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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닐라라떼 Mar 11. 2022

회장이 되고 싶어요 - 그 뒷이야기

넌 충분히 멋져

"엄마. OO 회장됐대. 학교 끝나고 핸드폰을 켰는데 문자가 와 있더라."


큰아이는 학교를 마치면 내게 전화를 한다. 학교가 바로 코앞이지만 집에 오는 길에 전화를 걸어 수다를 늘어놓는다. 아이의 목소리는 언제나 활기차고 힘이 넘친다. 깔깔거리는 아이의 웃음소리가 듣기 좋다. 그런데 오늘은 아이의 목소리가 푹 가라앉아있다. 왜 그런지 알 것 같지만 묻지 않았다. 



"얼른 와. 우리 딸~ 엄마가 베란다에서 내다보고 있어. 보여?"


아이보다 일부러 밝게 목소리를 내본다. 팔을 마구 휘저으며 아는 척을 했다. 아이는 손을 살짝 들었다 내렸다. 속상하구나. 우리 딸.



회장 선거 결과는 처참했다. 회장이 되지 않은 것보다 더 속상한 건 아이를 뽑아준 친구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한숨을 푹푹 쉬는 아이를 꼭 껴안아 주었다. 아이는 한참 동안 내게 안겨있더니 입을 열었다. 



"그런데 엄마. 회장된 애가 내세운 공약은 지킬 수 없는 것들이었어. 친구들 생일 파티를 열어준다고 하고, 친구들이 먹고 싶은 반찬이 나오게 해준다고 하고, 반에서 게임대회를 연다고 하고.. 그게 말이 돼? 공약은 약속이잖아. 지킬 수 있는 걸 내세워야지. 지킬 수 없는걸 하면 안 되는 거 아냐?"



아이는 지극히 평범하고 지킬 수 있는 공약을 내 세웠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 눈에는 재미없어 보였을 것이다. 회장이 된 그 친구는 반 친구들이 좋아할 만한 공약을 내세웠다. 지킬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들어보니 친구들이 환호할만했다. 역시나 표를 많이 받아 회장이 되었다. 속상해하는 아이를 보니 공약 준비할 때 도와주었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다. 아니다. 그렇게 준비해서 회장이 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아이는 속상하고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잠시 말을 멈춘 아이가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자기가 너무 평범하게 준비해서 아이들이 기억을 못 한 것 같다며 준비를 더 많이 했어야 했다고 회장이 되지 못한 이유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우리 딸 속상해서 어쩌나. 먹고 싶은 거 있어? 우리 맛있는 거 먹자!"


아이는 밀푀유나베가 먹고 싶다고 했다. 장을 봐다가 밀푀유나베를 만들었다. 남편도 아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사서는 일찍 퇴근을 했다. 작은 아이는 그래도 우리 언니 멋지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도 나중에 언니처럼 회장에 나가 보겠다고 했다. 우리 식구는 저녁을 먹으며 아이를 위로했다. 아이는 저녁을 맛있게 먹고는 씩 웃어 보였다. 그리곤 나를 보고 말했다. 


"엄마. 나 이제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아."





아이 앞에서 말하지 못했지만 나는 솔직히 이런 경험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작년에 많은 표를 받고 회장이 되었던 아이는 이번 선거도 쉽게 생각했을지 모른다.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자신이 회장이 될 거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가만히 앉아 거꾸로 생각해 보면 쉬운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일단 반에 아는 친구들이 별로 없었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려는 노력도 그다지 하지 않았다. 후보는 많았고, 눈에 띄는 공약을 내세우지도 않았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는 이야기다. 



아이가 앞으로 자라면서 겪게 될 많은 일들 앞에서 오늘의 경험이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매번 쉽게 성공하고 실패 없이 가는 걸 원하지 않는다. 속상하고 마음 아프지만 이번 일처럼 실패도 해보고 때론 주저앉아 울어도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경험들이 아이에게 큰 자산이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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