2달 전쯤 잠시 휴가를 내서 한국에 다니러 왔고 나와 함께 좋은 추억을 쌓으려고 템플 스테이를 원했다. 과천에서 버스 2개를 갈아타서 12시쯤 조계사에 도착하였다.     


“엄마 인사동으로 갈까?”

큰 애가 말했다.      


입소 시간은 오후 2시. 입소까지 아직 여유 시간이 있다. 나는 조계사 근처에 인사동이 있는 줄도 모르고 쭐레쭐레 뒤따라 가던 참이라 반가웠다. 오랜만에 인사동 구경이라니. 휴대폰만 보고서도 딸은 익숙한 듯 발을 옮겨 인사동으로 향하는 골목길을 요리조리 빠져나간다. 나도 따라 해보려고 네이버 지도를 켰다. 도착점인 조계사가 빨간 풍선으로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길은 파란색으로 나타났으나 어디로 가야 할지 헷갈린다. 어디에다 눈을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 움직여 가는 딸아이와 발맞추려고 할 수 없이 길 찾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오랜만에 가본 인사동에는 전에는 보지 못했던 필방이며 작은 갤러리가 많다. 그런 골목을 지나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밥집을 찾아 나섰다. 재즈가 흐르는 식당에서 된장찌개를 먹고 나서 다시 인사동의 다른 골목으로 들어섰다. 아기자기한 가게의 소품들을 구경하는 딸애를 보고 사진을 찍으려는데 딸애가 말했다.


“엄마 함께 찍자.” 


셀카봉이 없으니 내가 핸드폰을 잡고 딸애가 셔터를 눌렀다. 두 얼굴만 커다랗게 나왔지만, 딸애와 내가 어우러져 만든 사진이라 기분이 좋았다. 쌈지길을 지나 옷 가게가 즐비한 거리를 지나가다 보니 자꾸만 개량 한복이 눈에 밟힌다. 3년 전에 동료들과 함께 왔을 때는 서로 입어보면서 여름철 개량 한복을 샀었는데. 한 벌 사고 싶다. 옷 가게를 여기 기웃 저기 기웃거리며 두툼한 겨울 한복을 집었다가 놓았다가를 몇 번 하다가 길 건너 가게에서 검은색 체크 무늬 반코트가 보였다.    

  

“야, 저거 멋있다. 저거 한번 입어보면 안 될까?”

“엄마, 템플스테이 와서 거추장스럽게 옷 사고 들어가게? 내일 나가면서 보자.”
 

그 말에 옷 구경을 그만두었다.

 옛 기억이 떠올랐다. 큰딸이 중학교 1학년 겨울에 겨울 코트를 살 때였다. 남편과 함께 딸이 골라온 감색 코트는 아이의 몸에 딱 맞게 예뻤다. 한껏 기뻐서 돌아온 딸아이에게 3년 동안 입으려면 한 치수 큰 것을 사야만 한다고 설득했다. 딸은 싫다던 내색도 별로 못하고 내 말을 받아들였다. 그랬었는데 이젠 딸이 나를 설득하는구나. 딸애가 어른 같고 내가 애가 된 기분이 들었다. 이젠 공수가 바뀌나 보다.    

  

조계사 경내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마음이 욕심으로 흐려진 연못이었다면, 점점 흙먼지가 가라앉아 가는 느낌이 드는 것은 불경 소리 탓일까?

경내 구경 후 우리는 프로그램실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캠프담당자기 1박 2일 동안의 프로그램을 안내하였는데, 끝날 무렵 그녀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여기 있는 동안 프로그램 참여는 자율적입니다. 내내 그냥 쉬셔도 좋구요, 근처에 청계천이 있으니 구경 가셔도 좋아요.”     


저녁을 먹고 나서 색색의 한지를 종이컵에 붙여 연등을 만든 다음 저녁 예불에 참여했다. 예불 후 시계를 보니 아직 저녁 8시도 되지 않았다. 우리는 청계천으로 가서 팔짱을 끼고 느긋이 청계천을 걸었다. 


함께 개천을 걸었던 것이 몇 년 전이었나?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말을 해도, 말을 하지 않아도, 아이와 그렇게 걸을 수 있는 게 좋았다. 청계천에는 연인들끼리 직장 동료들끼리 우리처럼 지나고 있었는데 늦가을의 밤에 잠겨 청계천도 느리게 흐르는 듯하다. 일없이 찻집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함께 밥도 먹으면서 돌아다니던 시간 들, 이젠 점점 짧아져 간다. 그렇게 함께 있을 시간이. 청계천을 돌아 나오다 딸애에게 말했다.    

 

“로미야, 나는 네가 미국에 가지 않고 한국에서 아무 데나 근무하면서 이렇게 함께 놀러 다녀도 좋은데.”  

   

아이는 한국에 남아있고 싶은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한국에서의 간호사 생활의 고단함이 타향살이의 고단함보다도 더 큰가 보다.    

 

우리는 걷다가 한기가 느껴져서 찻집을 찾았다. 전통찻집 중에서 노랗게 불이 밝은 이층집으로 올라가니 주인은 뜸을 뜨다가 우리를 맞는다. 딸애는 쑥차를 나는 쌍화차를 시키며 물었다.


“여기 쌍화차에 달걀을 넣나요?”

아니라는 주인의 말에 딸과 내가 웃는다.     


딸과 나는 미국에서 새로운 집을 구하는 일 그리고 자동차를 사는 문제, 옮겨가는 직장 등의 얘기를 주고받으며 차를 마셨다.      


밤 10시가 되기 전에 일찍 잠자리에 드는데 딸과 나란히 이불을 펴고 오랜만에 함께 누웠다. 딸아이가 조용히 손을 내밀어 내 손을 잡는다. 얼마 만인가? 이렇게 함께 온기를 나누며 잠을 자는 게. 

    

뒷날, 템플 스테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다시 네이버 지도를 켰다. 핸드폰을 들고 지도와 맞추어 걸으려는데 딸 아이가 내 핸드폰을 보더니 방향을 돌려서 출발점을 내 앞에 오게 했다. 


“엄마, 지도에서 여기 출발점 근처에 파란 동그라미가 보이잖아. 그게 엄마 위치야. 그러니까 출발점을 엄마 눈 아래로 오게 해. 그리고 엄마가 가야 할 길마다 작은 삼각형이 그려져 있어. 그걸 따라서 이렇게 손으로 지도를 넓혔다 좁혔다 하면서 엄마의 위치표지가 어떻게 움직이나 봐. 우리가 움직이면 이렇게 같은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게 보이잖아. 그러면 쉽게 찾을 수 있어.”     


출발점과 도착점까지 연결된 길에 방향을 표시하는 화살표가 있던 것을 나는 왜 몰랐을까? 삼각형 화살표를 따라 파란 위치 표지등이 잘만 움직여 가고 있었다. 그렇게 길 찾기가 쉬웠던 것을 딸아이가 얘기해줘야 제대로 알게 되었다.      


‘이제는 딸 아이가 나의 길잡이가 되는구나!’ 생각하면서 우리는 팔짱을 낀 채 웃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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