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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닐라라떼 Dec 17. 2021

책 정리를 하며

빈 공간엔 사랑과 믿음을.


"집에 책이 너무 많다."


그 말이 맞다. 큰아이가 어릴 때 분야별로 전집을 하나씩 들였었다. 이게 꼭 있어야 한다더라, 읽혀야 한다더라, 하는 말들에 많이 흔들렸다. 주문한 책이 오는 날이면 남편과 다투곤 했다. 남편은 책 사는 것에 반대했다. 그래서 언젠가부턴 남편 몰래 사기도 했다. 사서 잘 읽히면 되지, 하는 오기가 생겼었다.


이 사회가 불안감을 조성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 엄마들은 한없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책을 사지 않을 수가 없단 말이다.


결론적으로 큰아이에게는 분야별로 다양한 책들을 접하게 해주었다. 목이 쉬도록 책을 쌓아두고 읽어준 날들이 이어졌고 아이도 책을 좋아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책을 사길 잘했다고 스스로 위안 삼기도 했다.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그동안 보던 전집들을 정리하려고 했었다. 좀 더 수준 높은 책으로 바꿔주고 싶었다. 하지만 세 살 터울 나는 작은 아이를 위해 묵혀두었다. 박스에 정리해 쌓아두면서 말이다. 그 책들을 작은 아이도 잘 볼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큰아이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나는 목이 쉬도록 책을 읽어줄 수 없었고, 작은 아이는 큰아이와는 색깔이 다른 책들을 좋아했다. 책 상자엔 먼지만 쌓여갔다. 그래도 초등 입학 전에 한 번은 읽혀야지, 했다. 여전히 그렇게 붙들고 있었다.


작은 아이 초등 입학을 앞두고 큰아이와 똑같이 책상을 사주고 싶다는 남편은 공간 확보를 위해 깊은 고민에 빠진 듯했다. 그러다 남편이 먼저 말을 꺼냈다. 책이 너무 많다고, 정리가 좀 필요할 것 같다고 말이다. 어떤 책들을 정리할까 살펴보는데 참 다양하게 많기도 하다. 정가를 주고 산 책들도 있고 중고로 구입한 책들도 있다. 책 하나하나에 깃든 추억이 떠오른다.


"책 살 때마다 참 많이도 싸웠는데."

"그래도 잘 읽혔잖아. 자기가 열심히 했지. 나도 알고 있어."


비어가는 책장을 보니 가득 채우려고만 했던 지난날들이 떠오른다. 책 앞에서 큰아이 때와는 다른 마음이 드는 걸 보면 흐르는 세월에 내가 조금은 단단해진 것도 같다.


책을 정리하면서 내친김에 필요 없는 것들을 꺼내서 정리했다. 공간이 생길수록 마음이 편안해지고 가벼워진다. 이제 이 빈 공간에 책 대신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채워 넣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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