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에서 하루를 더 묵으며 순례자에서 배낭여행자로 모드 전환을 했다. 큰 마음먹고 스페인까지 왔으니 조금 돈을 보태서 몇몇 도시들을 여행하기로 출발 전부터 계획한 것이다. 순례자와 여행자는 비슷할 것 같지만 다르다.
순례자는 정해진 루트를 따라서 일차원의 여행을 하지만 배낭여행자는 3차원의 여행을 한다. 순례자가 정할 것은 어디까지 걷느냐이지 어디로 가느냐가 아니다. 반면 배낭 여행자는 목적지를 정하고 그 목적지에 최적화된 다양한 교통수단을 선택한다. 지하철이나 버스, 택시, 우버 택시, 기차, 비행기, 배 등 현지 사정에 맞는 다양한 교통수단을 그때그때 검색하고 예약할 줄 알아야 한다.
숙소도 그렇다. 순례자는 길을 걷다가 쉬고 싶은 곳에서 눈에 보이는 알베르게에 찾아 들어가면 되지만 배낭 여행자는 미리 여행지를 정하고 숙소를 검색하고 예약한다. 결국 배낭여행자는 순례자와는 다르게 스마트폰을 잘 써야 한다.
스마트폰을 쓰기 시작했다. 순례 중에도 가끔 사진을 찍거나 숙소를 예약하기 위해 쓰긴 했지만 이제는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것이다. 우선 이동할 때는 구글 지도를 실행한다. 내가 가고 싶은 목적지를 선택하면 현재 위치에서 선택할 수 있는 교통수단에 따라 자세한 안내가 실행된다. 예를 들어서 현재 위치에서 어느 방향으로 몇 m를 걸어가면 몇 분 후에 몇 번 버스가 온다는 안내가 실시간으로 나온다. 버스를 타면 요금은 얼마이고 내가 어디쯤 가고 있으며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가 표시된다. 다시 버스에서 내리면 최종 목적지까지 어느 방향으로 몇 m를 가야 하는지가 표시되고 내가 움직이면 내 위치가 실시간으로 반영된다. 길을 잃으래야 잃을 수가 없다. 지나가는 현지인에게 길을 물을 이유도 없다. 현지인보다 정확한 정보가 스마트폰에 표시된다.
스마트폰이 얼마나 편리한가를 보여주는 예가 바로 우버 택시다. 우리나라에서는 논란 끝에 택시 종사자들의 요구에 의해 아직 허용되지 않았지만 스페인에서는 웬만한 지역에서는 모두 우버택시를 쓸 수 있다. 먼저 앱을 깔고 내 카드를 등록한다. 이제 할 일은 내가 갈 장소만 고르면 된다. 장소만 입력하면 시간과 대략의 요금이 자동으로 나오고 이걸 선택하면 우버택시가 자동으로 선택된다. 그리고는 우버택시의 번호와 색깔, 현재 위치가 실시간으로 보인다. 차를 타고나면 어디로 가자든가 얼마냐고 말을 주고받을 이유가 없다. 이미 스마트폰으로 목적지가 공유되어있고 요금도 자동 카드결제다. 파리에서 목적지를 잘못 알아 들어서 엉뚱한 곳으로 가고, 실랑이를 하다가 스마트폰을 두고 내린 얘기를 했지만 만일 우버 택시를 탔다면 아예 그럴 일이 생길 수 없다.
스페인의 남부, 세비야에서 3박을 머물렀던 에어비앤비 숙소 거실모습
숙소도 그렇다. 저렴한 호텔을 검색하는 여러 가지 앱이 있지만 우리 부부가 배낭여행에서 주로 쓴 앱은 에어 비앤비다. 사업자가 아닌 개인들이 자신들의 집이나 방을 공유하는 시스템으로 정식으로 등록된 호텔에 비하면 값이 30%쯤 저렴하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의 숙소에서는 주방이나 화장실을 주인이나 다른 손님들과 공유하는 불편이 따르니 이걸 감내해야 한다. 그런데 에어 비앤비로 숙소를 고르고 결제하고 찾아가는 모든 과정들이 스마트폰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고르고 결제하고 찾아가는 과정이 재미있다. 주인과 만나는 일 없이 연락하고 결제하는 것은 물론이고 현관과 방의 열쇠도 보물찾기하듯 건네받았다. 어떤 책에서는 이것 또한 컴퓨터 게임과 비슷한 아이디어라고 하는데 공감가는 얘기다.
말이 안 통하면 스마트폰의 번역기를 쓰면 된다. 순례 중에는 사실 복잡한 말을 할 필요도 없고 무엇보다도 중세식 순례 여행에 스마트폰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거의 번역기를 쓰지 않았다. 그런데 배낭여행을 하면서는 필요할 때 구글 번역기나 파파고 같은 앱을 쓰게 된다. 결국 배낭여행은 스마트폰 여행이다. 영어나 해당 국가의 언어를 못해도 자유여행이 가능한 이유는 여행이 스마트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스마트폰을 들고, 배낭을 메고 18일간의 도시 여행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