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님, 육해공중 중 어디로 예약할까요? 아니면 다 드실 수 있는 한식으로 할까요?”
영업사원으로 일하면서 종종 하는 질문이다. 고객의 취향을 파악하는 건 신뢰를 얻는 첫걸음이다. 그런데 처음 만나는 고객, 특별한 음식에 대한 선호를 드러내지 않는 고객에게는 이런 질문이 가장 무난하다. 육지, 바다, 하늘—이렇게 나누는 건 재미로 시작한 말인데, 어쩐지 꽤 잘 통한다. 육지는 고기, 바다는 회, 하늘은 닭고기나 중식을 뜻한다.
보통 고객이 "다 좋아요"라고 하면 한식으로 간다. 한식은 실패가 없다.
한식엔 소주, 중식엔 연태, 일식엔 소맥, 양식엔 와인.
나는 늘 술로 요리를 고른다. 한식은 단연 소주다. 김치찌개에, 불고기에, 전까지. 한 상 가득 차린 음식들이 포만감을 넘어 부담스러울 때가 많다. 그럴 때 소주 한 잔은 묵직했던 위장을 활명수처럼 시원하게 정리해 준다.
중국집에선 연태가 빠질 수 없다. 기름진 음식과 강한 향이 연태 특유의 짜릿함과 만나면 입안이 정돈된다. 특히 연태 500ml 원플러스원은 나와 지인들의 단골 메뉴다. 넷이 가면 두 병을 주문하고, 각자 한 병씩 나눠 마신다. 마지막엔 짬뽕 국물에 칭따오를 곁들여 해장을 한다. “공보가주?” 가끔 마시긴 하는데, 그 항아리 속에 감춰진 양이 부담스럽다. 나는 겉과 속이 다 보이는 술이 좋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은 곁에 두지 않는다.
일식은 고급 접대용이다. 고위직 고객과 룸에서 세프 스페셜 코스를 주문하면 자연스레 소맥을 탄다. 맥주잔에 소주잔 2/3에 소주를 넣고 맥주는 소주 4잔 정도의 양를 섞은 한 잔은 완벽한 스타트 음식이다. 소맥 2잔으로 입가심을 하고 차례로 들어오는 음식들을 맛본다. 중간에 세프가 인사하러 들어온다. 세프와 술 한 두잔 주고받고 하면 세프의 고급 서비스가 음식이 추가된다. 그러면서 술 분위기가 더욱 무르익는다.
양식은 분위기를 요 하는 느낌이다. 고객들이 보통 남자들이라 양식집에 가는 게 어색해 잘 안 가지만, 여직원들과의 점심이나 친구들과의 만남엔 괜찮다. 양식당에서 와인을 고르는 기준은 늘 스테이크냐 생선이냐로 나뉘는데, 나는 항상 레드 와인이다. 진한 맛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천히 음미하는 대신 한 잔을 단숨에 비우는 나에게 와인은 조금 사치스러운 술이다.
예전에는 음식에 무심했다. 집에서 혼자 한 끼를 먹을 때는 떡 한 덩이, 상추 한두 장, 빵 두 조각으로 허겁지겁 끼니를 때우곤 했다. 왜 사람들은 음식을 위해 돈을 쓰고 시간을 들이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요즘, 나를 찾는 여정 중에 '먹는 행복'이란 걸 조금씩 깨닫고 있다.
하얀 도자기 접시 위에 노릇하게 구운 빵 몇 조각과 색색의 채소를 얹는다. 작은 팬에 버터를 녹여 소고기를 굽고, 팬째로 식탁 위에 올린다. 황토색 도자기에 담긴 야채 샐러드는 올리브유와 발사믹 식초, 꿀로 간을 맞췄다. 와인잔에는 레드 와인을 따르고, 넷플릭스에서 오만과 편견을 틀어놓는다. 한 손에 포크를 들고, 한 손에 와인잔을 들어 조용히 행복한 웃음 짓는다.
요즘 나를 위한 주말 저녁 한 끼 선물이다.
이 작은 행복이 쌓여, 나를 조금씩 더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