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웅섭 May 04. 2022

 길따라 강따라 전설따라

속리산 둘레길 4-2코스 (청천면 신월리 - 신도원, 11.8km)

 4-2코스의 시작점, 월송정교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해품달 수련원을 검색하는 것이 좋다. 월송정교는 내비게이션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해품달 수련원은 과거 청천초등학교 신월분교였는데 현재는 폐교되어 청소년 수련시설로 이용되고 있다. 운동장이 넓고 잘 관리되어있어서 주차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잠시 일행을 기다리며 학교를 둘러보는데 재미있는 게 눈에 띈다. 낡은 교실과 운동장 사이의 정원 군데군데에 이순신 장군과 독서하는 소녀, 반공소년 이승복의 동상들이 그것이다. 과거 전국의 초등학교에 일률적으로 세워져 반공교육과 전체주의의 상징으로 느껴지던 동상들이었는데, 이제는 모두 사라지고 폐교에서나 만날 수 있는 추억의 유물이 되었다.

 출발지인 월송정교까지는 걸어서 5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신월리 마을 끝자락을 지나 월송정교를 건너면 안내판이 세워진 출발지점이다. 그러나 다리 위에서 만나는 멋진 신월천의 모습에 잠시 멈출 수밖에 없다. 작은 보 위로 넘쳐흐르는 맑은 물과 물에 비친 하늘도 멋지지만 보 아래 노출된 크고 작은 돌들이 마치 수석전시회처럼 펼쳐져 있어 볼만하다. 오늘 코스가 범상치 않으리라는 예감이 든다.

 안내판을 보니 이곳에서 강과 마을길을 따라 귀만리 – 원후평- 도원리로 이르는 4-2코스의 지도가 그려져 있다. 아직까지 코스 군데군데에 안내표지판이 많지 않아서 이 사진을 반드시 찍어 보면서 걷는 편이 좋다. 거리는 11.8km, 두 시간 반으로 안내되어 있다. 그러나 중간중간 쉬고 사진도 찍으며 여유 있게 걸어보니 두 시간 반은 부족한 느낌이다. 세 시간에서 세 시간 반으로 잡는 것이 맞을 듯싶다.

 신월리 마을길을 지난다. 주민들은 많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잘 정돈된 느낌이다. 특히 집 앞으로 지나는 수로들이 눈에 띈다. 40cm 정도의 작은 수로들이 길을 따라 집 앞으로 나 있는데 맑은 물이 찰랑찰랑 흐르는 모습이 이국적이다. 마을을 벗어나자 오른쪽 언덕 위에 커다란 당산나무가 한눈에 들어온다. 우선 나무의 크기가 예사롭지 않다. 웬만한 시골마을 입구에서 만나는 당산나무와는 격이 다르다. 안내판을 읽어보니 괴산군 보호수로 수령이 880년, 둘레가 15m에 나무높이는 무려 40m란다. 흔한 당산나무가 아닌 것이다. 연세에 비해 건강상태도 아주 양호해 보인다. 몇 군데 철골 버팀대로 괴기는 했으나 아직 부러지거나 파인 곳도 없고 파릇파릇 한창 예쁜 신록으로 새 단장을 한 잎들도 건강해 보인다. 당산나무는 주로 마을 입구나 중앙에 자리 잡은 경우가 많은데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며 마을의 상징으로, 혹은 무더위 쉼터로 사람들을 이어주는 일종의 광장 역할을 해 왔다. 중부지방에는 느티나무, 남부지방에는 느티나무와 팽나무가 많은데 그 이유는 이들은 수백 년을 가뿐히 넘어갈 정도로 수명이 길고 크게 자라며 그늘이 좋기 때문이다. 거기에 잎들이 작아서 공기와 햇살을 어느 정도 통과시키는 점도 중요하단다. 이래야 적당한 그늘과 햇살과 바람을 만들어 항상 보송보송하고 쾌적한 쉼터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꽃이 화려하거나 맛있는 과일을 내 주지는 않지만 대신 온몸으로 햇살을 가려주고 오랜 세월, 넉넉하게 인간들을 품어주는 당산나무가 고맙다.

 당산나무와 헤어져 잠시 걷다 보니 시멘트로 포장된 작은 잠수교가 나타난다.  다리 아래 불과 30cm 밑으로 계곡 수처럼 맑은 개울물이 흐르는 걸로 봐서는 비가 많이 오면 건널 수 없는 잠수교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둘레길을 걷는 트레커들에게는 이점이 불편함이 아니라 오히려 장점이 된다. 둘레길을 두발로 걷는다는 것은 자연에 순응하며 자연과 공존하겠다는 자기선언과 다르지 않다. 내가 편한 시간에 편한 방법으로 건너야만 한다면 도시와 문명을 찾을 일이지 굳이 둘레길을 걸을 리가 없다. 비가 온 뒤에는 과연 건널 수 있을까 조마조마한 긴장감이 즐겁고,  요즘같은 계절에는 편안히 건널 수 있음에 감사하게 된다. 눈높이가 낮다 보니 물을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마주 보는 것도 새롭다. 잠시 앉아서 물의 노래를 들으며 가슴으로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을 누르고 서둘러 일행들을 따라붙는다.

 다리를 건너면서 만났던 작은 강을 따라 걷는다. 강이라고 부르기도, 개울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크기의 작고 예쁜 강, 신월천이다. 파란 하늘, 맑은 햇살 아래 적당한 깊이의 강물이 숲과 바위 사이로 고요히 흐르고, 그 강을 따라 편안한 흙길을 걷는다. 갑자기 마치 비밀의 정원에라도 들어온 듯 신비한 느낌이 든다. 내가 차원의 경계를 넘어서 사람의 세상이 아니라 강의 세상, 천국의 길로 접어든 것은 아닐까? ‘이곳은 수심이 깊어 익사사고의 위험이....,’ 어쩌고 하는 안내문이 무색할 정도로 평화로운 강풍경이다. 멀리 다리 밑으로 검은색 가마우지들이 보인다. 한동안 보이지 않았다는데, 그만큼 강들이 맑아지고 강의 생태계가 살아났다는 증거임에 틀림없다.

 출발한 지 한 시간쯤, 가락교를 건너 귀만리에 도착했다. 마을 입구에 높다란 스피커가 눈에 들어온다. 이장님이 건전가요와 트로트를 틀어대며 새마을 청소를 나오라고 재촉하던 소리가 귀에 들릴 듯, 흔하던 방송탑이 이제는 보기 드문 근현대사의 유물이 되었다.  마을로 들어선다. 그런데 귀만리의 풍광과 사연도 만만치 않다. 우선 귀만리라는 이름의 유래가 재미있다. 두가지 설명이 있는데 하나는 우암 송시열이 이곳의 풍광이 마음에 들어 자리 잡으려 했으나 이미 죽산 박 씨들이 자리 잡고 있어 너무 늦게 들어왔다는 한탄 섞인 말, 귀만 (歸晩)이라는 말을 해서 생겼다는 설과, 마을을 감싸 흐르는 박대천이 마을을 감싸고도는 모습에서 굽이안이라 부르던 것이 귀만리라 불린다는 두 가지 설이 그것이다. 이와는 별도로 마을의 반대편 입구에는 주민들이 나중에 세운 거북 모양의 상징물과 함께 귀만동천(龜灣洞天)이라는 마을 이름이 새겨져 있다. 아마도 후세사람들이 원래 뜻과 다르게 발음만을 따서 기록한 듯싶다. 일행 중 한 분인 윤석주 선생이 돌단풍을 뜯어내자 바위에 새겨진 붉은 글씨, 귀만동천(龜灣洞天)이 나타난다. 어떤 설이 맞느냐, 어떤 한자가 정확하냐가 중요한 건 아니다. 어쨌든 오래된 글씨로 동네 이름이 턱 하고 쓰여 있으니 뭔가 역사와 전설이 남아있을 법한, 뼈대 있는 마을로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노란 꽃은 애기똥풀이 아니라 유럽나도냉이라는 귀화식물이다






 귀만리 느티나무 밑에서 쉬면서 물과 가벼운 간식으로 기운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여기서부터 둘레길은 강을 잠시 버리고 마을길로 들어선다. 귀만 2리는 평양조씨 집성촌으로 마을 한가운데 재실이 있고 집들이 깔끔한 걸로 미루어 비교적 넉넉한 마을로 보인다. 마을을 벗어나 후평로로 접어든다. 길옆으로 푸른 보리밭이 펼쳐져있다.  옛날에는 흔한 풍경이었는데, 이제는 보기 드문 보리밭이 반가워 잠시 바라본다. 크지도 않은 보리밭에서 파도를 연상하는 것은 왜일까?

언덕을 올라 후평리 입구에서 농로를 따라 생명과 사연을 품고 있음 직한 고즈넉한 신후평저수지에 다다른다.  저수지의 바람으로 잠시 몸을 식히고 한 해 농사를 준비하고 있는 조용한 논들을 지나면 나타나는 마을이 원후평이다. 그런데 비록 둘레길 코스에서는 벗어나 있지만 잠시 시간과 발품을 팔아도 전혀 아깝지 않을 명소가 한 곳 있다. 바로 신후평 저수지에서 멀리 산아래로 보이는 덕사리 마을의 아름다운 정원, 은호의 정원이 그곳이다. 신문에도 방송에도 소개된 적 없고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을만큼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는 사람에게는 잘 알려진 숨은 명소란다.



 우선 잘 가꾸어진 정원의 크기와 아름다움이 놀랍다. 약 3,000여평의 평지에 작은 언덕과 오솔길과 연못을 만들고 아름다운 자연석들을 과하지 않게 배치해놓았다. 연못에는 연꽃들이 자라고 있고 소나무 밑으로는 작은 꽃들, 튤립과 패랭이와 영산홍과 그밖에 이름모를 수백가지의 꽃들이 잘 가꾸어져있다. 귀하다는 백송도 보인다. 나무와 꽃들이 모두 몇종인지는 묻지 못했으나 최소한 수백여종은 넘을 것 같다. 이 정원이 생긴것은 10여년 전부터라는데 이곳의 주인은 정원을 만들고 가꾸는 것이 재미 있어서 수십억원의 사재를 들여 정원을 꾸몄단다. 더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예쁘고 귀한 정원을 지나는 누구에게나 무료로 개방한다는 거다. 아예 손님들을 위해서 믹스커피까지 준비해놓았다. 아름다운 정원보다 아름다운 주인의 마음씀에 잠시 숙연해진다.



다시 둘레길로 돌아왔다. 원후평마을을 지나 원후평교에서 잠시 아름다운 강 풍경에 마음쉼을 한다. 사실 이곳은 펜션과 야영장이 많고 찾아오는 캠핑족들도 많은 물놀이와 야영의 명소다. 그만큼 경관이 빼어나다는 뜻이다. 이제부터는 아스팔트 길을 따라 누룩 고개를 오른다. 그러나 겁먹을 정도는 아니다. 원후평에서 고성리까지 불과 20여분의 짧은 거리인데다가 지나는 차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둘레길은 누룩 고개에서 오른쪽으로 고성리로 접어든다. 고성리((古城里)는 도명산 아래로 삼국시대 것으로 보이는 성이 남아있어서 불리게 된 지명이며 입구에는 죽산 박 씨의 재실이라는 성명재가, 마을 중간에는 200년 된 향나무가 볼만하다. 향나무 밑에는 화강암으로 만든 조그만 돌 확이 놓여있는데 짐작컨대  공동 샘이 있던 곳이리라.  일행인 윤석주 선생님이 한마디 하신다. 원래 동(洞)이라는 글자는 '같은(同) 물(氵)을 먹는다'는 뜻에서 왔단다. 한 우물물을 먹는 사람들이 같은 동네 사람이라는 말이다. 한솥밥을 먹는 사이가 가족이라면 한우물물을 먹는 사람은 동네 사람이 되는 셈이니 어찌 보면 동네 사람은 가족의 연장이 아닐까 싶다. 이제 사람들은 우물물 대신 수돗물이나 생수를 마시게 되었으니 동네가 사라진 것일까, 아니면 동네의 규모가 엄청나게 커진 것일까? 아침저녁으로 동네 여인들이 모여들어 소식과 정을 나누었을 동네 우물터에는 적막만이 감돌고, 여인들의 사연과 세월의 변화를 속속들이 기억하고 있을 향나무만 덩그러니 서 있다.



고성리 성명재, 죽산 박 씨 재실이다
200년 된 향나무, 괴산군 보호수 66호

 고성리를 벗어나서는 본격적으로 강을 따라 아스팔트 길을 걷는다. 다리는 좀 팍팍하지만 시원한 강바람에 고즈넉한 강풍경이 심심하지는 않다. 게다가 지나가는 차가 거의 없어서 찻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다.

이렇게 20분 정도를 걸어서 청천 수목원을 지나고 잠수교를 건너서야 4코스의 종착지인 신도원에 다다른다. 그런데 여기서도 잠시 들를 곳이 있다. 시간과 체력에 여유가 있다면 잠수교를 건너서 원래의 둘레길인 오른쪽과는 반대, 왼쪽 비포장도로로 5분만 걸어가면 도원성 탑골공원이라는 곳이 있다. 이곳은 홍익대 미대 교수인 고승관 교수가 탑을 쌓고 공원을 조성한 곳이란다. 너덜지대의 돌들을 마치 종형으로 쌓았는데 매우 안정감 있고 숲과 잘 어우러진 모습이 볼만하다. 다만 지속적인 관리가 되지 않아서 덤불이 덮이고 부분적으로 무너진 탑들도 보인다.

출발점인 신월리 월송정교를 떠난 지 세 시간 반이 넘어서야 4-2구간의 종점, 도원리에 도착했다. 중간중간에 사진을 찍고 다리 쉼을 하고 길을 잃어서 헤매느라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긴 것이다.  그러나 2022년 5월 현재 속리산 둘레길 사무국에서 새로이 표지판과 꼬리표를 설치하고 있어서 앞으로는 보다 편하게 걸을 수 있을 것이다.     


속리산 둘레길 4-2코스를 마치며 지나온 길들을 잠시 되돌아본다. 900년이 다 된 당산나무와 판타지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처럼 신비로운 잠수교, 인간의 땅이 아닌 듯 묘한 적막과 기운이 감도는 강변도로, 재미있는 사연과 유적들이 전해지는 귀만리와 고성리, 강의 재잘거림을 듣느라 아스팔트의 지루함도 잊게 하는 강변도로까지 오늘 하루의 코스가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속리산 둘레길 4-2코스는 강과 마을을 따라 전설과 신비로움이 아직도 살아있는 길이다. 잘 정비된 인공의 길보다 다소 거칠더라도 자연과 시간이 속삭여주는 신비로움을 날것으로 맛보고 싶다면 주저하지 않고 속리산 둘레길 4-2코스를 권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을과 사람과 시간을 잇다, 속리산 둘레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