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왕빙 감독과의 만남, 나는 질문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책_나의 작가주의 (정성일 작가)

by 허당 써니

왕빙, 카메라로 역사를 기록하는 작가

『나의 작가주의』는 중국의 영화감독 왕빙에 대한 깊은 애정을 바탕으로 정성일이 집필한 책이다. 단순한 감독론을 넘어, 그의 작품 세계를 해부하고, 영화가 지닌 본질적 질문들을 탐구하는 과정이 담겨 있다. 책은 왕빙의 아홉 편의 주요 작품을 중심으로 전개되며, 감독이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과 카메라를 통해 구현된 그의 세계관을 면밀히 분석한다.

왕빙은 2003년, 무려 9시간 11분에 달하는 데뷔작 철서구를 통해 세계 영화계에 강렬한 첫 발을 내디뎠다. 이후 세 자매, 광기가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사령혼 등의 작품을 통해 역사에 의해 정체성을 상실한 이들,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난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아왔다. 그의 영화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 이름이 지워진 이들에게 다시 이름표를 붙여주는 작업과도 같다. 정성일은 그의 작품 속에 흐르는 철학과 시대정신을 집요하게 탐색하며, 이 책을 통해 동시대 가장 중요한 중국 감독 중 한 명인 왕빙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기회를 제공한다.


왕빙의 영화, 그 속에서 마주한 질문들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왕빙의 영화는 단순한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그는 단순히 카메라를 들고 시대를 기록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카메라를 통해 인간의 삶과 존엄성을 증명하는 예술가다.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단순한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삶 자체가 영화가 된다. 카메라는 그들의 존재를 한순간도 배제하지 않으며, 조작되지 않은 날것의 현실을 그대로 담아낸다.

나는 우연히 이 책을 접했고, 단순한 흥미를 넘어 왕빙이라는 거대한 세계관에 깊이 매료되는 경험을 했다. 그의 영화 속에는 끝맺음이 없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질문이 멈추지 않는다. 작품 속 인물들이 이후 어떤 삶을 살아갔을지, 현실의 무게를 견디며 어떻게 버텨냈을지를 끊임없이 상상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우리는 결코 질문을 멈춰서는 안 된다. 왕빙의 영화는 단순한 서사가 아니다. 그의 카메라는 냉혹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침묵을 포착하고, 우리에게 끊임없이 물음을 던진다. 그 물음이 불편하다면, 그것은 우리가 지금껏 외면해온 현실 때문일 것이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왕빙의 작품을 통해 나는 강렬한 충격을 받았다. 단순히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지속되는 삶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그의 영화는 과거를 이야기하는 동시에, 현재를 증명하고, 미래를 향한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내가 살아가는 이 안정적인 세계는 정당한 것인가?
나는 행복해도 되는가?

왕빙의 영화는 단순한 감상이 아니다. 그것은 나를 완전히 뒤흔드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의 작품은 내가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었고, 나의 삶을 다시금 질문하게 했다.

왕빙의 카메라가 그러하듯, 나도 나의 방식으로 이 시대를 기록하고, 고민하고, 답을 찾아야 한다.


책 속으로

29~30쪽

“나는 비로소 이미지와 대상, 대상이 놓여 있는 장소, 사진을 찍는 나와 대상이 놓여 있는 틈 사이에 무엇이 있는지 보기 시작했어요. 이제 내게서 모든 이미지는 리얼리티를 향하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건 작가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 이라고 부르는 세상입니다. 그리고 세상은 언제나 사실 그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 이상의 것을 찍어야 했습니다. 이제 나에게 찍는다는 것은 내 즐거움을 위한 것이 아니라 카메라를 든 내게 내려진 의무라는 걸 알았습니다. 나는 여기서, 사진과 나, 세상과 나 사이에서 태도를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이 태도를 믿고 지켰습니다.”

71쪽

왕빙은 이주를 준비하는 주민들의 증언을 차례로 담는다. 어떤 점에서 <철서구>는 <사령혼>과 공통점이 있다. <사령혼>에서 증언을 하는 증인들은 죽어가고 있다. <철서구>는 죽어가는 ‘구區’의 기록이다. 죽어가는 것. 사라져가는 것. 아는 것을 알게 해야 한다. 영화가 그걸 담아놓지 않으면, 그렇게 붙잡아놓지 않으면, 그래서 기억하지 않으면, 결국엔 이 모든 것을 불러내기 위하여 상상해야 할 것이다.

137쪽

그러면 질문에 다가가는 방법은 무엇인가. 왕빙의 대답. “내 유일한 능력은 삶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그게 제일 중요합니다.” 왜 관찰하는가. 왕빙의 방법론은 단 한 가지이다. 대상에 대한 공감. 그러므로 관찰과 공감을 연결시켜야 한다.

160쪽

이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슬픔을 보아야 한다. 인간의 형상, 동물적인 존재들. 하지만 거기서 왕빙은 사랑하고 고통받고 위험을 감당하면서까지 생명에, 자신의 생명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것에 헌신하는 자들의 정념을 볼 것이다. 조건의 불행. 나는 지금 해방, 이라는 단어를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해방의 다른 뜻이 구출, 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제부터 내가 해나가는 작업은 위 자막에 대한 주석에 다름 아니다.

200쪽

왕빙은 여기서 저기로,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로, 이 환자에게서 저 환자에게로 옮겨 가면서 계속해서 이미지 위에 이름을 기록한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처럼 그 앞에 카메라가 서면 이미지 위에 이름을 쓴다. 나는 구태여 쓴다, 라는 표현을 썼다. 그건 단순하게 자막이 아니다. 이미지 위에 이름을 쓰는 것은 한 명 한 명에게 그들의 정체성을 돌려주는 과정이다.

247쪽

왕빙은 원칙보다 자기 카메라 앞에 서 있는 인물이 훨씬 중요하다고 믿는다. 거기에 카메라가 존재하지만 실존하는 것은 항상 그 인물이다, 라는 상위 원칙. 왕빙은 그것을 이항대립으로 만들지 않았다. 지금 여기, 라는 장소에 영화가 있음을 의식하면서 질문을 제기하는 특별한 존재자의 실존에 대해 그걸 내내 열어놓는 행위, 를 왕빙은 그저 찍는다, 라는 말로 내게 간단하게 설명했다. 이제까지 모두들 내게 어떻게 찍는지에 대해 설명하려고 애썼다. 왕빙은 그저 찍는다, 라는 말로 자기의 방법을 정식화시켰다.

348쪽

영화는 그 안에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장소) 그 곁에 있어야 한다(대상). 여기에 거짓이 개입하면 안 된다. 이것이 왕빙이 왕빙 자신에게 내리는 정언명령이다. 그러므로 영화는 내가 거기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곁에 있었다는 증거이자 흔적이다. 같은 말의 다른 판본. 영화가 기록하는 것은 찍는 대상이지만 동시에 영화를 찍고 있는 나, 인 것이다. 왜 이 문제가 중요해진 것일까.

409쪽

“왜 위험을 무릅쓰고 당신은 중국에 돌아가기를 반복합니까.” 왕빙이 대답했다. “나는 영화감독입니다. 내가 찍어야 할 사람들이 거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여기가 아니라 거기 있어야 합니다. 그들 곁에 있을 때만 나는 영화감독입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하우스웨더" 집이 어떻다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