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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리우다 Dec 17. 2021

지독한 캔버스

- 조계사 템플 스테이를 다녀오면서 2

나는 성당 신자이지만 불교도 좋아한다. 불교를 믿지는 않지만. 

조계사에 가던 날, 인사동 거리를 걷던 우리는 쌈지길 근처의 어느 갤러리에서 한 화가의 개인전을 보게 되었다. 개인전의 제목은 <지독한 캔버스>. 화가는 작은 바늘 같은 실을 붙여서 사진처럼 정교하게 인물화를 표현했다.      


“와, 가는 실이 몇 개나 쓰인 거야?”

큰딸이 내 귀에다 대고 감탄을 했다.


“정말 대단하지! 이 배경을 봐라. 온통 검정 실로 뒤덮여 있잖아. 그래도 머리 색과 구분되는 게 신기하지 않니?”     


내가 좋아하는 김구 선생의 얼굴 앞에 섰다. 사진 속의 선생은 환하게 웃고 있다. 세밀한 이마의 주름 속에도 작고 가느다란 실들이 보일 듯 말 듯 이어져 있다.

김구 선생이건 스티브 잡스이건 마릴린 몬로이건 인물마다 명암이 없는 그림은 없다. 미세하게 많은 실들이 어우러져 어느 곳은 밝게 어느 곳은 어둡게 대조를 이루어야 그림이 완성되는 것이다. 


저처럼 나도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수많은 사건이 바늘이 되어 어둡고 밝은 도들 새김으로 마음에 새겨져 있겠지.      


조계사로 들어갔다. 대입 수능일이라 그런지 법당 밖 천막 속까지 가득 찬 신도들로 조계사는 복잡했다. 그 어느 절에서보다 우렁차다 못해 절박한 불경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온종일 빌고 있는 저들의 심정이리라 생각하니 가슴이 저렸다. 나 또한 그 경험이 있어서다.    

 

큰딸의 고3 수능 날, 저녁까지 쾌활하게 웃으며 같이 떡볶이를 먹었는데 한밤중에 열난다고 큰딸이 나를 깨웠다. 체온을 재보니 39℃를 넘어 화들짝 놀랐다. 우리는 한밤중에 응급실로 달려갔고 그때 유행하던 신종플루라는 진단을 받았다. 타미플루를 처방받은 아이는 아침에 시험 보러 떠나야만 했다. 어쩔 수 없던 나는 성당으로 달려가 제대 앞에 앉아서 속으로 외쳐댔다.      


“안됩니다. 주님, 이럴 순 없어요. 그동안 아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노력한 만큼은 잘 보게 해주세요.”     


수능 후 숨죽여 결과를 기다려야 했던 시간이 머리에 스쳐 지나간다. 그때가 내 가슴에 한 부분의 어둠으로 자리한다면 그런대로 대학을 잘 가서 무사히 졸업한 것은 내 마음에 밝게 자리하고 있을 터다.     


코로나 때문에 저녁으로 컵밥을 받았다. 방으로 돌아와 펼치니 새싹 채소와 김치 볶음, 김이 어우러진 컵밥에다 미역국이었다. 밥을 먹다 딸아이가 말했다.


“엄마, 우리가 점심을 소고기가 잔뜩 들어있는 찌개를 먹어서, 배도 고프지 않은데 참 맛있다. 그지? 절밥은 왜 맛있을까? 별로 특별한 것도 없는데......”     


그 말에 낮에 안내를 해주던 봉사자의 말이 떠올랐다.     


“합장을 해보세요. 두 손을 마주하게 되죠? 한 손이 나이고 다른 손이 부처입니다. 부처와 나는 하나이고 그렇듯이 세상 사람들도 모두 부처입니다...... 나도 남도 용서하여 잘 받아들이고 욕심을 줄인다면 극락이 따로 없겠지요.”     


저녁 예불에 참여했다. 수능 시험이 끝나니 천막을 가득 메웠던 사람들은 어느새 돌아갔는지 경내는 적막하다. 그럼에도 대웅전 안에는 신도들이 들어차 있다. 템플 스테이에 참가했던 9명의 사람들과 더불어 우리는 법당 안으로 들어가 삼배를 올리고 방석에 앉았다. 


스님과 신도가 북소리에 맞추어 불경을 읊는다. 무슨 뜻인지 모르면서도 마음이 맑게 가라앉는다. 불경을 외우던 스님이 호흡이 가빠져 숨넘어갈 즈음이면 신도들의 목소리만 들린다. 서로 조화를 이루며 외는 불경 소리에 빠져서 오래도록 멍하니 듣고 있다가 대웅전을 빠져나왔다. 불경을 외우든 성가를 부르든 사람들의 화음보다 더 아름다운 소리는 없는 듯하다.     


대웅전 밖에는 늦가을 국화전시회를 밝히는 불빛이 찬란했다. 대웅전 앞 나무에는 바램을 적은 연등들이 빼곡히 걸린 채 빛나고 있었다.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큰딸의 손을 잡고 발걸음도 가볍게 일주문을 나섰다. 서울의 밤거리가 아름답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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