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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잔의 커피에 담긴 아침 식사

by 허당 써니

새벽 4시. 창밖은 깊은 어둠 속에 잠겨 있고, 온 세상이 고요하다. 두 시간 후면 서울숲을 향해 걷기 시작할 노랗게 빛나는 가로등 아래의 도보는 텅 비어 쓸쓸함을 더한다.

내 아침은 새벽 3시 30분부터 시작된다. 커피를 내리는 동안, 토스트기에서 갓 구운 빵 한 조각이 퍼뜨리는 고소하고 따뜻한 향이 거실을 가득 채운다. 몇 달 전, 나를 위한 선물로 고른 커피잔 세트가 이 우아한 순간을 완성 시킨다.


나는 이런 아침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다. 어린 시절, 나의 가장 큰 꿈은 시원한 사이다와 달콤한 카스테라 빵을 마음껏 먹어보는 것이었다. 사이다를 사면 형제들과 나눠 마셔야 했고, 한 병의 사이다는 늘 목마름을 채우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빵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늘 우리끼리 ‘곰보 빵’이라 부르던 커다란 빵을 사 오셨다. 값싸고 나눠 먹기 좋은 빵이었지만, 어린 내게 카스테라 빵은 특별한 맛이었다.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 몇 조각 얻어먹었던 카스테라 빵은 입안에서 사르르 녹으며 사라졌다. 그 맛이 얼마나 황홀했는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영업사원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내 삶은 달라졌다. 매일 밤 술자리를 이어가며 아침은 늘 거르기 일쑤였다. 아침 미팅이 끝난 뒤엔 속을 달래려 커피 한 잔을 마셨다. 숙취로 고단했던 몸에 시원한 아이스 커피 한 잔은 그야말로 해장이었다.

점심 약속이 없는 날이면, 영업사원들은 회사 옆 작은 식당으로 발길을 옮긴다. 허름한 외관이지만 사람들로 북적이는 맛집이다. “써니씨, 오늘은 상태가 좋아 보이네요. 어젠 술 덜 드셨나 봐요?” 주인아줌마는 내 얼굴만 보면 전날 얼마나 마셨는지 알아챈다.

“사장님, 우리 4명 순댓국에 내장 듬뿍 넣어서 부탁드려요. 그리고 아시죠? 진로 한 병에 잔 4개요!” 식사 중의 반주는 우리에게 반찬 같은 존재였다. 밥은 거의 손대지 않고 순대만 건져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써니야, 딱 한 병만 더 마시자. 난 오후에 자유야. 저녁엔 A사 김부장이랑 약속 있지만 아직 시간 많아. 이거 먹고 좀 쉬었다 가려고. 어때?” 김 과장은 나보다 네 살 많지만, 영업맨으로서 특별히 뛰어난 사람은 아니다. 술이 좋아서 늘 마시기만 하는 그는 본부장에게 매일 꾸중을 듣곤 했다. 하지만 인간적으로는 정이 가는 사람이라 그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는다.

“콜이죠. 전 3시에 업체에서 오실 건데 뭐, 이 정도야.”

그 후로도 우리는 술병을 두 개나 더 비웠다. 가벼운 취기에 서로 웃고 떠들며 그렇게 하루를 넘기곤 했다.


시간이 흘러, 어느새 갱년기가 찾아왔다. 잠의 질이 떨어지면서 고통스러운 밤이 이어졌다. 이때부터 나는 커피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활력을 주던 커피를 끊은 지 1년쯤 되던 어느 날, 지인에게 다크 로스팅된 저카페인 커피를 선물 받았다. 1년 만에 다시 마신 커피는 놀라운 맛과 향으로 나를 사로잡았다. 숙취 속에 마셨던 아이스 아메리카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진하고 풍부한 맛이었다.


그날 이후, 내 아침은 커피 한 잔으로 다시 완성된다. 한잔의 커피는 단순히 음료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다. 어린 시절의 꿈과 열망, 고단했던 직장 생활의 기억, 그리고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설렘이 모두 담겨 있다. 커피 한 잔과 함께하는 아침 식사는 이제 나를 살아있게 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오늘도 이 커피 한 잔처럼 따뜻하고 풍요로운 하루가 되길," 스스로에게 속삭이며 한 모금을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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