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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리우다 Jan 13. 2022

나 교감 나갈 점수 다 채웠다

    “나는 경포 바닷가를 십수 번을 온 것 같은데, 경포대는 한 번도 안 갔네.”

 딸과 나와 남편이 함께 강릉에 가기로 했을 때, 남편이 경포대를 오르자며 한 얘기였다.      

 

   “37년 전, 우리는 무거운 옷 가방을 하나씩 들고 수학여행을 왔었지.”

   “그때는 벚 잎이 붉게 물든 가을이었는데 이번엔 옷 벗은 벚나무가 나를 반기네.”


  차를 타고 경포대로 가던 길목에 양옆으로 늘어선 벚나무는 여전하였다. 추억을 회상하면서 나는 옛날 얘기를 딸에게 들려주었다.    

 

  대학 졸업 후 나는 강원도로 발령을 받았어. 그때 대학 동기생인 명숙과 내가 동해안에 있는 선배들을 찾아 놀러 갔었다. 우리는 속초시장에서 오징어물회를 먹으며 오랜만에 옛 얘기에 빠졌지.


  “형, 우리 과 영실로 해서 한라산 등산 갈 때 생각나? 형이 내 손을 잡고 끌어준 덕분에 겨우 갈 수 있었어.”


  내 말에 진선배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데 다른 두 선배는 그때 내 입술이 시커멓게 변했었다며 함께 웃었었지. 모임이 끝나고 나와 명숙은 진선배의 자취 집으로 갔어. 우리는 아랫목에 선배는 윗목에 누워 잠을 잤어. 그날이 계기가 되어 나는 진선배와 편지를 주고받았지.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2년 동안 진솔한 얘기를 주거니 받거니 했어.

  선배와 사귄 지 1년쯤 되던 겨울에 나와 명숙이 다시 강릉에 갔었어. 그때는 경포호가 꽝꽝 얼었었단다. 선배와 나와 명숙은 경포대에 올라 언 경포호와 갈대를 바라보다가 그 근처에서 따끈한 순두부에 밥을 말아 먹었지. 


  그다음 해 겨울방학이었는데 어느 날 선배가 만나자고 연락을 해왔어. 우리는 제주시 극장에서 만나 함께 영화를 봤어. 영화가 끝나고 선배가 내 손을 잡더구나. 우리는 함께 찻집으로 갔지. 그곳에서 차를 마시다가 느닷없이 선배가 말했어.

  “올해 결혼하자.”


  나는 선배로서 좋아했지만, 결혼 상대자로는 생각해보지 않았어. 아직 결혼이란 걸 생각 못 했던 때였거든. 거절하는 말을 하다, 선배한테 상처를 주었어. 늘 쓸쓸한 어깨를 가졌던 선배는 내 말을 듣고서 허전한 뒷모습만 남긴 채 떠나갔어. 그리고 선배는 맞선을 보았고 예쁜 여자와 결혼을 해서 내가 살던 홍천 근처로 전근을 오게 되었어.

  전근을 오고 나서 명숙과 나는 선배의 집들이에 갔단다. 집들이 끝나고 배웅을 받을 때 선배가 말했지.

  “정이, 네가 이곳에 있어서 지원을 했었더랬는데, 이번에야 오게 되었구나.”


  그리고 2년 후 소개팅에서 만난 회사원이 내 인연이었나 봐. 6개월쯤 사귀었나 그와 결혼을 하게 됐지. 그게 아빠야. 마침 선배 아파트의 이웃 동에서 살게 되었네. 그래서 나도 집들이를 하면서 아빠에게 선배를 소개했지. 그날 선배와 아빠는 사이좋게 술잔을 기울였어.

  그 후 선배는 새로 지은 아파트로 이사를 갔단다. 한 4년을 홍천에서 살았을까?

  그해 봄 나는 남고로 전근을 가게 됐어. 선배는 이웃 중학교에 근무했는데 중고등학교라 운동장을 함께 쓰고 있었지. 선배와 우연히 운동장에서 부딪쳤을 때, 우리는 반갑게 얘기를 나눴어. 


  "정아, 나는 이제 교감이 될 수 있는 점수는 다 찼어." 


  내가 그날 선배한테서 들은 얘기 중 유일하게 기억나는 말이야. 그 얘길 들으며 나는 선배께 잘 됐다, 부럽다고 했었다.


  그런데 그해 겨울이 올 무렵, 나는 육아에다 직장생활을 하느라 지쳐있었어. 그럴 즈음 선배를 만나 같이 밥을 먹으며 하소연을 했지. 그런데 진짜 심각한 것은 선배였다. 평소 말이 없던 선배가 맥주 한잔을 마시더니 자기네는 부부싸움이 심각하다는 거였어. 아내가 옷걸이로 자기를 때린다면서 선배가 팔을 보여주는데 나는 아연실색했지. 선배의 팔에는 맞은 자국이 보였어. 

  선배는 대학교 다닐 때 학교에서 가장 착하고 순한 사람이었단다. 모두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던 선배였지. 그런데 말싸움도 모자라 아내가 쇠 옷걸이로 때릴 정도면 선배도 그냥 있지는 않았을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때 알았다. 아무리 사람이 좋아도 성향이 서로 맞지 않으면 살기 힘들다는 것을. 그날 선배가 하도 힘들어해서 나는 우리 집으로 데려갔어. 맘씨 좋은 아빠가 함께 술을 마셔주더구나. 그러더니 선배는 결국 취해버렸어.   

  

  "형님, 우리 정이 잘 돌봐줘사 헙니다. 학교 다니는 거 힘들어 마씨!“

  선배가 꼬부라진 혀로 아빠에게 그러더라. 내가 투정하던 것을 어떻게든 받아주고 싶었던 건지......

 그날 아빠가 취한 선배를 집까지 데려다줬어. 비틀거리며 아빠에게 의지하고 가던 선배의 뒷모습이 아련하다.


  그해 겨울방학을 했고 그 뒷날, 눈이 펑펑 오던 날이었어. 나는 선배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어. 부부싸움 끝에 자살이라니...... 믿을 수 없었지만 나는 또 다른 동기생과 그 집에 가야 했단다.

  적막한 선배의 아파트, 죽음과 같은 정적, 그가 누워있는 방문은 닫혀있었지만, 그 앞에 놓인 저승사자 같던 촛불을 기억해. 상복을 입은, 예쁘나 독을 품은 사모의 얼굴도 기억난다. 선배의 하나 남은 딸아이의 불쌍한 눈망울도 생각날 듯해. 

  우리는 어색하게 앉아있었는데 잠시 뒤에 선배의 어머니가 절규하듯 울부짖었더랬지.     


  "어제 나안티 전화 와서 하는 말이, 니(며느리)가 가이 감옥에 넣어부켄 했던 허여라!

아무튼 야이 제주도로 가게만 허여도라. 여기 공동묘지에 묻지 말고......”     


  부부가 갈라설 때는 돈이 중하긴 중한 건지, 부인이 선배를 너무 코너로 몰았나 봐. 마음 약한 선배가 무슨 생각으로 목욕탕 문고리에 목을 맸을까? 그때 나는 알았다. 사람이 산다는 게 얼마나 허망한 건지.

'나 교감 나갈 점수 다 채웠다'는 그 얘기가 얼마나 우스운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    

  

  가랑비가 조금 내렸다. 남편은 말없이 편의점에 가더니 비닐우산을 사 왔다. 우산을 쓰고 우리는 나란히 경포대에 올랐다. 잠시 후 비가 그치고 경포호를 바라보는데 딸애가 가만히 내 팔짱을 꼈다. 나는 남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저 그렇게 함께 경포호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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