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 제 58장 기정민민基政悶悶
“저희는 전무님과 끝까지 같이 하겠습니다.”
새벽 2시, 영업팀과 엔지니어들이 술잔을 부딪히며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그 자리에 없었지만, 이야기를 전해 들은 그 순간,
가슴이 벅차올랐다.
‘내가 잘못 살아온 건 아니었구나.’
나는 IT를 전공하지도 않았고, 그 세계에 대해 아는 사람도 없었다.
그저 우연처럼, 운명처럼, 인턴으로 중소 IT업계에 발을 디뎠고
‘외산 제품’이라는 낯선 것을 파는 영업사원이 되었다.
여자 영업사원은 드물었고,
그저 “방문하겠다”는 말만으로도 고객들이 반가워하던 시절이었다.
처음에는 고객이 제품을 더 잘 알았고,
나는 배우듯이 영업을 했다.
여자여서 말이 많다며 손가락질도 받았고,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당하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사람을 좋아했고, 술자리를 좋아했고,
무엇보다 ‘고객을 진심으로 대하는 법’을 알았다.
28년 동안 그렇게 쌓인 경험은
내 안에 ‘사람을 향한 공감’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생겼다.
하지만 인생은 늘 순풍만 부는 법이 없다.
22년을 일해 온 지금의 회사에서
갑작스럽게 큰 위기가 닥쳤다.
사장의 개인 문제로 회사의 신용등급이 곤두박질쳤고,
나는 두 주 동안 아무 일도 하지 못한 채
매일을 걷고 뛰고 생각하며 보냈다.
어느 순간부터 몇 가지 해법이 머릿속에 정리되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는...
‘내가 회사를 차려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한비자는 말했다.
“재앙은 두려움을 낳고,
두려움은 행동을 조심스럽게 만들며,
조심스러운 행동은 재앙을 피하게 하고,
그로 인해 오히려 복을 이루게 된다.”
그래, 재앙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 속에 배움이 있고, 방향 전환의 기회가 있다.
나는 지금 그 길목에 서 있다.
임원으로서가 아니라, 이제는 책임자가 되어
직원들을 이끌 준비를 하고 있다.
가장 오래 함께한 서상무와 나는 마음을 모았다.
서상무는 내게 이렇게 물었다.
“몇 명을 데리고 나갈 건가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건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와 비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나는 일부러 자리를 비웠다.
대신 서상무가 그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이 자발적으로 말했다고 한다.
“당연히 최전무님 따라가죠.”
회사 이름과 위치까지 정하며 흥분하던 그들의 모습.
그건 단순한 충성심이 아니었다.
그동안 내가 함께한 시간에 대한 믿음의 증거였다.
“리더란 빛나되, 남을 눈부시게 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 말이 마음에 오래 남는다.
내가 더 빛나기 위해 남을 가리는 사람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빛나도록 이끄는 사람.
그런 리더가 되고 싶다.
지금도 마음은 흔들린다.
회사를 차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IT 시장의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있고,
사회 전체의 경기도 좋지 않다.
그래서 나는 더욱 신중해진다.
무엇보다 쉽게, 대충 결정하지 않기로 했다.
이번만큼은 정말 깊이 생각하고,
함께 할 사람들과 진심을 나눈 뒤 결정할 것이다.
6개월 뒤 내 인생은 전혀 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이 순간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요즘은 많이 힘들고 고통스럽다.
그러나 나는 안다.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고통은 나를 더 깊게 하고,
더 단단하게 만들고,
결국 나를 내가 원하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이 길 끝에 내가 웃고 있기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기를,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의 선택이
나를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고통은 때때로, 가장 깊은 선물이다.”
당신이 지금 겪고 있는 고통도 언젠가,
당신 삶을 빛내줄 자양분이 될 것이다.
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