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휴가는 잘 갔다 왔어?"
오랜만의 전화 통화다. 엄마가 다리를 다치고 일을 쉬실 때는 매일 아침 전화를 했었다. 혼자 집에만 계실 엄마 걱정에 그랬지만 실은 내 마음 편하자고 했던 거였다. 엄마와 매일 아침 통화를 하고 나면 마치 내가 착한 딸이라도 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엄마는 절뚝이는 다리를 이끌고 일터로 다시 복귀하셨다. 그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막을 수 있는 힘이 나에겐 없었으니까. 엄마에게 전화하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걱정되는 마음이야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하지만 그 결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습관처럼 힘들다고 말하는 엄마의 말이 버겁기만 하다. 뭐라고 말해줘야 할지 모르겠다. 그만두라고 하지 못하는 내가 초라하다. 죄책감 비슷한 감정들이 나를 짓누른다. 그렇다. 내 마음 편하자고 전화를 하지 않고 있는 거다. 오늘은 해야지 하곤 늦었네, 내일은 꼭 해야지. 이런저런 핑계를 대가면서 엄마와의 통화를 미루고 있다. 비겁하다.
여행지에서 아이가 엄마에게 사진을 보낸 모양이다. 순간 감춰야 할 비밀을 들킨 기분이 든다. 잘못한 게 아닌데 잘못한 것 같은 그런 마음. 그 뒤로 며칠이 지나도록 여전히 나는 통화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있다. 실은 무겁게 들고 있으면서, 내려놓지도 못하면서, 가벼운 척을 한다. 그렇게 하면 그것들이 나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외면한다. 어리석다.
금방이라도 가을이 올 것 같은 밤공기가 이불을 잡아당기게 한다. 하지만 낮은 여전히 뜨겁기만 하다. 엄마는 오늘도 아픈 다리를 이끌고 땀을 흘려가며 일을 하고 있겠지. 에어컨 밑에 앉아 한량처럼 글이나 쓰고 있는 나는 이 순간 죄를 짓고 있다.
"너만 잘 살면 그만이지?"
엄마는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내 가슴속 깊이 상처를 내 버린 그 말을. 곪아 터져 냄새를 풍기던 그 말이 끝내 나를 주저앉게 만든다. 나는 나쁜 딸이다.
오늘의 해가 제 할 일을 다했다고 주섬주섬 집에 갈 채비를 할 때 즈음 손가락이 무겁게 통화 버튼을 누른다. "그래서 휴가는 잘 갔다 왔어?" 엄마의 목소리가 밝다. 오늘도 너무 힘이 들었다는 똑같은 말을 늘어놓는 엄마의 목소리가 너무도 밝다.
그래서 나는 지금 많이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