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바리우다 Feb 13. 2022

똥손이 아니었네

   “나 이마 주름을 성형하려고 압구정동 c병원에 가보려는데 너도 갈래? 거기가 쌍수를 잘한다더라”     


  친목 모임을 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나는 작은딸에게 말을 건넸다. 모임에서 성형 수술 얘기를 듣다 보니 한껏 욕심이 생긴 내가 아이와 같이 하면 쌀까 싶어 던진 얘기였다. 일전에 작은 애가 쌍꺼풀 수술을 하고 싶다고 얘기했었기에. 그러자 스물한 살인 딸은 기왕이면 수능 전에 하고 싶다고 적극적으로 나왔다. 아마 예전에 친구들이 수능을 끝내고 수술을 많이 했던 것이 기억났던 모양이다.


  우리는 병원을 세 군데쯤 들러 견적을 받아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딸의 친구가 수술했다는 강남 a병원과 인터넷에 소문난 강남 b병원 그리고 내가 말했던 압구정 c병원이 후보였다. 


  당장 그 뒷날 우리는 아침 9시도 되기 전에 c병원으로 갔다. 그러나 일찍 가면 의사를 만날 수 있으려니 했던 생각은 착각이었다. 쌍수 전문 의사는 오전에 수술하느라 바쁘고 게다가 당일 면담은 불가하단다. 대신 이마 주름을 담당하는 의사는 따로 있었는데 그는 상대적으로 덜 바쁜지 상담실에서 만날 수 있었다. 나이가 지긋한 의사가 내 이마를 보더니 안면거상술(이마에 5개 정도 구멍을 뚫고 이마 가죽을 잡아당기는 수술)을 추천해주었다. 의사가 나가고 나자 상담실장이 들어와서 친절하게 모델의 사진을 보여주며 자세하게 설명을 해줬다.     

  “우리 엄마도 했어요. 보세요. 수술 전보다 후가 훨씬 젊어 보이죠?” 


  그녀의 조리 있는 말에 믿음이 갔다. 그러다 길어진 설명 끝에 수술 후 한동안 남의 피부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는 말이 맘에 걸렸다. 나는 수술을 포기했다. 그러자 딸 아이의 쌍수만 남았다. 아직 두 곳의 후보지를 더 가야 했다.


  우리는 서둘러 강남으로 옮겨갔다. 강남 b병원 안으로 들어섰는데 내 눈을 의심할 만큼 손님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줄잡아 50여명은 족히 되어 보여 마음이 바빠졌다. 부지런히 발열 체크와 QR 체크인을 하고 데스크로 갔더니 대뜸 예약하셨어요? 한다. 아뿔싸 성형외과는 적어도 전화로 사전 예약을 해야 하는 게 기본인가 보다. 온 김에 기다려볼까 하는 마음에 데스크에 물었더니 일단 기다려보라고 한다. 


  앉아서 기다리다 보니 우리처럼 엄마와 딸이 온 경우, 친구끼리 온 경우, 남자 혼자서 온 경우도 있다. 어쩌다 나처럼 나이 든 사람도 상담을 받는 것 같다. 기다리는 동안 저 혼자 돌아가는 TV에는 눈 성형 의사가 쌍꺼풀 퀴즈 문제를 풀고 설명해주는 선전 영상이 쉴새 없이 돌아간다. 그러나 우리는 결국 2시간이 넘도록 그냥 기다리다가 지쳐서 돌아왔다. 


  그 실패를 거울삼아 강남 a병원은 딸이 미리 예약을 했다. 다행히 압구정 병원 면담이 끝나면 바로 연결하여 상담받을 수 있게 되었다. 압구정 c병원의 여의사는 섬세한 손재주로 잘 휘어지는 철사를 이용해서 눈에 쌍꺼풀을 만들며 진단을 내렸다. 결과는 중등도 안검하수, 견적으로 340만원이 나왔다. 


  우리는 빨리 택시를 타고 강남으로 내달렸다. 강남 a병원의 남자 의사는 압구정 c병원의 의사만큼 섬세하지 않았다. 그는 나무 이쑤시개를 가지고 눈에 쌍꺼풀을 만들고선 대충 살펴보더니 안검하수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가 나가고 상담실장이 들어와서 상담결과를 설명하면서 수술비는 270만원이라고 했다.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 길에 a병원의 상담사가 250만원까지 가능하다는 전화를 주었다.  딸 아이가 그전에 상담 경험이 있다는 것을 솔직히 내비쳤던 게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아직 수능 전이라 여유가 있어 값을 깍아주나 보았다. 그렇다면 90만원의 차이가 나는데 나는 어디로 아이를 데려가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게다가 딸과 말하다 보니 강남 a병원에서 수술한 그 친구는 얼마 전에 재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내 속이 영 께름칙해졌다. 


  늦게나마 약속을 잡았던 b병원은 딸의 사정으로 상담을 취소하게 되었고 딸은 빨리 수술 할 수 있는 강남 a병원에서 그냥 수술을 하겠다고 했다. 나는 섬세한 압구정을 선택하고 싶지만 90만원이 더 싼 강남도 무시할 수 없어 딸에게 다시 잘 알아보라고 했다. 알고 보니 친구를 쌍수했던 의사는 다른 데로 이사를 갔고 현재 그 의사의 실력은 오리무중이다. 그래도 딸은 그냥 강남 a병원에서 수술하겠다고 한다. 수능이 끝나면 수술비도 비싸지고 예약도 어렵기에, 딸은 그저 다가올 학과 기말시험에 편히 대비하려고 서두르는 것 같았다.      

    

  “야, 너는 그 의사가 똥손인 데도 하고 싶은 거니?”

  불안해져서 던진 내 말에 딸은 대뜸 강하게 나왔다.

  “엄마, 강남에 있는 병원인데 칼질을 한두 번 해봤겠어? 나 후회 안 할 테니까, 그냥 거기서 할래.”     


  수능 1주일 전, 딸은 결국 강남 a병원에서 쌍수를 했다. 쌍수 끝나고 나온 딸의 모습을 본 나는 마음이 더 착잡해졌다. 두 눈이 보기 싫게 부었는데 왼쪽이 더 부자연스러운 듯 느껴졌다. 그래도 수술하자마자 뭘 알 수 있겠냐고 마음을 다잡아 먹으며 일주일을 보냈다. 그런데 일주일 후 실밥을 풀러 간 딸이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궁금해 견딜 수 없어 전화했더니, 딸아이는 친구를 만나고 있다며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엄마, 근데 의사 선생님이 왼쪽 눈을 재수술하는 게 좋겠대”     


  그 말에 내 가슴은 지진이 났다. 게다가 재수술 날짜는 내가 큰애와 여행 갈 날이라 부랴부랴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담당 실장은 무슨 법칙을 운운하면서 그런 일이 가끔 생긴다며 빨리 수술할수록 경과도 좋다고 한다. 할 수 없이 날짜를 조정해서 잡고는 전화를 끊었다.


  [내 가슴이 벌렁거린다. 혓바늘이 돋는다. 내 혀를 다 씹어버리고 싶다. 내가 왜 그랬을까? 차라리 비싼 데로 갈 걸......]     


  작은딸은 의사가 먼저 재수술 얘기를 꺼냈다며 그것만으로도 만족해했다. 그러나 나는 재수술할 때까지의 1주일 동안이 죽을 맛이었다. 재수술하는 날 딸과 함께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도 마음은 계속 롤러코스터를 탔다. 담당의를 만났을 때 나는 왼쪽 눈꺼풀 시작 부위가 너무 직선으로 꺽였다며 부드러운 곡선이 되게 라인을 다시 잡아달라고 했다. 의사는 그 말에 수긍을 하면서 딸 아이의 눈매를 어떻게 교정할지 펜을 들었다. 나는 그의 두꺼운 손을 보며 속으로 또 생각했다.     


  ‘에이 저 똥손 대신에 압구정 c병원의 날렵한 의사에게 맡길 껄......’     


  떨리는 맘으로 수술이 끝나고 다시 회복실로 들어오는 딸아이를 보는 순간 더 두껍게 부은 눈을 보면서 어떻게 맘을 추스를 수 없어 다시 상담실장을 만났다. 상담실장은 수술 후 붇기가 빠지고 나면 괜찮을 테니 일단 더 지켜보라 한다. 오그라드는 마음을 부여잡고 일주일이 지나고 아이가 다시 실밥을 풀러 가게 되었을 때 생각 외로 눈이 좀 자연스러워진 듯했다.    

 

  “야, 네 말이 맞나보다. 똥손이 아니었네. 좀 좋아진 것 같다.”

  “거봐, 엄마가 괜히 호들갑을 떨었지. 나는 그냥 괜찮았어.”     


  이제 아이가 쌍꺼풀 수술을 한지, 3개월이 되어간다. 딸의 눈에 아직 핏기가 있지만 눈매가 점점 더 잘 자리잡히는 것 같다. 함부로 똥손이라고 하면 안 되겠다.     

작가의 이전글 성당 앞 계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