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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리우다 Sep 15. 2022

아스또르가(달팽이처럼)

산 마르틴 델 까미노~아스또르가

22.9.14.수(순례25일차,6:20분 소요)

산 마르틴 델 까미노~아스또르가(24km)



아침 6:40, 이제는 어둠이 늦게 물러서는 때가 되었는지 사위가 어둡다. 론세스바이스에서는 아침 6시가 되면 불을 켜고 떠날 준비를 하는데 여기서는 아무도 일어날 생각을 않는다.

할 수 없이 개별 조명등 하나를 켜서 조심스레 배낭 정리를 하고 빠져 나왔다.

산 마르틴을 빠져나오며


알베르게에서 나오면서부터 비가 부슬거려 우비를 입다. 어제에 연이어 내리는 비.. 제발 굵은 비만 오지 않으면 감사하겠나이다.


렌턴이 망가져 버려서 핸드폰을 켜고 걸으며 어둠 속을 가다. 어둠 속에 잠기다는 말을 실감하서 움츠리고 걷고 있는데 멀리서 훤히 밝은 헤 라이트가 달려오는  듯 해서 이 비를 맞으며 어둠 속에 자전거를 몰고오나 했다.


한참이나 안 오길래 헛것을 봤나? 하고 걷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쏟아진 불빛에 놀라 뒤돌아보니 .. 시커멓고 커다란 그림자에 조명등만 보여서 간이 콩알만 해졌다. 머리에 을 단, 키 큰 외국인 4명이 올라~

하더니 우리를 앞서가다.



오브리고 마을과 그 건너 편
웅장한 오브리고 다리

날이 밝아오고도 5km를 더 걸어 오브리고 마을에 들어섰다. 다리  튼튼하게 만들어진 장식이 특히나 멋있는, 웅장한 다리였다.


옛날엔 철갑을 두른 기사들이 훈련을 하고 결투를 했던 것 같은 넓은  운동장도 보였다.

오브리고 다리를 내려서자 마자 멋진 카페가 있어 들어가니 은영 언니네 내외가 앉아있다. 아침을 먹고 함께 출발하다.


부엔 까미노를 응원하는 인형들


아스토르가 근처까지는 마을이 없어 17km가량을 계속 걷다.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말이 없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걷고 있는데 다행히 황토 진흙이 아니어서 리 질퍽거리지는 않는다.


비에 걷는 우리는 괴로우나 비가 즐거운 손님도 있다. 처음으로 까만 민달팽이를 보다. 집을 이고 가는 달팽이도 엄청 크다. 비가 오면 움직이는 이들은 어디로 이사가는 걸까? 많은 순례객들이 걸어가는 지금 목숨을 건 행군인데.. 무엇이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걸까?

나무를 잡아먹는 이끼들


나도 집을 위해 살던 곳을 떠나 이사했는데.. 아직 내 집이 없다. 그러고 보면 나는 자유로운 민달팽이인가?  

그러나 집이 없는 데도 등이 무겁게 느껴지 삶이었다. 이 곳으로 떠나오기 전까지는...


 갑자기 올라버린 집 값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서 마음이 답답했었다.

걷고 있는 지금은 아무 생각이 없다.


걷고 씻고 빨래하고 먹고..

이렇게 순례의 하루는 단순하다. 그 단순함 속에 평화가 있다. 그래서 지금은 집이 있건 없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매일의 일상을 단순함에 머물게 할 수 있다면 쓸데없는 걱정이나 고민을 안 해도 될 텐데..


아스또르가 전경
아스또르가 대성당
가우디가 설계한 주교관


아스또르가에 도착, 알베르게에서 맛있는 소고기스튜에 밥을 먹고 아스또르가 시내로 구경가다.


은영 언니네와 다시 만나 포도주를 한잔하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은 언제나 사람을 즐겁게 하고.. 마치 유럽인들처럼.. 노천 카페에 앉아 오래도록 얘기를 나누다.


비는 내리다 그치기를 반복하는데.. 우리도 헤어지면서 다시 만날 것을 기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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