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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닐라라떼 Feb 20. 2022

밤새 안녕

부디 그러하길

"장모님한테 전화드려봐. 그래도 여기 왔는데 들렀다 가야지."


친구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나와 집에 가려는데 남편이 내게 말했다. 실은 장례식장만 들렸다가 가려고 아이들도 집에 두고 왔다. 아이들끼리만 있어도 되나 싶었지만 오히려 더 잘 있을 것 같아 그렇게 했다.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친구 아버지 소식을 전하며 장례식장에 왔다고 했다. 엄마는 안타까워하셨다. 왜 안 그러겠는가. 엄마도 아빠 생각이 났을 것이다. 허망하게 가버린 아빠를 보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절망했던 젊은 날이 떠올랐을 것이다. 그래서 안 들리고 싶었다. 뭐 좋은 얘기라고 얼굴 맞대고 하나. 피하고 싶었던 것도 같다. 그런데 장례식장에서 나오자 생각이 바뀌었다. 엄마를 보고 가고 싶었다. 먼저 들렀다 가자고 말해준 남편에게 고마웠다.



"됐어. 먹고 싶은 거 없어. 그냥 와."


엄마는 또 거짓말을 했다. 먹고 싶은 게 없단다. 몇 가지 메뉴를 말해도 괜찮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알아차렸다. 뭘 사 가면 될지. 목소리 톤에서 먹고 싶은 게 눈에 띄었다. 떡과 감자탕이 당첨이었다. 나는 떡집에, 남편은 감자탕 집에 들르기로 했다. 종류별로 널려있는 떡 중에 엄마가 좋아하는 떡을 몇 가지 집어 들었다. 엄마에 대한 여러 감정 앞에 힘들어하면서도 고민 없이 엄마가 좋아하는 떡을 집는 걸 보면서 피식 웃음이 났다. 감자탕 집 앞에서 남편을 기다렸다. 남편은 두 손 가득 감자탕을 들고 한참만에 나왔다. 



"뭘 그렇게 많이 샀어?"

"많이 드시라고."


무얼 사든 간에 딱 필요한 만큼만 사는 평소 남편의 모습을 알기에 더 고마웠다. 나는 무거워서 들지도 못할 정도였다. 감자탕이 든 봉지를 들다가 울컥 눈물이 났다. 그냥 그랬다. 엄마는 집에 혼자 있었다. 불도 안 켜고 TV만 틀어놓은 채 계셨다. 뭘 이렇게 많이 사 왔냐면서도 좋아하는 표정을 숨기지 못하셨다. 


엄마는 떡을 드시면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셨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엄마의 이야기에 조금 지치기도 했다. 그래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내가 잠시 놓치면 고맙게도 남편이 그 부분을 잘 듣고 있었다. 말씀하시는 엄마를 찬찬히 봤다. 작다. 사람이 참 작다. 많이 늙었다. 새삼 엄마가 늙었다는 게 보였다. 날이 날이니만큼 마음이 참 그랬다. 


엄마와 밥 한 끼를 같이 못 먹고 다시 일어섰다. 혼자 계신 엄마를 뒤로 한 채 집에 두고 온 아이들을 챙기러 나섰다. 끼니 거르지 말고 드시라고, 운동 열심히 하시라고, 어디 아프면 참지 말고 밤에라도 전화를 꼭 하라고... 울컥 울컥 올라오는 감정을 누르며 말을 전했다. 엄마는 괜찮다고 어서 가라고 고맙다고 했다. 고맙긴 뭐가 고맙냐.. 



집에 오는 차 안에서 어머님께도 전화를 드렸다. 아버님은 괜찮으신지, 별일 없으신지 묻고 싶었다. 진심으로 그러고 싶었다. <밤새 안녕>는 말처럼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안녕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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