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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적금처럼, 천천히 쌓인다

by 허당 써니 Mar 24. 2025

돈과 행복 사이에서 길을 묻다

“행복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누군가 그렇게 물었을 때, 나는 망설임 없이 ‘일’이라고 대답한다. 나에게 일은 숙명 같았다. 하루하루 열정에 불타며 일에 몰두했고, 그 안에서 성취감과 행복을 찾았다. 물론 잃은 것도 많다. 늦은 밤까지 술을 곁들인 접대, 놓쳐버린 가족과의 시간, 오해받는 나의 말투와 성격. 그래도 후회는 없다. ‘해야 할 일’을 ‘하고 싶은 일’로 여기며 살아왔기에, 나는 만족한다.

작은 중소기업의 본부장이라는 타이틀, 누군가는 대단치 않다고 할지 몰라도, 나는 지금의 내 자리를 사랑한다. 주변의 대기업 임원이나 벤더 영업들이 부럽지 않다. 어쩌면 그들보다 더 진심으로 내 일을 사랑했고, 내 몫의 행복을 충분히 누렸기 때문이다.    

 

돈, 그 달콤한 집착

“써니씨, 돈은 쫓는다고 오는 게 아니에요. 열정적으로 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곁에 와 있는 거예요.”

술자리에서 항상 ‘돈! 돈!’ 하던 나에게, 지인들이 해주던 말이다. 맞는 말이지만, 당장은 실감 나지 않았다. 결혼 초에는 더더욱 그랬다.     

남자를 만날 때 나는 늘 같은 기준이 있었다.

겉으로 있어 보이거나, 정말 있어서 잘난 척하는 남자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사람과는 마음이 통하지 않았다. 내 이상형은 단순했다. 눈이 크고, 껌벅이는 눈망울 속에 착함이 보이는 사람.

어릴 적부터 그게 이상형이었다. 누군가는 ‘소처럼 생겼다’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내겐 그 눈빛이 따뜻함의 상징이었다.

그런 남자를 학교 동창인 친구의 회사모임에서 우연히 만났다.

딱 한 번 본 자리였지만, 나는 속으로 외쳤다.

“그래, 저 사람이야. 내 이상형이야.”

그날 이후로 친구는 조심스레 말렸다.

“야, 우리가 공무원이잖아. 월급이 적잖아. 근데 저 사람 집안 형편이 좋지 않대. 잘 생각하고 만나.” 하지만 그 말은 오히려 내 마음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내가 저 집 기둥 세워주면 되잖아.” 말은 거칠지만, 그게 진심이었다.

그 후로 우리는 2년을 만났다.

그렇다고 자주 본 것도 아니었다. 연락도 뜸했고, 제대로 된 데이트도 몇 번 안 했다.

사실, 남편은 내 말투와 행동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술자리가 잦고, 말도 직설적인 ‘영업사원 스타일’인 내가, 그에겐 좀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알고 보니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그 친구… 좀 사기꾼 같지 않냐?” 웃음이 나올 만한 말이지만, 마음이 아팠다.

다행히 친구는 끈질기게 그를 설득해 주었다.

“말투만 저렇지, 정말 착한 친구야. 진심은 따뜻한 사람이야.”

그렇게 남편보다도 친구가 나서서, 우리 인연을 이어갔다.

2년을 그렇게 만났고, 결국 우리는 결혼을 결심했다.

별다른 이벤트 없이, 몇 번의 만남 끝에 “그래, 인연인가 보다” 싶어서.

그 결혼의 시작은 참 조용했고, 솔직히 말해 좀 험난했다.

남편의 결혼자금은 딱 500만 원. 나는 그 무렵, 전세로 살던 집에서 보증금을 날리는 사기를 당해 결혼자금도 없는 상황이었다.

결혼하자마자 내 자취방에서 살다가 보증금 떼이고 같이 합칠 집이 없어 2개월간은 따로 살아야 했다.

그래도 다행히 공무원 인사과 지인의 도움으로 대치동 공무원 아파트에 입주하면서 우리는 비로소 ‘함께 사는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땐 진짜 아무것도 없었다. 결혼 예물도 없었고, 결혼기념일이나 생일 같은 기념일도 과감히 생략했다.

우리가 한 유일한 약속은 하나였다. “기념일보다 저축을 하자.”

그때부터 우리는 급여의 80%를 저축하며 살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언젠가는 안정된 삶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 결심 덕분에, 나는 늘 외치곤 했다.

“돈! 돈! 돈!” 그건 집착이기도 했고, 생존이기도 했다.

어떤 날은 남편이 말하곤 했다.

“당신은 진짜 돈 얘기밖에 안 해.”

그럼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럼 어떡해, 우리가 가진 게 그거 하나인데.”

그렇게 우리는 아무것도 없이 시작해서, 천천히 함께 만들어갔다.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함께 노력했기 때문에 지금이 가능했다.    

 

황금 손, 마다스의 아이러니

그리스 신화 속 마다스 왕은 손에 닿는 모든 것을 황금으로 바꿀 수 있었다. 처음엔 얼마나 기뻤을까. 하지만 음식도, 사랑하는 아내도 황금으로 변해버렸을 때, 그는 깨달았을 것이다.

“부는 때로 축복이 아니라 짐이 될 수도 있다.”

언제부턴가 나도 ‘마다스의 손’을 부러워하게 됐다. 코스닥 열풍, 비트코인 투자자, 스톡옵션 부자들… 그들이 이룬 부를 부러워하며 주식에, 투기에 손을 댔다. 하지만 결과는 황금이 아닌, 무거운 쇳덩이 같은 손이었다.     

끝없이 추락하던 계좌를 보며, 나는 조용히 다시 저축의 세계로 돌아왔다. “서울에 집 한 채, 그리고 현금. 그거면 충분하다.” 그렇게 다짐하며 다시 현실을 받아들였고, 어느 순간부터 마음이 편안해졌다. ‘있는 그대로’의 삶이 행복임을, 조금 늦게 알았다.     

지식에 대한 또 다른 갈증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하나가 채워지면 또 다른 곳을 향한다. 이번엔 ‘지식’이었다. 일하느라 미뤄두었던 공부, 세상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날 흔들었다.

“삶은 배움의 연속이다. 멈추지 않는 자에게 길이 보인다.”

– 루소     

2년째 나는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고, 읽고, 토론하며 다시금 지적 성장을 향한 여정을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제 좀 쉬어도 되지 않느냐”고 묻는다. 나는 웃으며 말한다.

“하고 싶은 걸 안 하고 참는 건 내겐 더 피곤한 일이에요.”

열정은 아직도 나를 이끈다. 적당히가 안 되는 내 성격이 가끔은 문제지만, 지금의 이 욕심조차 나를 행복하게 하니까 괜찮다.     


가족이라는 오래된 약속

일에 파묻혀 살아오며 놓친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가족이다. 특히 남편.

내가 ‘사기꾼 같다’는 평을 들었을 때, 그는 날 믿지 않았다. 하지만 나를 기다려주었고, 나의 방식도 이해하려 노력해 주었다. 이제는 그에게 감사할 때다.

아들은 미국에 있고, 남편과 둘이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어색하지만, 이제는 그 틈을 채워나가야 할 시간이다. 돈을 위해 미뤘던 소중한 일상들, 이제는 하나씩 되찾을 때다.     

그리고 나의 결론

“행복은 조건이 아니라 태도입니다.”

– 헬렌 켈러

돈은 때때로 행복의 수단이 되기도,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중요한 건 ‘무엇을 얻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바라보느냐’이다. 나는 욕심도 많고, 실수도 많고, 후회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을 통해 나는 조금씩 행복해지는 법을 배우고 있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당신은 지금 어떤 욕심을 품고 있나요? 그 욕심이 당신을 행복하게 하나요, 아니면 불행하게 하나요?”

조금만 더 스스로에게 솔직해진다면, 당신의 손에도 마다스의 황금이 아닌, 진짜 따뜻한 행복이 스며들 거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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