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바다다. 이른 아침부터 무려 세 시간을 달려 도착한 바다에 비가 내리고 있다. 우리는 아무래도 비를 몰고 다니는 모양이다. 발을 담가 바다 맛을 본 아이들에게 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낑낑대는 강아지가 따로 없다. 들어가고 싶어 안달이 났다. "그냥 갈까? 어떡 할까?"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는 그야말로 바다를 가장 기다린 사람이 아닐까. "그냥 들어가서 놀아." 그는 기다렸다는 듯 아이 같은 미소를 머금고 바다로 뛰어든다. 안된다고 했으면 어쩔 뻔했나. 세 부녀가 이 순간을 온몸으로 즐기고 있다. 나는 의자를 펼쳐놓고 우산을 쓰고 조금은 우스운 모습으로 바다 앞에 앉았다. 그리곤 작정하고 바다를 감상한다. 비 내리는 바다를 이렇게 가만히 바라보았던 적이 있던가. 빗소리와 파도 소리가 적당히 섞여 한층 더 운치 있다. 이 순간 따듯한 커피까지 완벽하다.
누가 그린 그림인지 예술이다. 하늘과 바다와 내리는 비를 어쩜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했을까. 어떻게 색을 섞었길래 가능했을까. 바다 앞에서 나는 한없이 너그러워진다. 모든 걸 내려놓고 가장 선한 내가 된다. 아이들은 그에게 온몸을 맞긴 채 환하게 웃고 있다. 파도에 떠밀려 넘어지고 바닷물을 배불리 먹어도 아무런 불평이 없다. 그 역시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모습이다. 매달린 두 아이가 버거울 만도 한데 그의 표정은 요 근래 본 것 중 가장 밝다.
비내리는 바다를 보며 아빠를 떠올린다. 아빠는 살아생전 바다를 본 적이 있었을까. 나는 스무 살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바다 구경을 했다. 그다음 해 아빠가 돌아가셨다. 가족과 함께 바다를 본 적이 없다. 그 뒤로도 여러 해가 지나고 나서야 엄마를 모시고 바다를 보러 올 수 있었다. 문득 궁금해진다. 아빠는 살아생전 바다를 본 적이 있었을까.
아빠는 중학교 진학을 하지 못하고 쌀 한 가마니에 남의 집 머슴으로 팔려갔다. 그렇게도 하고 싶었던 공부 대신 온몸으로 일을 했다. 아빠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사람들과 어울려 일하는 것 대신 선택할 수 있었던 게 젖소를 돌보는 일이었다. 아빠는 언제나 말이 없었다. 나는 그런 아빠가 싫었다. 아빠를 이해하려는 마음도 없었고, 이해하기엔 내가 너무 어렸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바다 앞에 앉아 돌아가신 아빠를 생각한다. 아빠는 자신의 세상을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을까. 틀을 깨고 나아가는 게 얼마나 겁났을까. 누군가 손잡아 줄 사람이 있었다면 아빠는 바다를 보러 올 수 있었을까. 비 내리는 바다에 앉아 아빠의 오랜 외로움을, 깊은 슬픔을 위로한다.
비 내리는 바다도 참 좋네.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