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 시루처럼 빼곡히 들어찬 교실 안, 가남초등학교 3학년 2반 아이들의 눈빛은 초롱초롱 빛나며 담임선생님을 향해 집중하고 있었다. 담임선생님은 새 학년, 4학년의 반 배정을 발표하고 있었다. 한 학년에 여섯 반이 편성되어, 한 반에 약 59명씩 아이들이 나누어졌다.
"써니야, 내년에도 우리 꼭 같은 반 되자."
내 짝꿍 선희가 속삭이듯 말했다. 그녀는 조심스레 내 손을 꼭 잡았다. 손끝에 닿은 온기와 땀방울이 그녀의 간절함을 그대로 전해 주었다. 나는 선희처럼 마음을 잘 표현하는 아이가 아니었지만, 그런 나를 선희는 유독 좋아해 주었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처럼, 선희와 나는 다른 반으로 나뉘었다. "써니는 1반, 선희는 2반." 발표된 이름에 선희의 손에서 힘이 빠지는 게 느껴졌다. 그녀의 눈에는 금세 눈물이 맺혔고, 이내 나를 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선희만큼의 슬픔을 느끼지 못한 나는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조심스레 말했다. "우리 5학년 때는 꼭 같은 반이 될 거야. 걱정하지 마, 다른 반이어도 같이 놀 수 있잖아."
시간이 흘러, 나는 4학년 1반에서 새로운 친구들과 어울리며 점차 선희와 멀어졌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여러 초등학교에서 모인 새로운 얼굴들 사이에서 선희의 존재는 더욱 희미해졌다.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치르던 날, 선희의 얼굴이 다시 내 시야에 들어왔다. 그 순간, 우리는 다시 가까워질 기회가 주어진 듯했다.
하지만 운명은 또 한 번 우리를 갈라놓았다. 선희는 시험에서 떨어졌고, 수원에 있는 언니 집으로 가서 재수를 준비한다고 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따뜻하고 진심이 담겨 있었다. "써니야, 나 너 좋아하는 거 알지? 다시 만날 때까지 꼭 기다려."
나는 늘 새로운 환경과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인지 선희가 들어올 자리가 내 주변에 쉽게 생기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중학교 동창들보다 새로운 친구들과 더 가까워졌고, 도서관에서 공부하거나 친구 집에서 시간을 보내며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갔다.
직장생활 중 우연히 중학교 동창 모임에서 선희의 소식을 들었다. 선희는 결국 수원으로 이사해 언니 집 근처의 고등학교에 진학했다고 했다. 선희의 전화번호를 받은 나는 망설임 없이 연락을 시도했다.
지하철역 앞에서 만난 선희는 여전히 수줍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어린 시절 교실에서 내 손을 꼭 잡던 그 손길처럼, 그녀는 다시 내 손을 꼭 잡았다. 우리는 카페 문이 닫힐 때까지 끝없이 이야기를 나눴다. 시간이 흘러 우리의 우정은 다시 시작되었다. 성인이 된 후 10년 동안 선희와 나는 서로의 삶에 깊이 스며들었다. 남자 친구를 만날 때마다 그녀는 나의 곁에 있었고, 지금의 남편도 선희에게 소개했다. 아들이 태어나는 순간도 그녀와 함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선희는 조용히 말했다. "써니야, 나 수녀가 되려고 해."
나는 충격에 말을 잃었다. 선희는 차분히 이야기를 이어갔다. 어릴 적부터 카톨릭 집안에서 자라며 늘 수녀가 되는 꿈을 품어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말한 곳은 폐쇄 수녀원이었다. 그곳에 들어가면 세상과 단절된 채 평생을 기도로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압도했다.
나는 선희를 설득하려 했지만, 그녀의 결심은 단단했다. 결국, 6개월 후 선희는 폐쇄 수녀원에 들어갔다.
이제 내 친구 선희는 거룩한 수녀님이 되었다. 그녀의 선택은 내 상식과 이해를 넘어서지만, 선희의 눈빛에서 나는 평온과 확신을 보았다. 그리고 이제 나는 안다. 선희는 늘 자신의 자리에서 가장 빛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